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및 정당이 12일 헌법재판소앞에서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및 정당이 12일 헌법재판소앞에서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기후위기비상행동

[뉴스로드]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이번에는 위헌 논란에 휘말렸다. 환경단체들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지나치게 낮아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며, 감축목표를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환경회의 등 시민단체 및 기본소득당, 녹색당 등은 1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탄소성장법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며, 국민의 현재와 미래를 보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탄소중립기본법에 명시된 2030년 NDC(2018년 대비 35% 감축)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설정된 NDC가 “과학이 가리키는 진실과 국제사회가 합의한 기준을 무시한 자의적이며 무책임한 수치”라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및 더욱 철저한 이행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과연 이 법이 헌법에 부합하고 우리를 지킬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탄소중립기본법은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상’이라는 단서를 두어 향후 상향의 여지를 남겨둔 것. 실제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환경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지난 8일 2030년 NDC를 지난해 발표한 ‘2018년 대비 26.3% 감축’에서 ‘40% 감축’으로 13.7%p 상향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NDC를 대폭 상향했지만, 환경단체는 여전히 해당 수치가 기후위기 대응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녹색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할 수 있는 경로로서 권고하는 목표치(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이상 감축, 2050년 탄소중립)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실제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정부안은 국제사회의 기준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7억2760만 톤으로 40%를 감축하려면 약 2억91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덜 배출해야 한다. 이를 2010년(총배출량 6억5630만 톤)으로 환산하면 약 44.3%로, IPCC가 제시한 기준에 조금 못미친다. 

독일 소재 기후과학 연구기관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제사회가 한국 수준의 NDC를 설정할 경우 지구 온도는 파리협정 목표치의 두 배인 연평균 3~4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에 동참해 '공정한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2030년 NDC를 2017년 대비 70~94%로 상향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현재 탄중위의 NDC는 상향됐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수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근 주요국들이 NDC를 기존 대비 상향하는 추세인 것도 문제다. 실제 미국은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에서 2030년 NDC를 기존 대비 두 배가량 높은 ‘2005년 대비 50~52% 감축’으로 상향했다. 기후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기존의 계산을 기초로 한 NDC를 고수하기는 어렵다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확산되고 있다는 것. 정부가 NDC를 상향했지만 국제사회의 기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만큼, 추가 상향의 압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시민사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 독일에서는 연방기후보호법에 규정된 NDC가 너무 낮아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이를 인정해 지난 4월 해당 법안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결국 독일 정부는 2030년 NDC를 기존 ‘1990년 대비 55% 감축’에서 ‘65% 감축’으로 상향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지난 2015년 환경단체 및 시민들이 기후위기 대응이 미흡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프랑스 환경단체는 정부의 파리협정 준수 노력이 부족하다며 상징적으로 1유로를 청구했는데, 올해 2월 파리행정법원은 정부에게 해당 금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 청소년 기후행동이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청소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것이 첫 사례다.

한편 이날 헌법소원에 참여한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한국의 입법부와 행정부도 추상적인 문구와 숫자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정부는 이런 탄소성장법에 근거하여 미온적인 NDC 목표를 고수하는 태도를 거두고,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고 국제사회의 책임에 부합하는 전향적인 감축목표 상향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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