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 한국 청소년들의 정보 식별 능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 한국 청소년들의 정보 식별 능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로축은 정보의 주관·편향성 식별 능력, 가로축은 정보 식별 관련 교육을 받은 비율.(빨간색 원이 한국) 자료=OECD

가짜뉴스의 폐해가 심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와 교육계, 언론계가 손을 잡고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키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그간의 노력의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한 가지 방법은 국제적인 표준 미디어 리터러시 지표를 개발해 다른 국가와 상대적으로 미디어 비판·해석·활용 역량을 비교하는 것이다. 벌써 각국의 여러 연구기관에서 관련 지표를 개발해 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특정 국가 또는 지역만 포함하고 있어 아직 직접적인 국가간 비교는 어렵다.

다만 OECD가 주관하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를 통해 국가별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해당 조사에는 참가국 16~65세를 대상으로 기초적인 읽기능력을 포함해 전반적인 문해력을 평가하고 있다. 글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능력은 미디어 리터러시의 기초인 만큼, 문해력이 높은 국가일수록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도 높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가장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문해력 순위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지난 2013년 OECD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16~65세의 언어능력은 273점으로 조사대상인 24개국 평균과 동일한 점수를 기록했다. OECD 평균(266점)과 비교하면 오히려 높은 편이다. 

문제는 연령별 격차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16~24세의 청년층으로 한정하면 한국의 언어능력은 일본·핀란드·네덜란드에 이어 조사대상 중 4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반면, 25세 이후부터는 순위가 하락하기 시작해 55~65세는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나이가 들수록 언어능력 점수가 낮아지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 격차가 너무 커 노년층 문해력 향상을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 한국인의 연령별 역량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교육부
2013년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 한국인의 연령별 역량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교육부

◇ 문해력 높지만 피싱메일 못 걸러내는 한국 청소년, 왜?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문해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청소년·청년층의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될까? 다른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젊은 세대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또한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OECD가 회원국의 만 15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의 문해력은 상위권에 속한다. 지난 2018년 PISA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읽기능력 점수는 514점으로 OECD 37개국 평균(487점)을 상회하며 5위를 기록했다. 2006년(1위) 조사에 비해 점차 순위나 점수가 하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청소년들의 문해력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3일 OECD가 발표한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 문해력 개발하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들은 제시된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능력(식별률 25.6%)이 OECD 평균(47.4%)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식별률이 30% 이하인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슬로바키아, 콜롬비아 등 3개국 뿐이었다.

피싱메일을 판별하는 능력에서도 한국은 멕시코, 브라질 등과 함께 최하위 집단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인 문해력은 높지만 정보의 사실 여부를 판별하고 왜곡된 내용을 걸러내는 능력은 제대로 발달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국가별 학교에서 제공되는 텍스트의 최대 길이. 빨간색 네모가 한국. 자료=OECD
국가별 학교에서 제공되는 텍스트의 최대 길이. 파란색은 101쪽 이상, 회색은 11~100쪽, 검은색은 10쪽 이하를 뜻한다.(빨간색 네모가 한국) 자료=OECD

◇ 청소년 문해력 높이려면 교육의 양과 질 개선해야

PISA에서 나타난 한국 청소년들의 문해력과 디지털 리터러시의 간극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답은 ‘교육’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한국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항목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디지털 리터러시 관련 교육 기회가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피싱메일을 분간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한국 청소년은 OECD 평균(41.2%)보다 낮은 34.7%에 불과했는데, 이는 OECD 37개국 중 28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정보의 주관·편향성을 판별하는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응답자도 49.1%로 OECD 38개국 중 24위에 머물렀다.

국내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고려대학교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OECD 7개국 중등교사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실태와 ICT의 교육적 활용 간 관계 탐색’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활성화 정도는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한국을 포함해 칠레·독일·스페인·영국·포르투갈·미국 등 7개국 중등교사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현황을 비교했는데, 한국의 평균 교육 빈도는 2.64점(전체 평균 3.56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수업 중 ICT 활용 빈도 또한 1.73점(전체 평균1.96점)으로 7개국 중 6위에 머물렀다. 

교육 과정에서 활용되는 정보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단편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PISA에 따르면, 영국·핀란드·덴마크·캐나다 등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국가의 경우 학교에서 배우는 텍스트의 길이가 대부분 100쪽을 넘었다. 반면, 한국은 10쪽 미만의 텍스트를 소화하는 경우가 많아 교재의 길이가 상당히 짧은 편에 속했다. PISA 조사에서는 더 긴 텍스트를 통해 교육을 받은 청소년일수록 문해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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