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갈무리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갈무리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공군 성범죄 은폐 사건’으로 인해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문제가 재발하는 것에 대해 여론의 비판이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앞서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사랑하는 제 딸 공군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에 따르면, 공군20전투비행단 소속 A중사가 회식 중 선임의 성추행을 당해 상관에게 신고했으나, 상부는 오히려 사건을 은폐하고 A중사에게 합의를 종용했다. 이후 15전투비행단으로 전출된 A중사는 해당 근무지에서도 과도한 압박을 받다가 결국 지난달 21일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사퇴했지만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군대 내 성폭력 사태는 매년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지만 책임 있는 이들의 대응이 매번 늦기 때문이다. 이미 해당 청원에는 7일 현재 35만4044명이 참여하며 청와대 답변 조건인 20만명을 넘어선 상태다. 

◇ 문재인 정부, 여군 성범죄 '원스트라이크 아웃' 공약

여군의 양적 비중을 확대하고 평등한 근무여건 보장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군 내 여성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화가 도입됐다. 군 어린이집을 증설하고 10일 간의 임신검진 휴가를 보장하는 한편, 여성도 지상근접 전투부대 지휘관을 맡을 수 있도록 하고 여군 비율을 2017년 5.5%에서 2020년 7.5%로 늘렸다.

여군 대상 성폭력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했다. 지난 2018년 9월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를 설립해 성별 격차 및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및 정책 자문의 역할을 맡도록 했으며, 2017년 19명이었던 성고충전문상담관도 올해 46명까지 늘렸다. 국방부 국방여성가족정책과 또한 2019년 양성평등정책과로 이름을 바꾸고 여군 출신 과장을 선임한 뒤 인력을 충원했다.

성폭력 대응의 핵심은 피해자 지원과 제도 개선이지만, 이미 발생한 성폭력에 대한 엄중한 처벌도 중요하다. 실제 문 대통령은 여군 대상 성범죄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철저히 적용할 것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재판 1708건 중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175건으로 실형율이 10.2%에 불과했다. 민간 성범죄 1심 실형률이 25.2%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2심에 해당하는 고등군사법원의 성범죄 실형률 또한 180건 중 24건으로 13,3%에 불과해 1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범죄를 엄단해야 할 군사법원이 오히려 솜방망이 양형으로 군내 성폭력을 방치한 셈이다.

 

자료=국가인권위원회 (단위: %)
여군이 느끼는 군내 성폭력 사후조치의 공정성은 2012년에 비해 2019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단위: %) 자료=국가인권위원회

◇ 신고 늘어도 법적 처벌은 30% 미만 그쳐

처벌이 약하다보니 성적 침해를 당한 여군이 느끼는 무력감도 상당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펴낸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905명의 여군을 상대로 성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물은 결과 지난 2012년에 비해 ‘무대응’(38.2%→34.6%)은 줄어들고 ‘거부의사 표시’(35.7%→37.8%)나 ‘군사법당국 신고조치’(0.3%→4.3%)는 늘었다. 예전보다 여군이 좀 더 적극적으로 군내 성폭력에 대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대 내 성폭력 관련 고충이 제기됐을 때 공정하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2012년 조사(75.8%)에 비해 26.9%p 줄어든 48.9%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군내 성범죄에 대한 사후처리가 개선은커녕 악화되고 있다는 것. 실제 성적 침해를 당한 여군이 보고한 뒤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았다는 응답은 겨우 26.8%였으며, 아무런 사후 조치가 없었다는 응답도 무려 15.8%에 달했다. 이번 공군 성범죄 사태처럼 피해자나 가해자를 타부대로 전출시키며 사태를 무마했다는 응답도 20.2%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군내 성폭력의 주된 피해자가 이제 막 입대한 여군들이라는 점이다. 인권위에 따르면, 여군의 성희롱 피해 경험은 1~3년 미만 근무자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대체로 근무기간이 짧을수록 피해 경험의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군내 성범죄가 위력에 의한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임을 보여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력감에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권위 조사에서 여군들은 “성폭력 사건을 상관에게 보고한 뒤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치가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성폭력 사실을 신고했냐고 따지고 둘 간의 분리가 전혀 되지 않아 재차 신고해 가해자가 전출됐다”, “피해자가 오히려 비난을 당하고 타부대로 전출됐다” 등의 경험담을 고백했다. 이 때문에 여군은 성적 침해를 당해도 보복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비밀보장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 군사법원법 개정안, 군 성범죄 해결책 될까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모식에서 “최근 군내 부실급식 사례들과, 아직도 일부 남아있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문화의 폐습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며 공군 성범죄 은폐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이어 7일 “종합적으로 병영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여 근본적인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새 기구를 구성하라고 지시하고 ‘군사법원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요청했다. 

이 개정안은 1심 담당 군사법원을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하고, 고등군사법원은 폐지해 민간법원에서 항소심을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군 사법의 독립성과 군 장병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7월 정부안이 처음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 식구 감싸기 식의 솜방망이 양형 문제는 해결될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군내 성범죄가 완전히 해결되기는 어렵다. 여군들은 군내에서 성폭력이 아예 ‘문제’라고 인식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완벽한 근절대책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반복된 성인지 교육을 통해 지휘관부터 일선 장병까지 성폭력에 대한 의식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반복된 성범죄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군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식 변화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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