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14일(현지시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입법 패키지 '핏포55'(Fit for 55)를 발표했다. 사진=싱크탱크 브뤼겔(Bruegel) 홈페이지 갈무리
EU가 14일(현지시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입법 패키지 '핏포55'(Fit for 55)를 발표했다. 사진은 싱크탱크 브뤼겔(Bruegel)이 요약한 핏포55의 세부 내용. 자료=브뤼겔 홈페이지 갈무리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빨라지면서, 환경단체의 구호나 정책과제로만 여겨졌던 ‘탄소중립’이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탄소저감에 신경을 쓰지 않는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4일(현지시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입법 패키지 ‘핏포55’(Fit for 55)를 발표했다. 핏포55에는 2030년까지 EU의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수준까지 감축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이 담겨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오는 2026까지 도입될 예정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탄소국경세로도 불리는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함유량에 EU ETS(탄소배출권거래제)와 연계된 탄소가격을 부과해 징수하는 제도다. EU는 ETS를 도입해 역내 생산 제품의 탄소배출량에 따라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제는 이를 역외에서 생산된 제품이 EU에 수입될 때도 적용하겠다는 것. 

시범기간인 2035년부터 2025년까지는 수입자가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및 생산국 내에서 지불한 탄소비용을 신고할 의무만 부과되며 탄소세가 부과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2026년부터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탄소배출에 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을 EU 역내에서 생산할 때 10t의 탄소가 배출되고 수입품은 11t의 탄소를 배출한다면, 수입자는 초과된 1t에 해당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구매비용만큼의 관세를 납부하게 되는 셈이다. 다만 수입품이 생산된 국가에서 ETS를 통해 탄소배출 비용을 치른 경우에는, 이미 지불한 금액만큼 감면받을 수 있다. 

 

EU가 14일(현지시간) 발표한 '핏포55'(Fit for 55) 중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관련 내용. 자료=사단법인 넥스트
EU가 14일(현지시간) 발표한 '핏포55'(Fit for 55) 중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관련 내용. 자료=넥스트

◇ 탄소 1t당 30유로 부과시 관세율 1.9% 수준 비용 부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국내 수출기업도 EU의 CBAM 도입에 따른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가 지난 5일 발표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한국의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1990년부터 2016년까지 약 4821만t의 이산화탄소를 수출했다. 이는 전 세계 배출량의 1.5% 수준으로, 중국(25.8%), 미국(12.8%), EU(8.8%), 일본(2.7%) 등에 이어 8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렇다면 탄소국경세가 도입될 경우 한국의 수출기업은 어느 정도의 부담을 지게 될까? KIEP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014~2018년 EU 역외 평균 수입액의 2.5%를 차지한 8위권의 교역국이다. 만약 EU가 전 산업분야에 이산화탄소 1t당 30유로(약 4만원)의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은 약 1.9%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과 같은 수준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EU는 우선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 등 5개 분야에 탄소국경세를 적용하기로 했는데, 특히 철강과 알루미늄 기업들이 CBAM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KIEP는 ▲기계 및 장비류 ▲화학 및 비금속 ▲금속 ▲석탄 채굴 및 원유·천연가스 추출) 등 탄소배출 집약도가 높은 특정 산업을 대상으로 부과하는 경우, 금속 분야의 관세율 추정치(2.7%)가 타 분야(화학 및 비금속 1.3%, 기계 및 장비류 0.8%)에 비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무역상대국의 반발 등을 고려해 EU가 예상보다 탄소국경세 도입안을 완화하면서, 오히려 CBAM 도입이 국내 기업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이번 EU의 핏포55에는 전력소비로 인한 간접적인 탄소배출량이 세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비영리 에너지·환경정책 싱크탱크 ‘넥스트’는 지난 15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전반적으로 그간 논의돼왔던 것보다 의무의 범위가 축소됐다”며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시범기간 동안 행정적인 부담 이외의 영향은 없으며, 2026년까지 수출 가격 경쟁력에 대한 충격이 유예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 또한 “철강 산업 입장에서 보면 부담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EU와 전기로 비중이 비슷해, 구매해야 하는 배출권의 양이 적기 때문”이라며 “현재 EU 내에서는 철강 생산 생산능력(CAPA)의 감축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며,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물량이 줄어들 시 한국 철강 제품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EU가 주요국 수입품에 탄소 관세를 부과할 경우 산업별 생산(위) 및 수출 규모 변화.(단위: %) 자료=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EU가 주요국 수입품에 탄소 관세를 부과할 경우 산업별 생산(위) 및 수출 규모 변화.(단위: %) 자료=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 CBAM 대응, 탄소배출권 거래제 합리화 등 정책 노력 필요

물론 2025년까지 시범기간이 주어졌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국내 기업의 부담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전 세계적인 움직임인 만큼, 그동안 탄소세 도입 등과 관련해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왔던 경영계 입장에서도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넥스트는 이번 EU가 발표한 탄소국경세 도입안에 대해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지만, 점차 강도를 높여갈 것”이라며 “전력소비를 통한 탄소배출도 지속적으로 포함이 논의됐던 부분이라, 비록 시범기간 동안에는 제외됐지만 2026년부터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넥스트는 이어 “현재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하에서는 90% 이상의 무상할당과 과다할당으로 탄소 다배출 업체라도 배출권을 유상구매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EU에 탄소비용을 징수당하지 않으려면 현재의 배출권 거래제 총 할당량 축소 및 무상할당 비율 조정 등을 통해 실제 기업에서 지불하는 탄소 비용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KIEP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무역 의존도가 높고 이산화탄소가 다량 배출되는 제조업 위주의 교역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주요국의 규제 동향을 상시 모니터링하며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취약 산업의 저탄소 전환 ▲저탄소 기술 혁신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국제 협력 등을 위해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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