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진=인스타그램 갈무리

[뉴스로드] “소중한 내 사진을 왜 프사(프로필 사진)로 쓰는 건지? 음침하고 기분 나쁘다”

2020 도쿄올림필 양궁 3관완 안산 선수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자신을 사칭한 계정을 향해 불쾌감을 토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안산 선수는 지난 6일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사칭한 트위터 계정을 지목하며 “아이디와 프사를 다 내려달라”고 경고했다. 해당 계정은 안산 선수의 인스타그램 부계정 아이디(ID), 프로필 사진, 이름 등을 모두 똑같이 따라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 선수는 “많은 걸 바라는게 아니라 선 좀 지켜달라는 것”이라며 “적당히 좀 하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안산 선수와 같은 유명인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사칭 문제로 곤란을 겪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지난해에는 인스타그램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을 도용해 만든 가짜 계정이 경영활동 관련 사진을 올리자, 이 부회장을 응원하는 댓글이 달리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프닝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유명인의 이름을 도용해 금품을 갈취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해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최시원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칭 계정을 공개하며 “저를 사칭해서 기부금을 모금하는 계정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주의하시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정우성씨 또한 사칭 계정에 시달려 최근 소속사를 통해 팬들에게 “아티스트컴퍼니와 소속 배우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에게 금품 및 개인정보 등을 요구 하지 않는다.  사칭 계정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 부탁드린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 SNS 사칭 계정, 형사처벌 가능할까?

안산 선수의 팬들은 SNS 사칭 계정을 처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누리꾼은 관련 기사에 “얼마나 열등감을 느끼면 남의 인생을 따라할까”라며 “사칭범은 당연히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팬들의 바램과 달리 SNS 사칭 계정을 처벌하기는 어렵다. 현행법에 관련 처벌기준이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통신망법에 관련 조항이 있기는 하다. 정보통신망법 70조 1·2항은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만약 사칭 계정으로 ‘사실’이 아닌 ‘거짓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하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

하지만 실제 SNS 사칭범이 이처럼 강도 높은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해당 법률 조항을 실제 사칭 사건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타인을 사칭한 경우 명예훼손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례도 남아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에서 발생한 사칭 사건에 대해 명예훼손행위가 아니라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바 있다. 당시 가해자 A씨는 대학 동기를 사칭해 일베에 게시물을 올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는데, 대법원은 “단순히 타인을 사칭해 마치 피해자가 직접 작성한 글인 것처럼 가장하는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사실을 드러내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6년에도 유사한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가해자 B씨는 피해자의 사진, 이름, 생년월일 등을 도용해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에 가입한 뒤 다른 남성들과 채팅을 하고 전화번호를 줬다. 대법원은 B씨의 사칭 행위가 “피해자가 소개팅 앱에 가입해 다른 남성과 채팅을 하고 전화번호를 줬다는 내용의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1·2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결국 명예훼손이 적용되려면 단순히 타인을 사칭하거나 사칭 계정으로 가짜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진술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사칭으로 인해 명백한 2차 피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현행법상 사칭만으로 형사처벌을 부과하기는 어렵다. 

◇ 캐나다, 타인 사칭하면 징역 10년.

반면 해외에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진술”이라는 조건 없이 인터넷에서의 타인 사칭만으로도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의 경우, 지난 2009년 형법을 개정해 인터넷 타인 사칭 관련 처벌을 크게 강화했다. 캐나다 형법은 ▲자신이나 타인이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을 목적 ▲재산 또는 재산에 대한 이해관계를 얻을 목적 ▲사칭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 ▲체포, 기소를 면하거나 형사사법의 진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타인을 사칭(identity fraud)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또한 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인터넷상의 타인 사칭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타인을 가해·협박·위력·기망하기 위해 동의 없이 인터넷 웹사이트 등의 전자적 수단을 통해 타인을 사칭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인터넷에서 타인을 사칭하는 행위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7월 “2차 피해가 없는 경우에도 정보통신망에서의 타인 사칭은 그 자체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칭 행위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지난해 11월 사칭 계정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소셜미디어 플랫폼 등 서비스 제공자가 즉시 사칭 계정 및 관련 게시물에 대해 삭제 조치를 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할 시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두 법안은 아직 소관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21대 국회의 입법 노력이 반복되는 사칭 피해를 근절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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