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양형 논란, ‘진지한 반성’의 기준은?
성범죄 양형 논란, ‘진지한 반성’의 기준은?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07.05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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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성범죄자 감형 사유.(단위: %) 자료=용혜인 의원실
2019년 성범죄자 감형 사유.(단위: %) 자료=용혜인 의원실

“모든 분께, 정말 미안합니다. 박사라는 가면 뒤에 숨어 한 없이 비열했던 제 과거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피해 입은 분들과 함께해주어서, 뒤틀린 죄인을 꾸짖어주셔서, 아프지만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모두에게 빚을 졌습니다.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씨가 지난달 1일 항소심에서 42년형을 선고받아 지난해 11월 1심(45년형)에 비해 3년 감형됐다. 이날 조씨의 부친은 조씨가 직접 쓴 반성문을 처음 공개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조씨의 죄질 자체도 나쁘지만, 구속된 후 수백 장의 반성문을 제출해놓고 1심 선고 후 형이 과하다며 항소하는 등 반성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씨가 감형된 이유는 초범인데다 일부 피해자와 합의했기 때문이며, 수백 장의 반성문이 감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성범죄 가해자의 반성이 진심인지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도, 증거도 불명확한 상황에서 몇 장의 반성문이나 기부 등 형식적인 반성으로 형이 줄어드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대학생 리포트, 자기소개서 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성범죄자 반성문 양식. 3000원을 내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자료=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대학생 리포트, 자기소개서 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성범죄자 반성문 양식. 3000원을 내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자료=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성범죄 70%는 반성 덕에 감형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강간과 강제추행, 장애인과 13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성폭행, 성폭행 과정에서 상해를 입혀 재판에 회부된 성범죄자 10명 중 7명이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형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용혜인 의원실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9년 판결문에 양형 기준을 적용받았다고 기재된 성범죄 4825건 중 3420건(70.9%)에서 감경 사유로 ‘진지한 반성’이 채택된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성범죄 양형기준뿐만 아니라,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도 ‘진지한 반성’이 일반양형인자로 포함돼있다. 특별양형인자에 비해 감형의 폭은 작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알 수 없는 가해자의 반성이 형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성범죄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2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성범죄 감경 요소가 가해자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다며, 진지한 반성 등 6개 사유를 제외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상담소는 대법원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 이 감경요소로 빈번하게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판결문에서 법원은 가해자의 ‘반성’에 대한 판단 근거를 명확하게 설시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관련 판례들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선례로서의 판례의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로 인해 법관들의 자의적 판단이 이루어짐으로써 양형의 편차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용혜인 의원실
성범죄로 기소된 사람들이 카페에서 감형을 위해 기부 방법을 문의하고 있는 모습. 자료=용혜인 의원실

◇ 성범죄 반성문 대행 서비스도 성행

가해자의 반성이 진심인지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데도 감경 요인으로 빈번하게 적용되다 보니,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형식적인 반성이 남발되고 있다. 상담소는 “(재판부가) 일방적인 후원·기부나 사회봉사 사실을 ‘진지한 반성’에 대한 판단근거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단의 타당성이 의심된다”며 “반성문 대필사업이 공공연하게 성행하고 있는 점, SNS를 통해 ‘양형시 제출서류 팁’이나 ‘성범죄 대응매뉴얼’ 등이 공유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가해자의 반성이 형식적 절차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포털사이트에서 ‘반성문’, ‘성범죄’, ‘형사사건’ 등을 검색하면 쉽게 반성문 모음 파일이나 반성문 대행 서비스를 찾을 수 있다. 한 법률서식 사이트에서는 5만원에 380쪽의 반성문 모음집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고, 대학 리포트나 자기소개서 등을 거래하는 사이트에서도 강제추행 범죄자가 작성한 반성문을 3000원에 살 수 있다. 해당 자료에는 “반성문은 1회 작성으로 끝날 게 아니라, 사건종결 및 판결선고까지 계속 작성해 제출하는게 좋다”는 내용의 조언까지 적혀 있다.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반성문 서식이나 대필 서비스를 통해 작성한 반성문에 어떤 ‘진심’이 담겨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일방적인 기부 내역을 들이밀며 반성의 근거라고 우기는 경우도 많다. 실제 지난 2015년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지하철 몰래카메라범에게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정기 후원금을 납부하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는 이유로 300만원의 벌금형을 유예한 바 있다. 상담소에 따르면, 피고인은 검찰 기소 즈음 후원금을 납부하기 시작했으며(10만원씩 5회), 1심 선고 직후 1회 더 납부한 뒤 후원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이러한 ‘가짜 기부’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성범죄자로부터 기부·후원 제안을 받았거나, 납부가 확인된 사례는 모두 101건에 달한다. 

 

올해부터 시행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진지한 반성이 감경 요소에 포함돼있다. 자료=대법원
올해부터 시행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진지한 반성이 감경 요소에 포함돼있다. 자료=대법원 양형위원회

◇ ‘진지한 반성’, 판결문에 근거 제시하거나 양형기준에서 제외해야

감형을 위한 노하우가 성범죄자 상담 카페 등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지난 2010년 개설돼 현재 회원 수가 5만명이 넘는 한 카페에서는 강제추행, 성매매, 아청법, n번방, 소라넷 등 다양한 이유로 기소된 이들이 감형 노하우를 주고받고 있다. 물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후회하고 뉘우치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피해자와의 합의 방법이나 기부·봉사 방법, 변호사 선임, 판결 예상 등에 대한 질문과 조언으로 채워져있다. 

용혜인 의원은 “심지어 장애인과 13세 미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조차 초범이라는 이유와 반성문을 썼다는 이유로 감형해준다면, 이는 국민의 법 감정과 심각하게 유리된 처사”라며 “‘진지한 반성’ 조항을 양형기준 감경 사유에서 전면 제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만약 ‘진지한 반성’을 계속 감경 사유로 적용해야 한다면, 구체적인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진지한 반성’ 여부를 양형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고려했다면, 어떤 점에서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했다고 판단했는지를 판결문에 설시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판단의 이유를 설시하지 않은 채 반성하였다는 점만 기재하게 되면 ‘진지한 반성’을 감경요소로 남용하는 현상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양형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아 국민이 사법부의 판결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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