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진로방해 처벌 강화 청원 1년, '절반만 개선'
구급차 진로방해 처벌 강화 청원 1년, '절반만 개선'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09.28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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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을 연 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입법·행정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기됐고,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에는 청와대 및 관계부처가 직접 나서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뉴스로드>는 지난 3년간 20만 이상의 추천을 받은 여러 청원들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검증해봤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해 6월 8일, 서울 강동구의 한 도로에서 폐암 4기의 응급환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던 사설 구급차를 택시가 막아서는 사건이 발생했다. 구급차가 차선을 변경하던 도중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생하자 택시기사 A씨가 구급차를 막아선 것. A씨는 환자 가족의 호소를 무시한 채 사고 처리를 먼저 해야 한다며 “환자가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실랑이를 벌였고, 10분 남짓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한 환자는 결국 5시간 후 숨을 거뒀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후, 피해자의 아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A씨를 처벌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경찰 처벌을 기다리고 있지만, 죄목은 업무방해죄밖에 없다고 한다.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날 것을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며 “긴급자동차를 막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1분 1초가 중요한 상황에서 응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기사를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 “구급차 가로막은 택시기사 처벌해달라” 청원에 74만명 동의

해당 청원은 한 달간 무려 73만5972명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해 8월 해당 청원에 대한 답변에 나서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떠나보내신 청원인과 유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경찰청은 소중한 생명을 잃은 슬픔을 함께 가슴에 담고, 유가족뿐만 아니라 국민들께서 바라시는 바와 같이 긴급자동차를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청장은 이어 가해자 A씨를 업무방해, 특수폭행, 보험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송치했다며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의무를 불이행한 경우 벌칙규정을 실효성 있게 개정하고 ▲긴급자동차 우선신호 시스템을 확대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 택시기사, 항소심서 징역 1년 10개월., 이송 지연과 사망 간 인과관계는 불인정

구급차의 환자 이송을 방해한 택시기사 A씨는 죄에 걸맞은 처벌을 받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망에 대한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공갈미수·사기·특수폭행·특수재물손괴·업무방해·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처럼 A씨에게 많은 혐의가 적용된 이유는 그가 이전부터 고의로 접촉사고를 낸 뒤 상대를 협박하거나 합의금·보험금을 뜯어낸 전적이 있는 상습범이었기 때문이다. 구급차를 상대로 한 사고도 처음이 아니었다. A씨는 지난 2017년 일부러 구급차 앞에서 서행하며 진로를 방해하다가, 사정이 급한 구급차가 A씨의 택시를 추월하려 하자 구급차 뒤쪽을 고의로 들이받았다. A씨는 심지어 50만원을 주지 않으면 보건복지부에 사이렌 사용 등을 이유로 민원을 넣겠다며 구급차 운전기사를 협박하기도 했다.

1심 선고 후 A씨는 형량이 과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3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는 A씨가 잘못을 인정하고 구급차 운전기사 등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징역 2년에서 1년 10개월로 감형했다. 다만 살인혐의에 대해서는 경찰이 고의적인 환자 이송 지연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수사했으나, 결국 지난 4월 ‘혐의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편, 유가족이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지난달 수원지법에서 A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해 6월 발생한 택시의 구급차 이송 방해 사건에 대한 뉴스 화면. 택시기사가 구급차 운전기사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JTBC 방송화면 갈무리
지난해 6월 발생한 택시의 구급차 이송 방해 사건에 대한 뉴스 화면. 택시기사가 구급차 운전기사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JTBC 방송화면 갈무리

◇ 구급차 진로 방해하면 벌금 5000만원, 범칙금 상향은 ‘아직’

구급차, 소방차 등 긴급차량의 운행을 방해하거나 양보의무를 불이행한 경우에 대한 처벌은 해당 청원을 계기로 강화됐다. 실제 김 청장이 청원에 답변하고 3주 뒤인 지난해 9월 24일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소방기본법, 위험물안전관리법 일부개정안 등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중 119법이 개정되면서 구급차의 환자 이송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기게 됐다. 기존 119법은 “인명구조 및 응급처치”를 방해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했는데, 여기에 “구급차 등의 이송”을 추가한 것. 구급차의 환자 이송을 구조·구급활동의 일부로 명시해 더욱 강력한 처벌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가해자 A씨처럼 적극적으로 구급차의 환자 이송을 방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구급차를 둘러싼 도로 위의 분쟁은 대부분 고의적 방해보다는 양보의무 미이행으로 인해 발생한다. 도로교통법 29조는 모든 운전자에게 경찰·구급·소방차 등의 긴급차량가 우선 통행할 수 있도록 진로를 양보해야 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는 도로교통법 시행령에 따라 진로를 양보하지 않은 운전자에게 차량 종류에 따라 3~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다. 

문제는 도로교통법상 양보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청장은 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도로교통법에서는 일반운전자에게 긴급자동차에 대하여 진로를 양보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나, 이를 불이행하더라도 승용차 기준으로 범칙금 6만원에 불과하여 외국 등의 사례와 비교하더라도 실효적인 제재수단으로 제 기능을 다 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운전자의 경각심 제고와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긴급자동차 진로양보 의무 불이행시 범칙금 등의 수준을 크게 상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119법 개정 외의 실효적인 처벌 강화 방안은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인지 도로교통법상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의무 위반은 지난해 29건이 발생해 전년(8건) 대비 세 배 이상 늘어났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긴급자동차 양보의무 위반차량 단속효율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긴급차량에 대한 양보의무 위반에 대해 한국보다 강력한 처벌을 부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주에서는 긴급차량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정지한 채로 있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데, 오리건주의 경우 벌금이 720달러(약 85만원)에 달한다. 캐나다 또한 긴급차량 방해 시 380~49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특히 긴급차량 꽁무니를 따라 달리는 ‘얌체 운전’에 대해 1000~2000달러의 과태료와 벌점, 자격정지 2년 등의 엄격한 처벌을 부과한다. 

독일의 경우 절대적인 벌금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소방도로 앞에 주차할 경우 ▲그로 인해 소방차가 방해를 받는 경우 ▲고속·외곽도로에서 긴급차량이 우선 통행할 수 있도록 양보하지 않는 경우 등 단계별로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해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긴급차량의 원활한 통행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처벌과 구체적인 단속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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