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시나리오별 온실가스 감축 후 배출량. 자료=국무조정실
탄소중립 시나리오별 온실가스 감축 후 배출량. 자료=국무조정실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가 내놓은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환경단체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나리오는 석탄발전소 유지를 전제하고 있는데다, 의견 수렴을 위해 진행될 ‘탄소중립 시민회의’ 또한 형식만 민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일 탄중위가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은 ▲석탄발전 유뮤 ▲전기수소차비율 ▲건물 에너지 관리 ▲탄소 포집·저장기술(CCUS) 등의 감축수단 적용 수준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3안은 석탄 및 LNG 발전을 퇴출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감축하는 계획으로, 세 가지 시나리오 중 유일하게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다.

반면 석탄발전소 7기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 1안이나, 석탄발전은 중단하지만 LNG 발전은 활용하는 2안은 각각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2540만톤, 1870만톤에 달한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에서는 탄중위가 무늬만 ‘탄소중립’인 시나리오를 내놨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석탄발전소 7기를 유지하는 1안에 대해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전국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1안에 대해 “이는 탄소중립위원회가 현재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과 다름이 없다”며 “2050 탄소중립을 위한 확실한 ‘신호’를 제시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것이 아닌지 심각한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또한 5일 성명을 내고 “탄소중립 달성에 실패하고 여전히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전망인 1, 2안에 ‘탄소중립 시나리오’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한 것 자체가 탄소중립위의 빈약한 실력을 증명한다”며 “전력부문에서 탈석탄탈화석연료를 달성하지 못하고 수송부문의 친환경차 전환율이 낮은 것도 탄소중립 시나리오라 부르고 평가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별 전력구성 및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국무조정실
탄소중립 시나리오별 전력구성 및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국무조정실

◇ 중간목표 없는 탄중위 시나리오, 사라진 2030 NDC 논의

실제 해외 주요국들의 탄소중립 로드맵과 탄중위가 발표한 초안을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석탄과 원자력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커 한국과 유사한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독일의 경우, 2038년까지 석탄 및 갈탄화력발전 설비를 완전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르투갈 2021년, 스웨덴 2022년, 스페인 2025년 등 수년 내 탈석탄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국가도 적지 않다. 탄중위가 발표한 1, 2안도 2018년(7억2760만톤)에 비하면 90% 이상 감축하는 방안이지만, 2030년을 전후해 석탄발전을 퇴출하겠다는 선진국들의 시나리오와 비교하면 상당히 뒤처지는 셈이다. 

진짜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3안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간 단계 없이 최종 목표만 제시돼 구체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은 3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50년 이전 어느 시점에 언제 화석연료에 기반한 발전소· 수송수단들이 퇴출되는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제시된 연도별 온실가스 배출허용량. 자료=국회사무처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명시된 배출원별 연간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 자료=국회사무처

독일의 경우 연도별로 구체적인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중간목표 또한 기존 계획에 비해 상향조정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석탄을넘어서’가 지난 6일 발표한 ‘독일의 탈석탄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기존 연방기후보호법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불충불하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탄소중립 목표를 단계별로 상향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65% 감축하고 2040년까지는 88% 감축하며, 탄소중립 달성 시기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5년 앞당긴 것. 

반면 탄중위가 5일 발표한 초안에는 단계별 감축목표는커녕, 유엔(UN)이 수정 제출을 요구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지 않다. 윤순진 탄중위 민간위원장은 5일 브리핑에서 2030년 NDC에 대한 질문을 받자 “국회의원들께서 지금 2030년 국가 감축목표를 기본법에 넣을지 말지를 놓고 논의를 하고 있다”며 “국민의 대의기관에서 그런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탄소중립위원회가 먼저 주도적으로 논의를 하는 점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가 유엔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이 목표는 계산 방식만 다를 뿐,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제출한 계획과 거의 차이가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30일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오는 11월까지 상향된 NDC를 유엔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약속한 기한이 석 달 남은 시점에서 탄중위 초안에조차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의문스럽다. 

◇ CCUS로 온실가스 감축? 환경단체 "아직 상용화 안된 기술"

탄소 포집·저장기술(CCUS)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환경단체가 탄중위 시나리오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다. 탄중위는 CCUS에 대한 투자확대 및 기술개발을 통해 최소 5790만톤(3안)에서 최대 9500만톤(1안)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은 이에 대해 “CC(U)S는 기술적 측면에서나 비용의 측면에서나 상용 가능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으며, CCU의 경우 포집된 탄소를 해양 매립하게 되는데, 해양 백화 현상 등 생태계 파괴 우려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며 “세 가지 안이 모두 불확실하고 위험한 기술적 해법에 의존하는 안이라는 것도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탄중위가 아직 상용화되지도 않은 기술을 근거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CCUS가 상용화된다고 해도, 관련 설비를 갖추는데 들어갈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석탄을넘어서'는 "1안에서 상정한 바와 같이 7.3GW에 달하는 신규 석탄발전기들을 존속시키면서도 석탄발전의 비중을 1.5%로 낮추려면, 발전기들의 이용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거나, 아직 상용화되어 있지 않은 대규모 CCUS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며 "쓰지도 않을 석탄발전기들의 건설원가라는 큰 비용과 여기에 추가로 발생할 막대한 CCUS 설비 비용을 고려하면 그 경제적 타당성 역시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멸종저항서울' 회원들이 7일 탄소중립 시민회의 출범식에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규탄하며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멸종저항서울 페이스북 갈무리
시민단체 '멸종저항서울' 회원들이 7일 탄소중립 시민회의 출범식에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규탄하며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멸종저항서울 페이스북 갈무리

◇ 탄소중립 시민회의, 기후위기 피해자 목소리 대변해야

탄중위는 탄소중립 시민회의를 구성해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나리오의 한계를 보완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탄소중립 시민회의 출범식이 열렸는데, 15세 이상 국민 중 무작위로 추출된 500여명의 참가자는 국민을 대표해 약 한 달간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시민회의 구성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민회의의 구성이나 논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데다, 탄중위가 제시한 시나리오의 한계 내에서 논의가 진행될 경우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정의포럼, 멸종저항서울,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등의 시민사회단체는 6일 공동 성명을 내고 “탄소중립 시민회의는 구성과 운영 계획을 사전에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며 “이것은 ‘시민참여’가 아니라 ‘시민동원’이며,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세계 기후정의운동의 원칙 중 하나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시민과 영역(MAPA: Most Affected People and Areas)이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노동자, 농민, 빈민, 주민들은 탄소중립시민회의에 참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또한 “불충분한 시나리오를 토대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여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탄소중립위의 시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시민들의 열린 사유와 제안을 장려하지 않고, 객관식의 안을 제시한 채 그 안의 세부 쟁점 사안에만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유의지를 고립시키는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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