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지난 2019년 7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났다. 초기에는 한국 반도체 시장에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성장하고 핵심 소재의 대일의존도가 낮아지는 등 전화위복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 대일 의존도↓

일본 수출규제의 핵심 품목은 한국의 핵심 수출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이다. 일본은 2019년 8월 2일부터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제공하는 백색국가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통제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2일 발표한 ‘대(對) 일본 소재부품 교역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수출액은 총 639.3억 달러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으며, OLED 수출은 109.1억 달러로 6.4% 늘어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언택트 수요가 늘어나면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수출도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정체되지 않은 것은 국내 소부장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규제품목에 대한 대일의존도를 낮췄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불화수소의 대일 수입액은 지난 1~5월 기준 46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840만 달러)에 비해 6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아직 90% 이상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국산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고 있는데다 대체소재를 사용하면서 타격을 최소화시켰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폴더블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을 제조하는데 사용되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2월 업계 최초로 UTG(울트라 씬 글라스·Ultra Thin Glass) 상용화에 성공했다. UTG는 플라스틱 기반의 폴리이미드가 아닌 유리 윈도우 기반이기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사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여전히 80%대의 일본 의존도를 보이고 있는데다, 다른 품목에 비해 국산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올해 1~5월 일본 수입 비중이 85.2%로 전년 동기 대비 3.4%p 하락했다. 수출 규제 직전인 2019년 1~5월 일본 수입 비중이 91.9%였던 것에 비하면 완만하지만 의존도가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벨기에를 통한 우회 수입과 동진쎄미캠 등 국내 업체의 기술 개발, 미국 듀폰 및 일본 TOK의 국내 생산시설 투자유치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3대 품목을 포함한 100대 수출규제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 또한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100대 품목의 일본 수입의존도는 2019년 1~5월 31.4%에서 올해 같은 기간 24.9%로 6.5%p 감소했다. 이는 2017~2019년 감소폭이 -2.1%p임을 고려하면, 수출규제를 기점으로 감소 추세개 세 배 이상 빨라진 셈이다. 

 

한국 소재(왼쪽) 및 부품산업 대일 무역수지비 추이. 자료=현대경제연구원
한국 소재(왼쪽) 및 부품산업별 대일 무역수지비 추이. 자료=현대경제연구원

◇ 다시 늘어나는 대일 무역적자, 장기 기술개발 전략 추진 필요 

이처럼 일본 수출규제를 국내 소부장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소부장 기업과 대기업, 정부 간의 연대를 통해 건강한 소부장 생태계를 형성한 덕분이다. 우선 일본에 주요 품목을 의존해오던 대기업들은 생산라인을 소부장 기업에 개방해 기술을 검증하고, 시험을 통과한 기술은 과감히 적용했다. 실제 수요 대기업의 소부장 기업에 대한 설비개방은 2018년 단 한 건도 없었지만, 2019년 12건, 2020년 74건으로 크게 늘었다.

정부 또한 소부장 기업 지원을 위해 연구개발 지원금 등을 추경에 반영해 소부장 기업 한 곳당 22.4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정부가 조성한 소부장 정책펀드도 올해 6월 기준 1조원을 넘어섰다. 

다만 지난 2년 간의 일본 수출규제가 우리 경제에 기회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특정 품목에 대해서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데다, 대일 무역수지 또한 다시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한국무역협회, 관세청 등에 따르면, 올해 1~5월 한국은 대일 무역에서 전년 같은 기간(74억 달러) 보다 35% 늘어난 100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중간재를 가공해 수출하는 국내 산업구조 상, 수출이 회복될수록 일본으로부터의 소재부품 수입 규모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재부품산업의 대일 무역수지비는 수출규제 전인 2018년 0.48배에서 2020년 0.43배로 하락했다. 2018년 대비 2020년 무역수지비가 개선된 소재산업은 1차 금속제품 뿐이었으며 ▲고무 및 플라스틱제품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섬유제품 ▲비금속광물제품 등 나머지 4개 산업은 모두 무역수지비가 악화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수출규제 시행 후 2년간 국산 소재부품 개발력 강화 및 수입선 다변화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특정 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양국 교역 규모가 축소되면서 대일 무역수지 적자 폭도 다시 커지고 있는 등 부정적 측면도 상존해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어 ▲핵심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장기 투자전략 추진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국내외 혁신생태계 강화 ▲핵심 소재부품 국내 조달을 위한 정책 노력 ▲소재부품 최종 수요처인 국내 마더 팩토리의 경쟁력 강화 ▲한일 상호 협력을 통한 안정적 교역질서 유지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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