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서울 금천구 도로변에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임해원 기자
8월 31일 서울 금천구 도로변에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임해원 기자

“건강가정기본법이 개정되면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를 받게 된다”

한국에서 ‘가족’은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주제다. 정상적인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인 믿음이 여전히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성 간의 결혼과 혈연을 넘어선 다른 형태의 가족에 대해서는 백안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상가족에 대한 사회적 믿음은 법률로 구체화돼있다. 건강가정기본법 3조 1항은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가족의 범주를 ‘정상가족’으로 한정할 경우, 결혼제도 외부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사회안전망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건강가정기본법 9조는 가족구성원뿐만 아니라 국가·지자체에게 가족해체를 예방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다르게 보면 법안이 정의한 ‘가족’에 포함되지 않는 형태의 공동체는 ‘건강’하지 않으며 보호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이 때문에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지난해에는 남인순·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법안의 명칭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변경하고, 3조 1항, 9조 등 정상가족을 규정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국가에게 부과된 가족해체 예방의 의무도 “모·부성권 보호 및 적절한 출산·육아환경 조성을 지원할 의무”로 바꿨다. 

◇ 건강가정기본법 개정하면 동성애 합법화?

하지만 현재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보수·종교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가로막혀 있다. 실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지난 18일 법안소위를 열고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려 했으나,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의 반발로 회의를 취소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 배경에는 보수·종교단체의 압력이 놓여있다. 이들은 개정안의 취지대로 가족의 개념이 확장되면 동성결혼이 합법화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 대한예수장로회 합신 동성애대책위원회는 올해 초 남인순 의원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법이 개정되면 대한민국 헌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동성 간 혼인을 실질적으로 합법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에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에 반대하는 국회 청원이 올라와 청원 요건인 10만명을 채우기도 했다. 청원인은 “딸이 여자를 데리고 와서 사위라고 하고, 아들이 남자를 데리고 와서 며느리라고 하면서 가족으로 받아들여달라고 하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또한 자녀가 결혼하지 않고 누군가와 동거하는데, 그들을 법적인 가족이 되게 하는 것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개정안 내용을 보면 동성혼 합법화와 관련된 문구는 전혀 포함돼있지 않다. 결혼을 통해 구성되지 않은 가족을 특정해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사실상 개정안과 동성혼 간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셈이다. 

다만 개정안이 명시적으로 동성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를 다양한 가족의 형태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동성혼 합법화와 개정안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가족관계를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건강가정기본법이 아니라 ‘가족관계등록법’이기 때문이다.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가족관계등록법 등 민법뿐만 아니라 헌법을 개정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실제 미국의 경우 지난 2003년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여러 주에서 입법과 주민투표를 거쳐 동성결혼을 법제화했지만, 2015년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동성혼을 금지한 주에서 결혼관계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도 2013년 별도의 동성결혼법안을 제정한 뒤 보수단체의 반대에도 헌재가 해당 법안에 대해 합헌 판단을 내리면서 동성혼이 합법화됐다. 국내에서도 동성결혼 금지가 위헌인지를 따지고, 그에 따른 민법 개정 및 새로운 법안 제정 등의 과정을 거쳐야 동성혼의 합법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달 27일 올라온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국회 청원이 10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사진=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 가족의 다양성은 우리 사회에 위험한가?

물론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으로 인해 결혼제도 바깥에 놓인 다양한 가족 형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보수·종교단체가 ‘비정상’이라며 반대하는 동성혼이나 동거가족, 혼외출산 등이 일반화되면 정말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할까?

이를 가장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출산율이다. ‘정상가족’을 지지하는 측에서 주장하는 반대논리 중 하나가 가뜩이나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에서 동성혼, 혼외출산 등을 인정하면 혼인율과 출산율이 더욱 떨어져 사회가 해체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성혼을 인정한 국가는 그 뒤 출산율이 떨어졌을까? 2000년 동성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는 출산율이 1.65명(1999년)에서 1.59명(2018년)으로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합법화 이후에는 10년간은 오히려 1.79명(2010년)까지 증가했다. 동성혼이 출산율을 낮춘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비슷한 시기에 동성혼을 인정한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2003년 동성혼을 합법화한 벨기에는 출산율이 합법화 직전 1.65명(2002년)에서 1.86명(2010년)까지 올랐다가 2018년 1.62명으로 감소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동성혼 합법화 이후 출산율에 별다른 변화가 없거나 소폭 감소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오히려 일정 기간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혼외출산도 마찬가지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혼외출산 비중은 2018년 기준 2.2%로 회원국 중 가장 낮지만, 출산율 또한 0.98명으로 꼴찌였다. 혼외출산 비중(2.3%)이 한국 다음으로 낮았던 일본 또한 출산율은 1.42명으로 낮은 편이었다. 이스라엘, 터키 등의 예외를 제외하면 혼외출산 비중이 낮은 국가 대부분의 출산율은 OECD 평균(1.63명) 미만이었다. 반면, 혼외출산 비중이 높은 칠레, 아이슬란드 등의 국가들은 대부분 OECD 평균보다 출산율이 높았다.

물론 동성혼이나 혼외출산이 저출산 극복의 해법이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개인의 결정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도 옳지 않다. 

다만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통해 가족의 다양성이 확장된다고 해서 결혼과 출산이 무시되거나 사회가 위험에 빠진다고 볼 근거는 없다.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의 저자 리 배지트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교수는 2016년 한국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미국과 주요 유럽 국가에서 동성 커플 등록이 가능해지기 전후를 비교하면, 오히려 결혼율은 증가하고 이혼율은 감소했다”며 동성커플이 새로운 양육계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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