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환경단체들이 19일 현대건설에 베트남 석탄발전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자료=기후솔루션
국내외 환경단체들이 19일 현대건설에 베트남 석탄발전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자료=기후솔루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선언한 현대건설이 최근 베트남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하면서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탈석탄 흐름에 역행하는 현대건설에 대해 해외 연기금마저 투자 결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 자칫 현대차그룹 전체의 평판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19일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 기후솔루션, 청소년기후행동, 청년기후긴급행동 등 국내 환경단체 및 호주·일본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이사 및 관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베트남 꽝짝1 석탄화력발전사업 참여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현대건설은 지난달 18일 베트남 중부 꽝빈성 내 꽝짝현에 1400MW 발전소를 건설하는 공사를 수주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계약금액은 9488억원으로 현대건설의 지분 65%를 원화로 환산한 금액이다. 이는 현대건설의 지난해 매출액(16조9709억원)의 5.59%에 해당하는 규모다. 

환경단체들은 윤 대표에게 보낸 서한에서 “신규 석탄 발전소 사업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기후위기와 투쟁하는 인류의 노력을 무산시키는 최악의 선택”이라며 “베트남 석탄사업은 재무적으로도, 환경적으로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의 발전원별 전력생산 비중. 자료=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베트남의 발전원별 전력생산 비중. 자료=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 현대건설의 베트남 석탄발전 사업, 재무·환경적 리스크는?

꽝짝 발전소 사업의 가장 큰 재무 리스크는 베트남의 빠른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베트남 발전설비 용량은 총 55.9GW로 이 중 수력을 제외한 재생에너지는 6.4GW(11.4%)를 차지했다. 아직 수력(20GW)과 석탄(19.7GW)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2000~2019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의 연평균 증가율이 26.8%일 정도로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빠른 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이하 코트라) 또한 지난 4월 발표한 ‘베트남에 불어오는 신재생에너지 바람’ 보고서에서 “베트남의 신재생에너지 시장 가치가 7140억 달러(태양광발전 2800억, 풍력발전 4400억)로 추산될 만큼 잠재성을 보이고 있다”며 “(베트남은) 에너지 전환속도가 빠르며, 특히 신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베트남은 차기 전력계획인 ‘8차 전력개발계획’을 논의하면서 204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42%로 늘리는 한편, 석탄화력 발전 비중은 2030년까지 27%, 2045년까지 17~18%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베트남 정부가 장기적으로 석탄발전 비중을 낮출 것이 예정된 이상, 석탄발전 사업의 안전성과 수익성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서한에서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지역에서 재생에너지의 단가가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석탄화력발전소는 대표적으로 ‘좌초자산’ 위험에 노출된 사업”이라며 “베트남에서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강도를 고려했을 때 지금 계획 단계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사업은 설비 수명을 채우기 어렵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단기적으로 공사가 완료되기 전에 정책 변경으로 인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꽝짝1 사업이 가지는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환경단체들은 서한에서 “‘초초임계압’(USC) 기술을 적용한 석탄화력발전소라 할지라도 실제 에너지 효율 개선 효과는 5-10%에 불과해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 ‘친환경’이라고 볼 수 없다”며 “베트남의 현지 대기환경기준은 우리나라보다 10-20배 수준의 오염물질 배출을 허용하고 있어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및 미세먼지 배출이 많은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인근 주민들의 환경피해는 극도로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5월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한국위원회가 발표하는 '2020 CDP KOREA 명예의 전당'에 3년 연속 선정됐다고 밝혔다. 사진=현대건설 홈페이지 갈무리
현대건설은 지난 5월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한국위원회가 발표하는 '2020 CDP KOREA 명예의 전당'에 3년 연속 선정됐다고 밝혔다. 사진=현대건설 홈페이지 갈무리

◇ 현대건설 ESG경영 성과 홍보, 신규 석탄발전사업과 모순

환경단체들은 또한 현대건설의 베트남 석탄발전 사업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ESG 경영’과도 모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현대건설 지속가능경영 협의체’를 발족하고, 올해 5월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한국위원회가 발표한 ‘2020 CDP Korea 명예의 전당’에 3년 연속 선정됐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3년 연속 CDP Korea 명예의 전당 등극은 현대건설의 선제적이고 자발적인 탄소 경영과 기후변화 대응 능력을 평가받는 결과”라고 자평하며 “앞으로도 글로벌 친환경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ESG 경영 성과를 홍보하면서 해외 신규 석탄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서한에서 “기후변화 대응의 최대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주했다는 사실은 현대건설의 ESG 경영방침의 진정성과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의 모순적인 행보는 이미 해외 투자기관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투자결정을 맡고 있는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최근 현대건설을 ‘투자 관찰 기업’(under consideration)으로 지정했다.

환경단체들은 서한에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현대건설의 인도네시아 찌레본2 석탄화력발전사업 수주와 건설 과정의 부정부패 사건에 주목해왔다”며 “대한민국 정부마저 석탄투자 중단 선언에 나서면서 탈석탄 흐름이 완전히 자리잡은 2021년에 현대건설이 베트남에서 신규 석탄화력사업 투자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과 우려를 불러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현대건설의 베트남 석탄발전 사업 논란이 현대차그룹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기·수소차에 주력하며 탈탄소 경영을 선언한 현대차그룹은 지난 7일 ‘RE100(Renewable Energy 100%)’ 프로그램에 참여해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계열사인 현대건설이 해외 석탄발전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면, 그룹 전체의 탈탄소 경영 선언 또한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환경단체들은 “석탄발전사업으로 배출되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는 전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을 무위로 돌리는 무책임한 사업”이라며 “현대건설의 ESG 경영방침이 그린워싱이 아닌 진정성 있는 기후대응 노력의 일환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석탄 사업 중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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