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왼쪽, 파란색) 및 탄소집약도(오른쪽, 노란색)에 따라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경우 연도별 및 누적 조기사망자 수. 자료=클라이밋 애널리틱스
정부 계획대로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경우(회색)와 경제성(왼쪽, 파란색) 및 탄소집약도(오른쪽, 노란색)에 따라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경우 연도별(위) 및 누적(아래) 조기사망자 수 비교. 자료=클라이밋 애널리틱스

정부가 현재 계획대로 2054년까지 석탄발전소를 유지할 경우 약 2만3000명의 조기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국제 기후연구기관 ‘클라이밋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는 지난 12일 발표한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대한민국 탈석탄 정책의 건강 편익 평가’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석탄발전의 완전 퇴출 시점을 2054년으로 가정할 경우 국내 1만5880명, 국외 7452 명 등 총 2만3332명의 조기 사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42만8223년의 잠재수명이 손실된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또한 2348건의 조산과 4382건의 천식도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석탄발전 등 화석연료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경고는 이전부터 다양한 연구기관과 환경단체를 통해 여러 차례 강조돼왔다. 석탄을 연소할 때는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오염물질이 다량 배출되기 때문이다. 석탄발전 등을 통해 배출되는 초미세먼지는 심혈관 질환, 만성 및 급성 호흡기 질환, 폐암, 조산 등 심각한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석탄발전 과정에서 산성비의 원인인 이산화황(SO2)과 신경계 손상 위험이 있는 수은 등의 중금속은, 호흡기를 손상시키는 질소산화물(NOx) 등의 오염물질도 함께 배출된다.

실제 지난 2월 국제학술지 ‘환경연구’에 실린 영·미 공동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는 2018년 기준 약 870만명으로 전 세계 사망자의 약 18%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지오스-캠(Geos-Chem)이라는 분석모델을 사용해 전체 미세먼지에서 화석연료로 인한 미세먼지를 분리·측정했는데, 2012년 1020만명(21.5%)였던 사망자는 2018년 중국의 대기질 규제가 강화되고 미세먼지 배출량이 급감하면서 870만명까지 줄어들었다. 이 연구결과는 화석연료로 인한 미세먼지 증가가 인간의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이 화석연료로 인한 공중보건 문제가 가장 심각하지만, 한국도 안심할 수준은 전혀 아니다. 2012년 기준 한국의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38.8㎍/㎥, 미세먼지 원인 사망률은 30.5%로 중국·방글라데시·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았다. 반복해서 석탄발전 퇴출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석연료 미세먼지로 인한 초과사망 분포. 자료=미국 하버드대학교
화석연료 미세먼지로 인한 초과사망 분포. 자료=미국 하버드대학교

현재 국내에는 56기의 석탄 발전소를 운영 중이며, 신규 석탄 발전소 역시 7기가 건설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지만,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마지막 석탄 발전소인 삼척 석탄발전소는 오는 2054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하지만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고 연평균 기온 상승을 1.5°C 이하로 제한하자는 파리협정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환경단체와 연구기관들의 주장이다. 반면, 정부 계획대로라면 오는 2030년에도 42기(약 31GW)의 석탄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63기의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는 시나리오를 경제성(발전 비용)과 환경성(탄소 집약도)에 따라 두 가지로 제시했다. 경제성 시나리오는 발전 비용이 높은 발전소부터 폐쇄하는 계획이며, 환경성 시나리오는 탄소집약도가 높은 순서대로 폐쇄하는 계획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두 시나리오를 선택할 경우 2054년까지 석탄발전으로 인한 조기사망자 수는 환경성 시나리오 4922명, 경제성 시나리오 4850명으로 기존 대비 약 1만8000명(약 80%)이 넘게 줄어든다.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해도 현행 계획보다는 석탄발전으로 인한 죽음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 다만 경제성 시나리오를 선택할 경우, 현재 강릉·삼척 등에 건설 중인 신규 석탄발전소는 가동 후 최대 4년 내 폐쇄돼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해당 보고서가 석탄발전의 악영향을 과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계산 과정에서 석탄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 배출과 그로 인한 건강영향만을 고려했다며, 오히려 실제보다 보수적으로 추산했다는 입장이다.

연구팀은 “석탄 채굴, 운반, 저장 및 석탄재 처리 등 석탄의 공급망을 따라 진행되는 공정 역시 상당수준의 대기오염으로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본 연구의 추정치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현행 정책 시나리오에 따른 총 대기오염물질 배출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실제로는 더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석탄발전소를 현행 계획대로 가동할 경우 보고서가 제시한 숫자보다 더 많은 조기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클라이밋 애널리틱스의 최고 책임자인 빌 해어(Bill Hare)는 “우리 분석은 한국이 파리협정의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 탈석탄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기후뿐 아니라 공공보건을 위해서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라며, “한국의 2030년 탈석탄은 석탄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일으키는 조기 사망을 단 5년 이내에 절반으로 줄이는 등 즉각적인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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