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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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코로나19 사태 종식이 다시 요원해지면서, 계속된 봉쇄조치보다는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방식을 택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치명률과 중증화율 감소를 근거로 코로나19도 독감과 같은 풍토병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과학자들은 아직 코로나와의 공존 전략은 시기상조라며 반박하고 있다.

◇ 확진자 집착 그만, 새로운 방역시스템 고민할 때

실제 영국,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는 이미 강력한 방역정책을 통해 확진자를 줄이는 전략을 포기하고, 봉쇄조치를 해제한 채 코로나19를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지난 19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사적모임 제한 등 모든 방역조치를 해제하고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방식의 삶으로 돌아간 상태다.

코로나와의 공존 전략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배경에는 “백신 접종 이후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감소했다”는 낙관적인 이유와 “델타 변이 확산으로 더 이상 봉쇄조치를 지속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비관적인 이유 두 가지가 놓여있다.

실제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백신접종 이후인 지난달 코로나19 치명률은 0.24%로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해 3월(2.87%) 대비 12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중증화율은 2.22%로 4~6월 3개월간 변동이 없었지만, 이 역시 가장 높았던 지난해 9월(5.9%)의 3분의 1 수준까지 하락했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의 경우 6월 20일부터 7월 10일까지 3주간 중증화율이 10.1%에서 4.8%로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고위험군 중심의 백신 접종이 효과를 본 셈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의료계 전문가들은 치명률이 높았던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방역대책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지난 13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금 코로나19의 치명률을 계산해 보면 한 0.3%쯤 된다. 과거의 코로나보다는 훨씬 치명률이 낮고, 독감의 치명률이 0.1%니까 독감에 훨씬 더 가깝게 된 것”이라며 “백신 접종으로 고위험군에 대한 접종이 이루어지면서 치명률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바뀐 방역 환경에 맞는 새로운 방역전략을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여러 국가들이 코로나와의 공존을 결정한 또 다른 이유는 강력한 봉쇄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감이다. 실제 강력한 봉쇄조치로 인해 방역모범국으로 꼽혔던 호주의 경우, 최근 델타 변이가 확산되면서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시드니대학의 감염병 전문가 알렉산드라 마르티니크 교수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봉쇄조치는 여전히 확진자 수를 줄일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지만, 봉쇄를 통해 델타 변이도 제거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며 “‘0’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시간만이 말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백신 비접종자 사이에 델타 변이가 확산돼 매일 100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수가 발생한 상황에서 봉쇄조치를 활용해 확진자 수가 ‘0’인 상태로 돌아간 사례는, 내 생각에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결국 봉쇄조치의 강도를 높인다고 해도 델타 변이의 확산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확진자 수에 집착하는 기존의 방역정책에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 김윤 교수는 “지금처럼 확진자 숫자를 기준으로 방역을 하면 연말이 돼도 우리는 지금과 같은 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해야 된다. 방역시스템이라고 하는 게 지속 가능하지 않고 접종률이 올라간다고 해서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점진적으로 현재 방역시스템을 코로나와 공존하는 시스템, 그러니까 싱가포르 모델에 가까이 가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게 더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과학자 120명이 지난 7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랜싯을 통해 영국 정부의 방역 해제 조치를 비판했다. 자료=랜싯
전 세계 과학자 120명이 지난 7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랜싯을 통해 영국 정부의 방역 해제 조치를 비판했다. 자료=랜싯

◇ 과학자 120명 “코로나19와 공존은 시기상조”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와의 공존 전략이 당장 도입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방법이라며 영국 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전 세계 120명의 과학자들은 지난 7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랜싯(LANCET)에 서한을 보내 “우리는 영국 정부의 (봉쇄 해제) 결정이 위험하고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영국 정부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역 해제 결정으로 인해 아동·청소년 및 아직 백신을 접종받지 못한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27일 기준 영국의 1차 접종률은 88.1%, 2차 접종률은 70.5%로 매우 높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위험군인 고령층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이상, 젊은 층의 접종률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실제 최근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영국 확진자 급증의 배경에는 아동·청소년 및 청년층의 높은 감염률이 놓여있다. 이들은 지난 5월 20일부터 6월 7일까지 REACT-1 유병률 조사를 실시했는데, 5~12세(0.35%)와 18~24세(0.36%)가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나올 확률은 65세 이상 고령층보다 5배나 높았다. 만약 정부가 방역조치를 해제하고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아직 백신접종을 받지 않은 아동·청소년들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경우 교육시스템 또한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또한 영국 정부의 방역해제 조치로 인해 백신에 내성이 있는 변종의 출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으며, 확진자 수 증가로 인해 의료진 및 의료시스템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영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치명률은 지난해보다 낮아졌지만 5월 이후 일일 확진자 수는 급증했다. 뿐만 아니라 사망자 수, 입원자 수, 기계환기 침대 사용자 수 또한 완만하기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만약 중증화율이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한다면 의료인프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이 아직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백신 접종률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7일 기준 한국의 1차 접종률은 34.1%, 2차 접종률은 13.5%에 불과하다. 백신 접종률이 영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역조치 해제는 당장 뽑아들기에는 너무 위험한 카드다. 

랜싯에 서한을 보낸 과학자들은 “코로나19 감염을 방치하는 어떠한 조치도 비윤리적이고 비논리적”이라며 “영국 정부는 현재의 정책을 재고하고, 아동을 포함한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 긴급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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