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천별 발전량 추이 및 전망. 자료=코트라(KOTRA)
미국 원천별 발전량 추이 및 전망. 자료=코트라(KOTRA)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전면 중단할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출범 후 국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허가를 전면 중단하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열 기를 조기 폐지하여 석탄화력발전을 과감히 감축했으며, 대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에서 석탄발전 비중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취임 이후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환경정책을 펼쳐왔음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에 치우친 전력구성은 뚜렷하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여전히 신규 석탄발전소가 건설 중인 데다, 정부가 세운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도 석탄발전 퇴출 시점이 늦어 환경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미국은 지난 수년간 뚜렷한 탈석탄 정책 없이도 석탄발전 비중을 극적으로 감소시키는데 성공했다.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며 기후위기 대응에 불쾌한 반응을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석탄발전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었고, 그 공백은 신재생에너지가 채웠다. 

◇ 주정부가 직접 챙기는 ‘탈석탄’

미국이 이처럼 대통령의 환경정책 기조에 흔들리지 않고 탈석탄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체계적인 역할 분담이 있었다.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는 지난 27일 발표한 ‘미국의 탈석탄 정책’ 보고서에서 “미국에서는 지역별로 탈석탄을 이루는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연방정부가 제시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주정부의 재량에 맡겼기 때문”이라며 “트럼프 정부가 석탄 규제를 완화했을 때에는 주정부가 탈석탄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정부가 탈석탄 목표뿐만 아니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정책을 직접 고안하고 조율한다. 반면 미국에서 직접적으로 탈석탄을 추진하는 주체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다. 

예를 들어, 오리건주는 지난 2016년 ▲2030년부터 석탄발전으로 생산한 전력 판매 금지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50% 달성 등의 내용을 담은 ‘청정전력과 석탄전환법’(Clean Electricity and Coal Transition Act)을 제정했다. 당시 오리건주는 이미 마지막 석탄발전소 폐쇄를 4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적극적으로 발전사와 지역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논의를 진행한 끝에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석탄발전 퇴출 시점을 법제화했다.

콜로라도주 또한 지난 2019년,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목표로 로드맵을 세우고 ▲전기·난방 요금에 탄소가격 포함 ▲발전사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80%(2050년 100%) 감축 요구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마련했다. 이 법안에는 탈석탄 의무뿐만 아니라 탈석탄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노동자 및 지역을 대상으로 직무전환교육 및 보조금을 제공하고, 발전사에 설비 폐쇄 90일 전 고용이전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뉴멕시코주는 탈석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증권화’(일정한 자산이나 권리를 바탕으로 증권을 발행하여 해당 자산의 개발과 관리 등에 소요되는 자금을 자본시장에서 조달하는 것) 전략을 도입했다.

탈석탄은 석탄발전소 폐쇄와 재생에너지 전환, 노동자 및 지역사회의 피해 등에 따른 비용 부담을 발생시킨다. 뉴멕시코주는 이를 충당하기 위해 2019년 ‘에너지전환법’(Energy Transition Act)을 제정하고, 재생에너지 전환비용 조달을 위한 증권화를 허용했다. 또한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 일부는 반드시 노동자 및 지역사회의 전환비용 지원에 사용하도록 했다.

애리조나주는 주정부가 직접 발전사에 비용이나 의무를 부과하기보다는 발전사가 자발적으로 탈석탄을 추진하는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다. 특히 태양광 잠재량이 높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발전사들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더 경제적이라 판단하고 석탄발전소를 자발적으로 폐쇄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19년 주 내 최대 규모인 나바호 석탄발전소 폐쇄 당시에는 트럼프 정부가 대기오염 규제를 완화하고 석탄공급사가 가격 인하를 제안했음에도 주요 발전사들의 폐쇄 결정을 되돌리지 못했다. 

◇ 연방정부, 석탄발전 부담 늘리고 재생에너지 경제성 제고

주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탈석탄을 챙기는 동안 연방정부는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 ‘석탄을 넘어서’는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탈석탄 정책을 펼친적이 없지만, 환경규제를 통한 비용부과와 재생에너지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시장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탈석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방정부가 탈석탄 연도를 설정하는 등의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

특히 연방대법원이 지난 2007년 온실가스는 대기오염물질이며 연방환경청(EPA)이 규제 권한을 지닌다는 점을 인정한 뒤로, 규제를 통한 연방정부의 탈석탄 개입이 점차 강화됐다. 연방환경청은 연방대법원 결정에 힘입어 2015년에는 탄소포집 설비 없이는 석탄발전소 건설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신규 발전소의 탄소배출 허용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반면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조금을 제공하고, 주 단위로 공급의무를 부과해 비중을 점차 확대시켰다. 석탄발전 비용은 늘리고 재생에너지 비용은 줄이는 양방향 정책으로 재생에너지가 석탄발전 대비 우수한 경제성을 지니게 되면서 시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실제 코트라(KOTRA)가 최근 발표한 ‘미국 재생에너지 시장 및 에너지전환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21%로 석탄발전 비중(19%)을 넘어섰다.

이처럼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체계적인 역할 분담을 토대로 미국은대선 결과와 상관 없이 일관되게 탈석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중앙정부의 환경정책 기조에 따라 탈석탄 속도가 좌우되는 한국 또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석탄을 넘어서’는 “미국은 연방환경청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탈석탄 정책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주정부 자체적으로 처한 환경에 맞는 탈석탄 정책을 고안하여 이행해 가는 메커니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며 “한국 역시 중앙정부 차원에서 탈석탄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서 지방정부가 고유한 상황에 맞게 자체적인 탈석탄 정책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진행한다면 훨씬 더 빨리 탈석탄 목표에 다가설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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