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권익위원회에 부동산 투기 의혹 전수조사를 의뢰하자고 주장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권익위원회에 부동산 투기 의혹 전수조사를 의뢰하자고 주장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 전수조사가 자성의 계기로 삼자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정쟁으로 변질되는 모양새다. 조사 주체를 두고 여야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변화를 기대했던 유권자들도 실망감을 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소속 의원 102명에 대한 부동산 투기 의혹 조사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의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은 권익위 수장이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전현희 위원장이라며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전 위원장은 민주당을 비롯해 비교섭 5당의 조사 의뢰에 대해 직무회피를 신청하며, 권익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당초 국민의힘은 권익위 대신 감사원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었다. 감사원이 행정부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기관인 데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논란을 두고 청와대와 대립했던 최재형 감사원장을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9일 “민주당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의뢰한 소속 의원 전수조사는 사실상 ‘셀프 조사’이며, ‘면피용 조사’”라며 “감사원 조사 의뢰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에 전수조사를 맡김으로써 공정성을 담보하고, 조사 방식과 결과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갖고 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감사원의 국회의원 전수조사, 법적으로 불가능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주장한 감사원의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 조사는 정말 선택 가능한 방법이었을까? 감사원이 지난 10일 국민의힘의 조사 의뢰를 거절하며 회신한 내용을 보면, 국민의힘의 기대와 달리 감사원을 통한 조사는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원법 제24조 3항은 “국회·법원 및 헌법재판소에 소속한 공무원은 제외한다”고 감사원의 직무감찰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설령 국회의원 스스로 감사원 조사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감사원이 법이 정한 직무 범위를 벗어나 조사에 임할 수는 없다.

국민의힘은 감사원법을 개정하면 국회의원 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9일 YTN에 출연해 “원포인트로 감사원법 24조를 빨리 개정하자는 게 저희 입장”이라며 “여당에서 아마 동의를 해 주신다면 이것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감찰 범위를 국회의원까지 확대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 같은 방송에 출연했던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을 조사·감찰할 수 있도록 감사원법을 개정하면 대한민국의 정부 조직 구성원리인 삼권분립의 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반대했다. 위헌 소지가 있는 법 개정이 빠르게 마무리될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그로 인한 부작용도 간과하기 어렵다.

감사원이 아닌 다른 대안은 없었을까? 국회 내부에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있지만 11명으로 구성된 공윤위가 수백명의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을 모두 조사하기는 어렵다. 총 470명 규모로 어느 정도 조사역량을 갖춘 국민권익위원회에 맡기는 방법 외에는 사실상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감사원 카드를 꺼내들기보다는 오히려 권익위의 중립적 조사를 보장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편이 도움외 됐을 것으로 보인다.

◇ 석 달 만에 뒤바뀐 여야의 ‘내로남불’

더 큰 문제는 감사원의 국회의원 조사 가능성 여부를 이미 여야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주호영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조사는 가장 엄격하게 제3의 기관이 해야 한다”며 “감사원이 국회의원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 전 대표는 3일 후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시 “감사원은 삼권분립 원칙 때문에 국회의원을 감사할 수 없다”며 차라리 국회에 조사특위를 꾸리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석 달 전에 감사원의 국회의원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난 9일 감사원에 조사를 의뢰한 셈이다.

이에 대해 ‘꼼수’라고 비판하는 여당도 사실 할 말은 없다.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에 감사원 조사를 받으라며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박성준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3월 31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소속 국회의원의 부동산 전수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국민의힘의 모습을 보면서 조사를 받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며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주장했고 신뢰한다는 감사원에 전수조사를 즉각적으로 의뢰하고 추진하라”고 말했다. 

결국 당내외의 비난에 휩싸인 국민의힘이 권익위에 조사를 의뢰하며 사태가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감사원의 국회의원 조사 가능성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가 3개월 전과 서로 뒤바뀐 주장을 하며 갈등을 심화시킨 것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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