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국내 54개 매체를 통해 보도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관련 기사의 핵심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국내 54개 매체를 통해 보도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관련 기사의 핵심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상속세 납부 및 기부 계획이 발표된 이후 언론의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매체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반면, 일부 진보성향 매체는 이번 이슈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으로 연결짓는 주장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달 28일 “유족들은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감염병·소아암·희귀질환 등의 극복을 위해 1조원을 기부하고, 이 회장이 소장했던 미술작품 1만1000여건, 2만3000여점(약 2~3조원 추산)도 함께 국가 미술관·박물관 등에 기증하기로 했다. 상속세와 기부 규모를 더하면 이 회장 재산의 약 60% 가량이 사회로 환원되는 셈이다.

◇ 이건희 상속세 12조원, 다수 언론 “재계 상속세 부담 낮춰야”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이건희’를 검색한 결과 총 1072건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상속세 납부 및 기부계획이 발표된 28일 가장 많은 323건의 기사가 보도됐으며, 그 다음날인 29일에도 246건의 기사가 나왔다. 주말 이후에도 2일 67건, 3일 133건 등 이 회장의 상속세 및 기부 이슈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식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 회장 관련 기사의 주요 연관 키워드로는 ‘상속세’와 ‘미술품’이 꼽혔다. 특히 언론은 2만여점이 넘는 이 회장 개인소장 미술품의 기증 계획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실제 ‘미술품’ 외에도 이 회장 소장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겸재 정선의 ‘정선필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기증 대상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도 이 회장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한 키워드로 꼽혔다. 

이 회장 관련 기사 중 ‘상속세’가 포함된 기사 495건을 따로 분석하자, 이전에는 연관 키워드 순위권에 없었던 ‘사회환원’, ‘사회공헌’이라는 키워드가 새롭게 나타났다. 이는 언론이 이 회장의 상속세 납부 및 기부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이 회장의 상속세 납부 및 기부 계획을 전하며 “이건희 치열한 삶 통해 거둔 거대한 업적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 ‘세계 최대 규모’라는 키워드도 눈에 띠는데, 국내 언론은 삼성가(家)가 짊어진 상속세 부담이 상당히 크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동아일보는 3일 “19개 그룹 지분 26조, 상속세가 15조… 한(韓) 세율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해외와 국내 상속세율을 비교하며, “기업의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해 상속세율을 OECD 평균 수준(25%)을 고려해 완화하거나 가업 승계 시 공제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재계 주장을 전했다. 

조선일보 또한 지난달 29일 “‘반도체 전쟁’ 지휘할 사령관이 감옥서 상속세 대출상담 받는 나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주주 가족이 기업을 승계할 경우 세율을 낮춰주거나 세금 공제 혜택을 준다”며 “기업 승계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징벌적 상속세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한국 경제의 생명줄인 반도체가 격랑에 휘말렸는데, 진두지휘해야 할 반도체 기업의 사령관은 상속 문제 때문에 감옥에 갇혀 상속세 낼 돈 마련을 위해 신용대출 상담을 받아야 하는 신세”라며 “그 돈과 시간으로 삼성을 더 키워 고용을 늘리고 법인세를 더 내는 것이 나라에 몇 배, 몇 십배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상속세'를 함께 검색한 결과 나타난 연관 키워드. '사회공헌', '세계 최고 수준' 등의 키워드가 상속세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자료=빅카인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상속세'를 함께 검색한 결과 나타난 연관 키워드. '사회공헌', '세계 최고 수준' 등의 키워드가 상속세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자료=빅카인즈

◇ 경제매체, “정부, 이건희 기부에 이재용 사면으로 답하라”

한편, 경제매체를 중심으로 이 회장의 상속세 납부 및 기부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가능성과 연결시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달 29일 “삼성가의 통 큰 기부, 국가도 상응한 행동 보여줘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회장의 상속세 및 기부 규모에 대해 “이 정도면 기업이 국가와 국민에 기여하는 수준으로는 가히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다. 기업보국의 한 획을 긋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극찬했다. 헤럴드경제는 이어 “최선을 다한 기업 일가에 국가가 관용을 베푸는 건 일종의 도리”라며 “(이 부회장) 사면 결정에 이보다 좋은 명분과 타이밍은 없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 또한 같은 날 사설에서 “이 회장 유산에 대한 정리계획은 그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삼성의 첫발을 내딛는 이정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런 시기에 '뉴 삼성'을 진두지휘할 이 부회장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전쟁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격변기를 맞고 있는 와중에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는 이어 “많은 국민이 이 부회장을 풀어줘 우리 경제에 헌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빠른 경제 회복이 절실하다는 점에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 일부 매체, “이재용 사면 주장은 이건희 기부 의미 훼손”

반면 일부 매체들은 이 회장의 상속세 납부 계획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를 ‘이재용 사면론’으로 연결짓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달 28일 사설에서 이 회장의 상속세 납부 및 기부 계획에 대해 “그동안 우리나라 재벌들이 유산 상속 과정에서 이런 거액의 상속세를 낸 적이 없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투명해졌고, 삼성가도 그런 변화를 받아들인 결과”라고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한겨레는 “상속세 정상 납부와 거액의 기부가 지난날의 편법적인 사전상속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삼성가는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이재용 부회장 등 3남매가 유산 상속과 무관하게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무려 13조원에 이른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활용한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어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상속세 납부와 기부를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과 연계시키는 주장을 펴는데 옳지 않다”며 “전혀 별개의 사안을 억지로 엮어 사면 여론 조성에 이용하는 건 상속세 납부와 기부의 의미마저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또한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이 회장 유족의 이번 사회공헌 발표는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일가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1조원 사재 출연 및 미술품 10조원대 기증을 이재용 부회장 사면과 연계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이어 “최근 재계를 중심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요구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역대급 사회공헌에 대해 사면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없지 않다”며 “삼성도 이번 사회공헌이 이 부회장 사면과 관련 없다고 선을 긋고, 사회공헌은 발표대로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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