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사진은 지난 7~9일 보도된 관련 기사의 핵심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사진은 지난 7~9일 보도된 관련 기사의 핵심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각하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담당 판사를 탄핵하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온 가운데, 언론도 해당 이슈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1억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

◇ 빅카인즈 검색 결과 이틀간 관련 기사 211건

빅카인즈에서 지난 7일부터 9일 현재까지 ‘강제동원’과 ‘징용’을 검색한 결과 관련 기사는 모두 211건이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강제징용 1심 관련 기사의 연관키워드 중 ‘손해배상’, ‘청구권’ 등 재판 관련 용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검색된 것은 1심을 맡은 김양호 부장판사의 이름이었다. 재판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판사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양호 부장판사를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여기에 초점을 맞춘 기사도 상당수 보도되고 있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8일 “반국가, 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김양호 판사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하루만에 22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김양호 판사는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입장을 법리로 끌어다 썼는데, 이는 일본 자민당 정권에서 과거사 배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내세운 변명에 불과하다”며 “국헌을 준수하고, 사법부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민족적 양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김양호 판사를 즉각 탄핵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에 대한 비판이 거센 이유는 단순히 국민감정에 거스르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판결문에 법리적 판단을 넘어서 역사적 사실이나 외교관계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담은 내용까지 포함시켰다. 

실제 판결문에는 “대한민국이 1965년 한일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일본과의 사이에는 ‘강제징용 사안’ 외에도 ‘영유권 주장 사안’, ‘위안부 사안’이 있는 바, 세 사안 모두 또는 일부라도 국제재판에 회부되면 대한민국은 승소해도 얻는 게 없고, 패소해도 국격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것”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이례적인 판결문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여론 또한 더욱 악화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15개 시민단체는 7일 공동논평을 내고 "재판부는 노골적으로 판결이 야기할 정치·사회적 효과 때문이라는 점을 고백했는데, 이는 사법부가 판단 근거로 삼을 영역이 아니다"라며 "민사사건 본안 재판은 원고와 피고 간 권리의 존부를 판단하면 될 뿐, 판결 확정 이후의 사정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반일(反日) 몰이’한 文 정부 책임” vs “국가 앞에 국민 저버린 사법부”

3년 전 대법원의 판단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이례적으로 법리적 판단이 아닌 내용까지 근거로 끌어들인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대해 언론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리고 있다. 

일부 매체는 이번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는 8일 사설에서 “(재판부는) 2018년 10월 대법원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근거로 배상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징용의 불법성은 모두 국내법적 해석’이라며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며 “침략국이 불법성을 부정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가해국 중심 국제정치 논리를 답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이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개인들의 인권을 무시해서는 한·일 관계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며 정부는 사법부 판단과 별개로 피해자가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신문은 8일 “‘국제재판 가서 지면 위상 추락’… 국가 앞에 국민 저버린 법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보다 국가와 국익에 더 무게를 싣는 모습도 보였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또한 해당 기사에서 “재판장인 김양호 부장판사는 2017년 징역 1년 판결에 불만을 품은 피고인이 반발하며 욕설하자 즉각 징역 3년으로 형량을 올린 적이 있다”고 담당 판사의 과거 전력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보수성향 매체는 이번 판결이 정부의 ‘반일(反日) 외교’가 낳은 불가피한 결과라며 재판부의 결정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에서 이번 판결에 대해 “전례를 찾기 힘든 사법 혼란”이라며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온 문재인 정부와 초법적 판결을 한 김명수 사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문제를 방치해 왔다... 합리적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선거용 반일 몰이에만 몰두했다”며 “정부가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처럼 노년의 피해자들이 줄소송에 나섰다가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고 있다”고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했다.

한편 이번 판결로 인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7일 “다시 시작된 한·일 간 ‘외교의 시간’… 文 정부의 선택은” 기사에서 “그간 정부는 사법부 판단 존중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 노력이 상충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었다”며 2018년 대법원 판결 때문에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았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이어 “하지만 이날 판결로 정부로선 존중해야 할 또다른 사법부의 판단이 생겼다. 대법원 판결과는 상반되게 일본 기업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강제집행 또한 권리 남용이라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며 “정부로선 대법 판결에만 묶이기보다는, 움직일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이 다소 확장된 셈”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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