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 "국내 금융사 탈석탄 투자 기준 모호, 해외금융사는 명료"

지난해 7월 호주 청소년단체가 삼성 금융계열사에게 호주 석탄사업을 운영하는 인도 아다니 그룹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마켓포시즈
지난해 7월 호주 청소년단체가 삼성 금융계열사에게 호주 석탄사업을 운영하는 인도 아다니 그룹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마켓포시즈

국내 금융권에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바람이 불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탈석탄 투자를 선언하는 금융사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투자·평가 기준을 세우지 못해, 뒤늦게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고 투자를 철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23일 석탄사업 투자를 중단하라는 호주 환경단체의 요구를 받고, 호주 석탄항만 사업에 참여 중인 인도 아다니 그룹 계열사 '아다니 포트'(Adani Ports)의 지분을 처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의 이번 결정은 호주 청소년기후단체와 환경단체 ‘마켓 포시즈’의 압박에 따른 것으로, 이들 단체는 호주의 대형 석탄광산 사업인 ‘카마이클 광산’ 사업을 저지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삼성그룹 금융계열사가 해외 석탄발전 사업에 투자했다가 철회를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삼성증권은 아다니 그룹  소유의 애봇포인트 석탄 터미널 사업에 투자한 사실이 밝혀져 현지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불매운동에 나서자, 결국 지난해 7월 해당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불분명한 국내 금융사 탈석탄 투자 기준, 해외는?

문제는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이미 지난해 11월 ‘탈석탄’을 선언하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이미 지난 2018년부터 석탄발전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중단한 상태다. 

호주 석탄발전 투자를 철회한 삼성증권과 삼성자산운용 또한 지난해 12월부터 ESG 투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친환경 관련 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 중이다. 이번 사태는 국내 금융그룹 중에서는 비교적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삼성 금융계열사들마저 탈석탄 투자와 관련해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후솔루션은 “국내 금융기관이 해외 석탄 개발 사업에 우왕좌왕하는 하는 이유는 석탄 사업에 관한 투자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금융사들이 탈석탄을 외치면서도,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에 대한 투자만 중단한 채 그 밖의 세부기준은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투자 대상 기업의 매출 구조나 규모, 석탄 관련 설비 규모의 비중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 없이 ‘탈석탄 투자’가 이뤄진다면, 결국 삼성자산운용과 같은 사태가 재발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해외에서는 비교적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탈석탄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악사(AXA) 자산운용은 ▲석탄화력발전소로 30% 이상의 수익을 내거나 전기를 생산하는 회사 ▲매년 2000만톤 이상의 석탄을 채굴하는 회사 ▲10GW 이상의 석탄발전 설비를 보유 중인 회사 ▲신규 석탄 관련 인프라 개발에 참여 중인 회사 등을 ‘석탄 기업’으로 정의하고 투자 대상에서 배제했다. 알리안츠(Allianz) 또한 ‘석탄 기업’의 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해 오는 2040년까지 모든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석탄 관련 투자를 종결하겠다고 발표했다.

◇ 홍보수단 전락한 'ESG 투자' ‘ESG 워싱’ 우려 높아져

탈석탄 뿐만 아니라 최근 금융계를 휩쓸고 있는 ESG 열풍도 투자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5월 발표한 ‘ESG 투자 위험의 증가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ESG 투자에 대한 관심과 투자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이와 관련된 투자자 리스크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평가의 불투명성과 투자 기준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소위 ‘ESG 워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투자 기준이 불확실해 ESG 평가의 일관성이 낮아지면서, 자칫 ESG가 금융상품 판매를 위한 마케팅 용도로 악용될 여지도 늘어났다는 것. 투자자 입장에서도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통해 산출된 표준화된 ESG 등급이 없다면, 환경 파괴 기업에 대한 투자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ESG 및 탈석탄 투자 기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실제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5월 기금운용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석탄채굴·발전산업에 대한 투자제한전략(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하반기 연구용역을 진행해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뒤늦게라도 아다니 포트의 주식을 처분하기로 한 삼성자산운용의 결정은 환영할 만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국내 금융기관의 '탈석탄 선언'의 한계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신규 석탄발전 산업에 대한 대출 및 회사채 투자 제한으로 국한된 현재의 탈석탄 기준을 넘어, 석탄 기업 투자 배제 기준 확립과 주식을 포함한 금융상품 전반에 대한 투자 제한 기준이 조속히 설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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