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명함. 제작사가 이 공간에 실존인물의 전화번호를 적어 논란이 일었다. / 사진=넷플릭스

[뉴스로드] 오징어게임에서 실존인물의 전화번호를 유출한 제작사를 처벌할 수 있을까. 개인정보보호법 규제 관할권을 가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법적 제재 근거는 없지만, 피해자가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오징어게임 전화번호 사태, 형사 아닌 민사사건?

국회 정무위원회는 13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오징어게임 전화번호 유출 사건’에 대해 질의했다.

오징어게임은 싸이런픽쳐스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유통하는 드라마다. 낯선 이가 건넨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한 뒤, 서바이벌게임에 참가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제가 된 부분은 1·2·9화에 등장하는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다. 이는 제작사가 지어낸 8자리 숫자지만, 실제로 이용자가 있는 휴대전화번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전화번호나 유사한 번호의 주인들은 오징어게임 시청자들이 호기심에 건 전화가 쏟아져 휴대전화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시청자 수 역대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어, 전화번호 유출로 인한 피해도 극심했던 것.

다만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해당 사건으로 드라마 제작사나 넷플릭스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개인정보법상 개인정보처리자란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개인 및 단체를 말한다. 드라마 제작사가 전화번호를 수집해서 유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정보처리자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개인정보위 윤종인 위원장은 “개인정보법을 정확하게 해석하면 (드라마 제작사나 넷플릭스가) 개인정보처리자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유출로 보기 어렵고 노출에 따른 과실은 있다고 본다”며 “발생한 피해는 분쟁조정과 손해배상 대상이 될 수는 있다”고 밝혔다.

◇휴대전화번호는 개인정보 아니라는 개인정보위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오른쪽)이 13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윤종인 위원장(왼쪽)에게 질의하고 있는 모습. / 사진=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이번 국정감사 질의응답 과정에서 드러난 개인정보법의 허점은 2가지다. 수집한 정보가 아닌 지어낸 정보는 외부로 흘러도 ‘유출’이 아닌 ‘노출’로 보는 것, 그리고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 다른 정보 없이 휴대전화번호만 드러났을 경우 개인정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정보위는 윤관석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방송상 개인 연락처 노출은 유출에 해당하지 않으며, 오징어게임에 등장한 전화번호는 현실의 개인을 특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윤관석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휴대전화번호만 있어도 카카오톡·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SNS에서 친구로 추가하면, 이름을 알아내 주체가 누군지 특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윤 의원은 “개인정보위가 해당 사례의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은 소극적인 태도이며 앞으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전화번호는 이름이나 성별 등 다른 정보와 달리, 단독으로 유출돼도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 표적이 되거나, 이번 사태 피해자들처럼 전화·메시지 폭탄을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와 같이 전화번호의 역할이 커지고 악용 범죄도 다양해진 만큼,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정보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뉴스로드 김윤진 기자psnal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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