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텍사스가 불붙인 낙태법 논란, 한국 상황은?
美 텍사스가 불붙인 낙태법 논란, 한국 상황은?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09.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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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릭 갈런드 미 법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6주 이후 낙태를 전면 금지한 텍사스주의 낙태법 효력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메릭 갈런드 미 법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6주 이후 낙태를 전면 금지한 텍사스주의 낙태법 효력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미국 텍사스주가 사상 최악의 낙태법을 통과시키면서 국내에서도 낙태 이슈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입법 공백이 1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지만, 낙태 허용 기간 등 쟁점이 해소되지 않아 여전히 논의가 진전되는 모양새다.

◇ 텍사스주, ‘심장박동법’ 시행에 美 전역 반발

텍사스주에서 지난 1일(현지시간)부터 시행된 낙태법은 미국 내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낙태를 제한하는 법안에 속한다. 이 법안은 낙태 금지 시기를 기존 임신 20주에서 6주로 앞당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기존에는 예외 사례로 인정받았던 성폭력이나 근친상간 피해자에 대해서도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했다. 임신 6주차는 태아의 심장 박동이 막 감지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임신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워 사실상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 

이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여성의 낙태권을 존중해온 미국 연방대법원의 기조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해당 판결 이후 연방대법원은 임신 기간을 셋으로 나눠, 12주 이내 낙태는 임신부의 판단에 따라, 12주부터 6개월까지는 주 정부의 재량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도록 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과 배치되는 텍사스주의 결정은 미국 전역에 엄청난 반발 여론을 몰고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또한 텍사스주의 낙태법에 대해 “터무니없고 비미국적”이라고 비난하며, 9일 법무부를 통해 해당 법안의 효력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 한국 낙태법 개정안 6건 국회에서 제자리걸음

문제는 텍사스주가 불러온 논쟁이 미국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은 이미 지난 2019년 낙태 금지는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지만, 아직도 기존 법안을 대체할 법안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4월 형법 269조 1항 자기낙태죄와 270조 1항 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리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할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대체입법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낙태법 개정안(모자보건법, 형법)은 정부안 1건, 더불어민주당 2건(박주민, 권인숙), 국민의힘 2건(조해진, 서정숙), 정의당 1건(이은주) 등 총 6건이다. 이 법안들은 모두 낙태 및 낙태 시술을 전면 금지한 기존 법안과 달리 낙태 금지 시기 및 예외 사례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마다 낙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 박주민·권인숙·이은주 세 의원은 모두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7장을 삭제해 낙태죄를 전면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여성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실제 박주민 의원은 낙태 금지 시기를 24주로 정하려다가 주수 제한에 반발한 여성계 의견을 반영해 관련 조항 완전 삭제로 방향을 선회했다.

반면 서정숙·조해진 의원안은 상대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는 종교계의 입장을 반영했다. 조해진 의원안의 경우 텍사스주와 마찬가지로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며, 근친상간 및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경우 10주, 임신부의 건강이 위험할 경우 20주까지 낙태 금지 시기를 연장한다. 서정숙 의원안은 성폭력 피해자 및 사회경제적 곤란을 겪는 임신부에 한해 10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한다. 다만 임신부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주수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또한 두 법안은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원하는 임신부는 전문기관의 상담을 거치도록 했으며 조해진 의원안은 상담 후 7일, 서정숙 의원안은 72시간이 지난 뒤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여성·종교계 사이에서 샌드위치 된 정부의 절충안

정부안은 낙태죄 완전 폐지와 심장박동법의 절충안이다. 정부안은 낙태 금지 시기를 14주로 정하고 ▲성폭력 및 근친상간 피해자인 경우 ▲임신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 ▲임신부가 출산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곤란을 겪는 경우에 한해 24주까지 금지 시기를 연장했다. 또한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는 임신부가 상담을 받고 24시간이 지난 뒤로 제한했다. 

세 종류의 낙태법 개정안 중 절충안인 정부안이 가장 격렬한 비난을 받고 있다. 낙태죄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계는 주수 제한을 둔 정부안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반면, 심장박동법을 지지하는 종교계에서는 낙태 금지 기간이 너무 길다며 태아의 생명권을 무시한 법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양 극단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현재 낙태법 개정안은 소관위 문턱도 넘지 못한 상태다. 그새 헌재가 정한 대체입법 기한은 이미 8개월이나 초과했다. 위헌 판결이 나온 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회는 낙태 문제와 관련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셈이다. 

텍사스주가 사상 최악의 낙태법을 시행한 지 닷새 뒤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에서는 대법원이 낙태금지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세계 각지에서 낙태에 대해 명확한 법적 기준을 세우고 있는 만큼, 21대 국회에서 신속한 처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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