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회원국의 성별 임금격차. 맨 오른쪽 빨간 그래프가 한국. 가운데 검은 그래프는 OECD 평균. 자료=OECD
OECD 회원국의 성별 임금격차. 맨 오른쪽 빨간 그래프가 한국. 가운데 검은 그래프는 OECD 평균. 자료=OECD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국제적 위상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다. OECD에 따르면,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한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1.5%(2020년)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 2위권인 이스라엘(22.7%, 2018년)과 일본(22.5%, 2020년)과도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하지만 명확한 숫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성별 임금격차는 논쟁의 대상이 된다. “여성은 연봉이 높고 취업이 잘 되는 이공계를 기피한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힘든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단절 위험이 큰 여성을 기업이 기피할 수밖에 없다” 등 임금격차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차별이 아닌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된다. 

특히 ‘경력단절’은 독특한 방식으로 성별 임금격차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된다. 30~40대 이후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임금이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력단절 이전인 20대에서는 임금격차가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통계는 ‘성차별’ 외에는 그 어떤 변수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임금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20대 성별 임금격차, 10년간 더 벌어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국세청에서 받은 ‘근로소득 100분위 성별·연령대별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20대 성별 임금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20대 여성의 평균 임금(총 급여 기준 1480만원)은 20대 남성(1500만원)의 98.5%로 큰 차이가 없었으나, 2019년에는 92.3%(남성 2340만원, 여성 2160만원)으로 격차가 20만원에서 180만원(6.2%p)으로 벌어졌다. 전체 성별 임금격차는 57.9%에서 60.6%로 소폭 개선됐지만, 20대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난 셈이다. 

같은 기간 임금증가율 또한 여성(57.8%)이 남성(50.9%)보다 높았으나, 20대에서는 반대였다. 2009~2019년 20대 여성의 임금증가율은 46.2%로 남성의 임금증가율(55.9%)보다 9.7%p 낮았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근로자 수는 남성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소득 상위권에 속하는 비중은 오히려 낮아졌다. 실제 여성 근로자 수는 2009년 523만명에서 2019년 827만명으로 300만명 가량 증가했으나, 근로소득 상위 50%에 분포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35.8%에서 34.6%로 줄어들었다. 반면 남성 근로자 중 근로소득 상위 50%에 속하는 비율 58.2%에서 61.7%로 증가했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더욱 활발해졌지만,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는 뜻이다.

 

자료=용혜인 의원실
자료=용혜인 의원실

◇ 성별 임금 격차, 경력단절 발생하는 30~40대 더 커져

물론 성별 임금격차는 임신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30~40대 들어 더욱 커진다. 실제 2019년 기준 남성 대비 여성 평균임금은 30대 73%, 40대 58.5%로 연령대가 높아질 수록 급격하게 감소한다. 

하지만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20대에서마저 성별 임금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경력단절’만으로는 한국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군 복무 등으로 취업시장 진입이 늦어져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20대 남성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사회과학계에서는 경력단절과 관계없이 한국 노동시장에 임금격차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김창환 캔사스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2019년 발표한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 대졸 20대 청년층의 졸업 직후 성별 소득격차 분석’ 논문에 따르면, 대학 졸업 후 2년 이내 여성 근로자의 임금은 남성 근로자보다 19.8%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임금격차에 대해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반박은 “임금격차는 성별이 아니라 전공이나 출신 대학, 근속연수, 노동시간, 직종 등 다양한 변수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한국고용정보원의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를 활용해 세부전공과 출신 대학뿐만 아니라 대학 소재지, 어학연수 및 인턴 경험, 자격증, 출신 고등학교 등 가능한 모든 인적자본 변수를 통제했다. 

노동시간 또한 대졸 2년 이내 남성과 여성근로자의 차이는 각각 42.5시간과 41시간으로 거의 같았으며, 시간제 근로자를 제외하고 분석하도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남성과 여성이 선호하는 직종이 달라 임금격차가 발생한다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농림어업, 광업, 제조업, 건설업을 배제하거나 ▲분석대상을 서울에서 출생한 상위 10위권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로 한정해도 결과는 그대로였다. 

 

자료=용혜인 의원실
자료=용혜인 의원실

◇ 저임금 직종에 할당된 20대 여성, 경력단절로 내몰려

성별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임금격차가 발생할 모든 가능성을 고려했지만, 여전히 20대 남녀 근로자의 임금격차가 존재한다는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이러한 여성 불이익의 원인은 여성 차별에 근거한 불평등한 노동시장 할당 기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채용 시 성차별로 인해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낮은 기업과 직종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 

또 다른 문제는 첫 취업 시 저임금 직종으로 할당된 여성은 이후에도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애초에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경력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일을 그만두고 가사에 집중하는 편이 ‘경제적’이게 된다는 것.

김 교수는 “이 연구의 결과는 성별 소득격차의 절반 이상이 경력단절 이전 노동시장의 여성 차별에 기인함을 암시한다”며 “이 경우 기혼 여성의 경력단절은 여성 차별적 노동시장에서 일과 가사를 병행하기보다는 여성의 자원을 가사와 육아로 특화해 가구단위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고 설명했다. 

20대 여성이 취업시장 문턱에서부터 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경력단절을 예방하는데 중점을 둔 정책만으로는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어렵다. 애초에 채용시장에서 성차별을 방지하고 여성이 저임금 직종으로 할당되는 흐름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용 의원은 “‘20대에선 남성이 오히려 차별당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적어도 근로소득 통계로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여성은 20대에서조차 노동시장에서 남성보다 구조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다”라고 말했다.

용 의원은 이어 “일부 정치세력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불평등 현실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주장”이라며 “남성 육아휴직 확대, 채용과 승진에서 차별 금지, 취업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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