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하하하가 최근 제기된 '남혐' 논란으로 인해 28일 댓글창을 닫았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유튜버 하하하가 최근 제기된 '남혐' 논란으로 인해 28일 댓글창을 닫았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오조오억”, “허버허버”, “남자가 조신하게...”

최근 남성 혐오 논란이 일고 있는 신조어들 때문에 유튜버, 웹툰작가 등 크리에이터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들여 제작한 컨텐츠가 제작 의도나 맥락과는 상관없이 성별갈등의 전쟁터가 되면서, 다수의 압력에 못이겨 논란을 피하기 위해 사과문을 올리는 경우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실제로 양어장을 운영하며 길고양이 영상을 주로 올리는 유튜버 하하하는 최근 유튜브 채널 댓글창을 닫아야만 했다. 4년 전 올린 반려견 태평이가 장어를 먹는 영상에 “남자답게 조신하게 먹는다”는 자막을 달았던 것이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이 이를 메갈, 워마드 등에서 사용하는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비난하자, 결국 하하하는 28일 “누군가를 혐오하지도, 어떤 성향에 치우쳐 있지도 않다”며 “근거 없는 사실 유포와 악플을 멈춰달라”는 글을 올리고 댓글창을 폐쇄했다.

◇ 젠더 관점 교육이 성인지 감수성 향상시켜

최근의 사태는 젠더(Gender) 관점에서 미디어를 해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미디어 안에서 여성과 남성이 재현되는 양상 뒤에 숨어있는 성별 고정관념이나 성차별적 메시지를 읽어내고 이를 비판하는 것이 주된 작업이었다. 이제는 수많은 미디어와 컨텐츠의 홍수 속에서 다양한 표현의 기원과 의미, 사용된 맥락에 따라 그것이 성차별적인지, 혹은 그것을 성차별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오히려 일종의 ‘백래시’인지를 분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은 아동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다. “보이루”를 인사 대신 외치고 다니는 초등학생들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된 표현 외에도 “혜지”, “쿵쾅쿵쾅”, “아몰랑”, “힘조”처럼 여혐·남혐 의혹이 제기된 표현은 온라인 게임과 유튜브를 통해 아동들 사이에서도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미디어를 접할 기회는 많아졌지만 그것을 분별할 기준는 더욱 복잡해진 상황에서 아이들이 '교육'의 도움 없이 이러한 컨텐츠를 이해하고 비판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젠더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실제 다수의 연구에서 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학생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도 했다.

서던일리노이대학 에드워즈빌 캠퍼스 연구팀이 2015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CML) 과정을 수강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미디어에 나타난 성차별 및 성별 고정관념을 더욱 잘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1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청소년을 두 개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게는 4회의 수업으로 구성된 젠더 관점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듣게 한 뒤, 수업 전후 설문조사를 실시해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수업을 듣기 전보다 미디어의 성별 고정관념 재생산과 성차별적 표현에 대해 훨씬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화여대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청소년의 성 미디어 리터러시, 성허용성이 성인지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 논문도 비슷한 결론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수도권 소재 중학교 3학년 및 고등학교 전 학년 2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성적 묘사 장면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 높은 학생일수록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청소년의 성인지감수성의 향상을 위해서는 성에 대한 미디어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 및 평가하고 올바르게 적용하는 능력인 성 미디어 리터러시를 향상시켜 주고, 청소년들이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한 선택을 하도록 도울 수 있는 효과적인 성교육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초등학생까지 확장해야

한편 청소년에게 집중된 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대상을 초등학생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동연 명지대 객원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초등학교 어린이를 위한 성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사례와 수업안: ‘마이팝스튜디오 모델’의 평가기준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성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에 나타나는 선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무분별한 허용을 억제하는 교육"이라며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초등학교 연령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성관계 등의 주제가 중심이 되는 청소년 대상 리터러시 교육과 달리, 성에 대한 관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시기의 아동에게는 또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것.

실제 논문에 소개된 초등학교 수업들은 아동 대상 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모범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일산 강선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젠더 관점에서 바라보는 수업이 진행됐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여성 캐릭터인 네오와 남성 캐릭터인 프로도가 어떻게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는지 분석하고, 고정된 성 역할을 배제한 ‘젠더리스’(Genderless)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 회사에 전달한 뒤 개선하겠다는 담당자의 피드백까지 받았다. 

다양한 컨텐츠를 흡수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을 미디어에서 격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디지털 미디어가 혐오의 메시지를 담은 컨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세상에서 “오조오억”과 같은 논란이 재발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미디어의 소비자이자 참여자이기도 한 아이들이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젠더 관점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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