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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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전 지구적으로 저축 규모가 유례없이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면 묵혀둔 저축이 시장으로 들어와 경기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전 세계 가계의 초과저축이 올해 1분기 기준 5조4000억 달러(약 6000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에 해당하는 규모다. 무디스의 추정대로라면, 가계가 초과저축의 3분의 1만 소비해도 세계 경제가 2% 성장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2019년 가계 소비패턴과 비교해 추가적으로 쌓인 저축으로, 사실상 팬데믹 기간 얼마나 소비가 감소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 코로나19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대규모 지원금이 지급된 영향으로 주요국의 저축률은 지난해 급격하게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이 1.9조 달러의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기도 전에 이미 초과저축이 2조 달러를 넘어섰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미 일부 국가의 저축률은 20%를 돌파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지난해 가계소득 대비 저축률은 약 23%로 2000~2019년 평균(약 4%)의 다섯 배 이상 급증했다. 그 밖에도 미국(6%→16%), 호주(4%→14%), 네덜란드(6%→18%) 등 다수의 국가에서 10%p 이상 저축률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축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다보니 소비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는 추세다.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집단면역에 근접하게 되면, 억눌린 수요와 과잉 저축이 합쳐져 전 세계적으로 소비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초과저축은 과연 얼마나 쌓여 있을까?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경제브리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가계는 통상의 경우에 비해 41조원(GDP 대비 2%) 정도의 초과저축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지난달 29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재난지원금 20.7조원을 더하면 초과저축 규모가 60조원(GDP 대비 3%)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한국 가계 저축률(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액) 또한 15.3%로 과거 10년(2010~2019년) 평균인 11.4%보다 3.9%p 가량 늘어났다. 이는 상대적으로 방역조치가 잘 이행되면서 다른 국가에 비해 봉쇄조치가 제한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잔디 이코노미스트는 “봉쇄조치가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정부 지출이 큰 북미·유럽 국가들이 특히 초과저축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문제는 GDP의 3%에 해당하는 60조원의 초과저축이 얼마나 소비로 전환되느냐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코로나 재확산이 이어지고 고용이 충분히 회복하는데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가계는 평균소비성향(70%, 현재 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중)과 한계소비성향(30%, 추가적 소득 증가분 대비 소비지출 비중)의 중간(50%) 정도의 소비성향을 나타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소의 가정대로라면 초과저축 60조원의 절반인 30조원만큼 민간소비가 증가하게 된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민간소비 증가율은 3.4%, 그에 따른 GDP 기여도는 1.3%p, 올해 GDP 성장률은 3.3%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코로나 사태가 신속하게 진정돼 예전의 소비성향(70%)을 보인다면, 민간소비 증가율은 4.7%, GDP 성장률은 3.9%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초과저축 60조원이 모두 소비될 경우에는 GDP 성장률이 4.6%까지 올라가지만, 이는 극단적인 가정으로 현실성이 높지 않다. 

 

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반면, 초과저축이 소비로 전환되는 비율이 예상보다 낮아 경기회복이 더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과저축의 상당 부분이 고소득층에 집중돼있기 때문이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초과저축의 3분의 2는 상위 40%의 부유층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고소득 가구는 초과저축의 상당 부분을 소비하기보다는 그대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애덤 슬레이터 이코노미스트 또한 “초과저축의 대부분이 부유한 가구에 집중돼있다. 이들이 초과저축을 추가 소득이 아닌 자산 증가로 취급한다면 소비 증가는 기대보다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지급된 1차 지원금 중 소비에 사용된 것은 26%였으며 저축(36%)과 부채상환(35%)에 사용된 비중이 더 컸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초과저축을 부채상환에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반면, 고소득층은 초과저축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에 비해 소비성향이 낮고 재무상황도 양호해 초과저축을 소비에 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심리지수 추이. 자료=한국은행
소비자심리지수 추이. 자료=한국은행

물론 백신이 보급되고 있는 현 상황을 지난해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종식의 희망이 보이는 만큼,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회복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0.5로 전월 대비 3.1p 상승했다. CCSI가 100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14개월만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향후 국내 경기는 당분간 건설투자가 부진하겠으나, 글로벌 경기회복에 힘입어 수출과 설비투자가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민간소비도 가계가 보유한 대규모 초과저축이 소비지출로 이어지면서 더욱 개선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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