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작은 정부론'을 이유로 통일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작은 정부론'을 이유로 통일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작은 정부론’이 정치권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통일부의 폐지를 주장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반발에 부딪히자, ‘작은 정부론’을 폐지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페이스북에서 “대륙영토 명시한 대만에도 통일부 없고 북한도 통일부 없다고 이야기하니 이상한 반론들이 하루종일 쏟아진다. 젠더감수성이 없다느니, 윤석열 총장 의혹을 덮으려고 한다느니... 이 중에 어느 것이 ‘실질적으로 역할과 실적이 모호한 통일부가 부처로 존재할 필요는 없다’에 대한 반론인가”라며 “‘작은정부론’은 그 자체로 가벼운 정책이 아니고 반박하려면 ‘큰 정부론’이라도 들고 오거나 국민에게 ‘우리는 공공영역이 커지기를 바란다’라는 입장이라도 들고 오라”고 말했다. 

12일 오전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 “작은정부론에 따라 여성가족부와 통일부에 대한 폐지 필요성 언급을 하니 민주당의 다양한 스피커들이 저렴한 언어와 인신공격으로 대응했다”며 여당에 대해 “국민들이 보고 있다. 최소한의 품격을 갖춰달라”고 비판했다.

◇ 부처 수, 국가마다 사정 달라...

이 대표가 처음 통일부 폐지 주장을 내놓은 것은 지난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다. 당시 이 대표는 “보수쪽 진영은 원래 작은 정부론을 다룬다. 우리나라의 부처가 17개, 18개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부서가 좀 많다”며 여가부뿐만 아니라 통일부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주장은 부처의 수를 줄여 정부의 크기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정부의 크기를 ‘부처의 수’로 판단한다면 한국은 ‘큰 정부’일까? 현재 한국의 부처 수는 총 18개로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15개), 프랑스(16개), 내각제인 영국이나 독일(14개)보다 많은 편이다. 

하지만 국가별로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에 따라 특수한 부처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부처의 수로 정부의 크기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실제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통일부를 둔 한국처럼, 프랑스는 분산된 해외 영토를 관리하기 위해 해외영토부를 두고 있다. 미국은 주 정부의 권한이 커 연방정부의 부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캐나다는 여성가족부 기능을 4개 부처가 나눠 맡고 있으며 총 부처 수가 34개나 된다. 이들 국가의 부처 수를 두고 한국보다 큰 정부라거나 작은 정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 비중. 자료=OECD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 비중. 자료=OECD

◇ 한국 정부, 재정지출·고용비중 모두 OECD 하위권

그렇다면 정부의 크기를 잴 수 있는 다른 지표는 없을까? 정량적인 지표로 고려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공무원 및 공기업 임직원 수다. 공공부문 고용이 총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큰 정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부 고용 비중은 비슷한 소득 수준의 다른 국가보다 낮은 편이다.

OECD가 발표한 ‘한 눈에 보는 정부(Government at a Glance) 2021’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정부 고용(일반정부, 지방정부, 사회보장기금 등) 비중은 8.13%로 OECD 평균(17.9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장 높은 것은 노르웨이(30.69%)였으며, 비교적 큰 정부를 지향하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일본(5.89%) 뿐이었다.

물론 공기업까지 포함할 경우 수치가 올라가겠지만, 그조차도 OECD 평균보다는 낮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공부문(정부+공기업) 일자리는 260만2000개로 이 가운데 공기업 비중은 14.7%(38만2000개)다. 총 취업자 수 대비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은 9.5%로 OECD 평균(정부 고용)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공공부문의 고용규모보다는 정부가 민간에 미치는 영향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이를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량 지표는 정부의 재정지출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재정지출을 비교해봐도 한국이 ‘큰 정부’라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 비중은 33.9%로 OECD 평균(40.8%)보다 6.9%p 낮다. 프랑스가 55.6%로 가장 높았으며, 한국보다 낮은 곳은 스위스, 멕시코, 인도, 인도네시아 등 4개국 뿐이었다. 

물론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추경을 수 차례 편성하는 등 공격적인 확장 재정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정부지출이 크게 늘어났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국은 코로나19 이후 재정정책을 소극적으로 활용한 국가에 속한다.

사회공공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코로나19 위기와 외국의 사회보장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가 재정지출은 GDP의 3.4%로 한국을 제외한 OECD 35개국 평균(7.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G20 국가 중 한국보다 재정지출을 적게 한 국가는 인도, 러시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 5개국 뿐이었다. 

