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을 연 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입법·행정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기됐고,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에는 청와대 및 관계부처가 직접 나서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뉴스로드>는 지난 3년간 20만 이상의 추천을 받은 여러 청원들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검증해봤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0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4점 만점에 1.9점으로 정부·의료·교육·금융기관 등 전 부문을 통틀어 가장 낮았다.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2.6점)도 가장 하지 않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정부기관별 공정성 평가에서도 2.4점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이처럼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최악’에 가깝다. 민생법안 처리는 미루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18년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회에 대한 부정적이 여론이 반영된 청원이 올라와 많은 이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2018년 1월 15일 올라온 이 청원의 제목은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주세요”다. 청원인은 “최저시급 인상 반대하던 의원들부터 최저시급으로 책정하고, 최저시급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처럼 점심식사비도 하루 3500원으로 지급해달라”며 “(국회의원이) 나랏일 제대로 하고 국민에게 인정받을 때마다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이 청원은 27만7674명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2020년 사회통합실태조사' 중 기관별 국민 신뢰도 조사 결과. 자료=한국행정연구원
'2020년 사회통합실태조사' 중 기관별 국민 신뢰도 조사 결과. 자료=한국행정연구원

◇ 시민 4명 중 1명, 국회의원 최저시급 적용 청원에 동의

사실 이 청원에 대해 청와대는 답변할 입장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급여를 결정하는 것은 행정부가 아닌 입법부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답변에 나섰던 정혜승 당시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도 “입법부에서 스스로 월급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현행법상 입법부의 몫이다. 정부가 더 드릴 말씀이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며 발언을 짧게 마무리했다.

실제 국회의원 급여 및 수당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과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결정된다. 국회에서 직접 해당 법률·규칙을 개정하지 않는 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에 따라 급여를 하향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가 해결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의견을 모아주신 것이 민심”이라며 “국회에서도 이번 청원을 계기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현실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많은 국민이 참여한 청원인 만큼, 숙의형 시민토론을 열고 해당 청원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마련했다. 청원기간이 종료된 지 한 달 뒤인 2018년 3월 3일 서울 중구 YWCA 대강당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시민 20명 및 전문가들이 참여해 국회의원 급여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당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전문가들은 국회의원 급여가 다른 선진국이나 의원 1인당 국민 수 등을 고려할 때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며, 국회에서 발의하고 처리한 법안만 보더라도 국회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나친 비난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토론에 참여한 시민들은 국회가 최저시급과 같은 민생현안을 등한시하며 서민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러한 청원이 나온 것이라며 오히려 전문가 의견을 반박했다. 실제로 타임리서치가 당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 1008명에게 해당 청원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찬성(76.3%)이 반대(14.4%)의 5배 이상 많았다.

 

국회의원수당법 개정안별 불출석 시 감액 기준. 자료=국회의안정보시스템
국회의원수당법 개정안별 불출석 시 감액 기준. 자료=국회의안정보시스템

◇ 국회의원수당법 개정안 2018년 1월 이후 총 19건 발의

그렇다면 국회는 “최저시급 받고 일하라”는 국민들의 꾸지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청원이 제기된 2018년 1월 이후 발의된 국회의원수당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8건, 21대 국회 11건 등 총 19건이다. 이 가운데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비용에 대한 내용을 담은 것은 20대 국회 4건, 21대 국회 10건 등 총 14건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국회의원보수산정위원회를 구성해 ‘셀프인상’ 논란을 막고 입법·특별활동비를 폐지하거나(심상정 의원) ▲국회 회의 불출석 시 수당 및 입법활동비를 삭감하는(박주민 의원) 등 본격적인 내용을 담은 개정안 외에도 ▲국무총리·국무위원을 겸직하는 국회의원에게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지급하지 않거나(권은희 의원) ▲부정 지급된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반환하도록 하는(황주홍 전 의원) 등 부수적인 법안들도 발의됐다. 하지만 4건 모두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21대 국회가 시작된 뒤에는 ▲국회 불출석 일수에 비례해 급여를 감액하거나 ▲국회의원 구속 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등의 개정안이 10건이나 발의됐다.

다수의 선진국은 특별한 사유 없이 결석한 의원에 대한 감액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본인·가족의 건강 문제 외의 사유로 하원에 출석하지 않은 의원은 해당 일수에 따른 금액을 공제한다. 프랑스 또한 매주 수요일 상임위에 월 2회를 초과해 불출석한 의원은 월 수당의 25%를 감액한다. 독일은 건강문제로 진단서를 제출해도 삭감액이 하향 조정될 뿐 의정활동 지원비가 줄어들고, 스웨덴도 결근 시 세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국회 또한 이러한 방식의 제재 규정을 도입하려고 시도 중이지만 10건 모두 계류 상태다. 이 때문에 구속 중인 의원도 매달 월급을 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인 이상직 의원의 경우 배임·횡령혐의로 지난달 28일 구속되면서 당장 의정활동을 할 수 없게 됐지만, 세비는 매달 20일 그대로 지급된다. 

21대 국회 들어와서도 국회는 여전히 국회의원수당법 개정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MBC가 지난달 28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관련 법안을 다룰 상임위 소속 의원에게 구속 중 월급을 깎거나 주지 말자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11명의 의원이 찬성했지만 응답하지 않은 의원도 17명이나 됐다. ‘일하는 국회’를 원하는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행태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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