사진=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사진=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남성우월주의 사회라는 것은 재보선에서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투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남’(20대 남성) 표심 얘기만 떠들어대고 ‘이대녀’(20대 여성) 표심 얘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나지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4·7 재보궐선거 이후 정계와 언론이 가장 주목한 부분은 여당의 가장 굳건한 지지층이었던 20대의 이탈, 그 중에서도 20대 남성의 이탈이다. 실제 7일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 18세~29세 남성 중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한 경우는 22.2%에 불과했다. 여당에 대한 반감이 높은 60대 이상(남성 28.3%, 여성 26.4%)에서도 이 정도로 낮은 지지율을 보이지는 않았다.

선거 참패 이후 여당 내부에서는 돌아선 ‘이대남’의 마음을 잡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공기업 승진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박용진 의원은 오늘 발간된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 병역제도를 모병제로 전환하고 남녀 모두 40~100일간 의무군사훈련을 받는 남녀평등복무제를 제안했다.

김남국 의원 또한 “공무원법 개정 등을 통해 전국 지역자치단체가 채용 과정에서 군 경력을 인정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대 남성의 가장 큰 불만인 병역 문제를 건드려 돌아선 표심을 잡아보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이대녀’의 투표성향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20대 여성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층이었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박영선 후보에게 44%를 투표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40.9%)와 불과 3.1%p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중 15.1%는 양당 후보가 아닌 기타 후보에게 투표했다. 전 연령 중 양당 정치의 틀을 이처럼 크게 벗어난 집단은 20대 여성이 유일하다.

◇ 언론도 등한시한 ‘이대녀’ 표심

정치권에서 20대 여성의 투표성향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면, 이를 조명해야 할 언론은 제 역할을 제대로 했을까? 

빅카인즈에서 선거일이었던 지난 7일부터 19일 현재까지 ‘이대남’, ‘이남자’(20대 남자)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총 137건의 기사가 검색됐다. 하지만 ‘이대녀’, ‘이여자’(20대 여자)에 대한 기사는 53건에 불과하다. 20대 남성 관련 기사의 3분의 1 수준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문제제기를 하기 전날인 16일로 검색기간을 줄여도 77건대 31건으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매체가 20대 남성의 투표성향, 또는 그에 대한 여당의 대응에 집중해 상대적으로 20대 여성의 투표성향을 조명하는 데는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

실제 연관 키워드를 비교해보면 이대남과 이대녀 관련 논의는 구체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대남 관련 기사에는 젠더갈등, 남녀평등복무제, 전역자들, 국가공무원법 개정, 모병제 등 구체적인 의제들이 연관키워드로 등장한다. 반면 이대녀 관련 기사에서는 법안이나 정책, 사회적 이슈와 같은 구체적인 논점이 전혀 연관키워드로 등장하지 않는다.

 

7~19일 '이대녀'(위)와 '이대남'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7~19일 '이대녀'(위)와 '이대남' 관련 기사의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민주당 떠난 집토끼는 ‘이대남’ 아닌 ‘이대녀’

이번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에 '올인'한 ‘이대남’의 투표성향이 가장 눈에 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대녀’의 표심은 ‘이대남’보다 더욱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20대 남성의 민주당 이탈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20대 여성의 이탈은 충격적인 수준이다. 

지난해 21대 총선 당시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47.7%로 60대 이상을 제외하면 50대 여성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8년 12월 2주차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29.4%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방역 이슈로 인해 당정에 대한 지지율이 급등한 지난해 총선이 이변이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20대 남성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이미 거리를 두고 있었다. 

반면, 당시 2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63.6%로 30대 여성, 40대 남녀와 함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비록 박영선 후보에게 가장 많은 표를 몰아줬다고 하더라도 당장 지난 21대 총선 결과와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이대남은 돌아서고 이대녀는 남았다”가 아니라, “이대남은 이미 떠난 상황에서 이대녀까지 돌아섰다”고 해석해야 맞다. 

또한 20대 여성은 모든 성별·연령대에서 가장 독특한 투표성향을 보이고 있다. 바로 박영선·오세훈 두 후보를 제외한 기타 후보에게 15.1%를 몰아준 것이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기타 후보에게 5% 이상을 투표한 연령대는 그나마 30대 여성과 20대 남성뿐이다. 진보적인 의제와 여성주의를 내세운 소수정당 및 무소속 여성 후보가 다수 출마한 만큼, 민주당에 실망한 20대 여성의 표가 이들에게 향한 것으로 보인다. 

◇ 20대 여성 표심에 주목한 언론은?

물론 20대 여성의 정당지지율 변화와 진보적 투표성향을 조명한 매체도 있다. 한겨레21은 16일 “바보야, 문제는 ‘이남자’가 아니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했다. 한겨레21은 “오히려 정치·사회학자들은 ‘선거 패인은 현 정부의 일관되고 굳건한 지지층이었던 20대 여성의 이탈’이라고 분석한다”며 “민주당이 자성하는 대신 ‘페미니즘’과 ‘성평등 정책’을 희생양으로 삼고 선거 패인을 외부에서 찾아, 무능함을 희석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은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이미 (선거 전에) 빠져 있었다. 선거 초기 여야가 균형 상태를 보인 건 이 때문인데, 균형 상태가 무너지며 야당으로 쏠린 데는 20대 여성의 이탈이 컸다”는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의 진단을 소개하며, 오히려 “이번 선거는 ‘민주당과 페미니스트의 대립 전선이 부각된 선거’”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또한 14일 “민주당이 ‘페미니즘 과다’로 선거에서 졌다는 말, 사실일까”라는 기사를 통해 민주당이 젠더 이슈로 이대남 표심을 잃어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분석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민주당은 보궐선거 기간 내내 성 평등 의제에 소극적이었다... 민주당의 일부 86 인사들은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에게 2차 가해 발언도 쏟아냈다”며 “민주당은 한 번도 ‘페미니즘 정당’인 적이 없는데, 페미니즘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이대녀’가 기타 후보에게 던진 15%의 표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9일 “20대 여성의 15%는 무소속과 소수정당을 지지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20대 여성 표심에서 보다 주목할 점은 무소속·소수정당 지지율이 15.1%였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이번 총선에서는 특히 ‘페미니즘’을 앞세운 여성 후보가 두 명 출마했다. 20대 여성은 박원순 전 시장의 성범죄 이후 민주당의 소극적 대처에 거대 양당 투표를 포기하고 소신 투표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20대 여성이 40~5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영논리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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