 

총 취업자 수 대비 공공부문 고용 비중. 자료=통계청
총 취업자 수 대비 공공부문 고용 비중. 자료=통계청

◇ 부처 수 줄이면 정부가 작아질까?

정부의 인적 규모와 재정지출 중 어느 쪽을 기준으로 해도 한국은 ‘작은 정부’다. 물론 이것만으로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나눌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작은정부론은 민·관의 권력균형을 염두에 둔 개념이며, 정부의 권한과 개입 범위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이러한 이유로 작은정부론을 꺼낸 것이었다면, 통일부와 여가부를 폐지하면서 이들 부처의 기능 전체 또는 일부를 민간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 하지만 9일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남북관계는 통일부가 아니라 청와대·국정원이 관리해왔다”며 “외교와 통일 업무가 분리된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통일부는 사실상 역할이 미미하기 때문에, 청와대, 외교부, 국정원 등 다른 부처가 업무를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정부의 권한과 개입 범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이는 유지하돼 부처의 수만 줄이자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부처의 수를 줄이자는 것이 작은정부론의 근거라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대표는 “작은 정부론은 가벼운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이 대표가 내민 통일부 폐지론의 근거는 너무 가볍다. 

◇ 통일부 업무는 남북대화뿐일까?

물론 통일부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통일부가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통일부를 존치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 대표가 파악하고 폐지론을 꺼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통일부의 업무는 남북대화뿐만 아니라 통일교육, 북한 이탈주민 정착 지원, 정세 분석,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하다. 이 중 통일부가 가장 많은 예산을 쏟고 있는 업무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남북대화가 아니라 탈북자 지원사업이다. 

통일부의 올해 총지출 기준 일반회계 예산은 2294억원으로 이 가운데 사업비는 1655억원이다. 통일부의 올해 사업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북한 이탈주민 예산(979억원)으로 전체 사업비의 59.1%를 차지한다. 정세분석(133억원)이나 남북회담(33억원) 등 대북정책 관련 사업비는 오히려 적은 편이다.

이 대표는 남북대화에 있어서 통일부의 역할이 미미하고 성과도 없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일부의 기능을 문제삼아 폐지론을 주장하고 싶었다면, 오히려 탈북자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7일 페이스북에서 이준석 대표의 통일부 폐지론을 반박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7일 페이스북에서 이준석 대표의 통일부 폐지론을 반박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 통일부 업무를 외교부에 넘겨도 될까?

이 대표는 통일과 외교 업무가 분리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대만과 북한도 통일부와 같은 위상의 부처가 아닌 위원회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외교부가 있는데도 굳이 통일부를 두는 데는 이유가 있다. 통일부의 존재는 우리 정부가 통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직 우리는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북한과의 관계를 국가대 국가의 관계로 인정한다면 외교부가 통일 업무를 담당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별도의 부처를 둘 수 있다.

통일 전 독일 또한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당시 서독은 동독을 통일의 대상으로 보고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 업무를 외교부가 아닌 내독관계부가 담당했다. 물론 주로 수상청이 동독과의 관계를 주도했지만, 내독관계부의 위상과 영향력이 시기에 따라 달라졌을뿐 통일 시점까지 유지됐다. 서독 외교부가 전면에 나서 동독과의 관계를 주도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동독의 동베를린에는 외교부 소속의 대사관이 아니라 수상청 산하 상주대표부가 주재했다. 잠재적인 통일의 대상인 동독과의 관계는 국가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는 동방정책을 편 빌리 브란트 수상이 ‘1민족 2국가’ 체제를 인정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동독은 1971년 전당대회에서 독일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서독을 외국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본에 설치된 동독 상주대표부는 외교부 소속으로 돼있었다. 결국 동서독 간의 통일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서독 수상청과 동독 외교부가 대화의 파트너가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결국 통일부 폐지는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통일의 가능성을 포기하겠다는 공식 선언과 마찬가지다. 물론 이러한 논의도 있을 수 있지만, 이 대표가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통일부 폐지론을 주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 대표의 주장에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남북한도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가 남북한관계를 내적 외적으로 완전한 독립적 국가관계로 인정한다면 재통일과정에서 외교적으로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며 “외교부는 남북관계, 통일의 외적 측면을 담당하고 통일부는 순수한 남북간 교류협력문제를 다룬다면 양부처간 업무의 충돌도 없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이어 “통일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우리의 통일의지를 확고하게 천명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며 “통일부는 존치되어야 하고, 이대표도 언행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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