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을 연 지 어느덧 4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입법·행정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기됐고,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에는 청와대 및 관계부처가 직접 나서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뉴스로드>는 지난 4년간 20만 이상의 추천을 받은 여러 청원들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검증해봤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로드] 극심한 여야 갈등에 이은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 선언으로 인해 국회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던 지난 2019년 4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회의원도 국민이 직접 소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국민인 내가 나를 대신해 제대로 의정 활동하라며 권한을 위임했지만, 작금의 국회의원, 특히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러한 국민의 명령을 무시하며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있다”며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발목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국민이 우습고 하찮은 것”이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이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국민이 탄핵하고, 국민이 선출한 지자체장을 국민이 소환해 파면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오직 국회의원만 예외로 국민이 선출했음에도 국민이 소환할 수 없다”며 “(국회의원의) 권한은 국민이 준 것이니 그들의 무능과 잘못에 관해 책임을 물을 권리 또한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을 국민이 직접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3개월간 ‘개점휴업’ 국회, “일 안하는 국회의원, 국민이 소환하자”

실제 당시 극심했던 여야 갈등은 선거법 개정 및 공수처법을 둘러싼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이어졌고, 국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3월까지만 해도 여러 차례 열렸던 본회의 또한 4월 5일을 마지막으로 긴 휴지기를 거쳐 석 달이 넘게 지난 6월 24일이 돼서야 재개됐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청원은 한 달간 21만344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복기왕 국회의장 비서실장(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해당 청원에 대해 “대통령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소환할 수 있는데 유독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소환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 청원은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어내자는 국민의 열망”이라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는 이어 “많은 국민들이 공전하고 있는 국회를 걱정한다... 이제는 국회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재 계류 중인 국회의원 국민소환법이 이번 20대 국회를 통해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 개헌안 불발, 법안도 자동 폐기... 21대 국회는?

결론부터 말하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원이 제기되기 전인 지난 19대 대선에서 이미 공약으로 국민소환제를 제안한 바 있다. 실제 대통령 당선 후 2018년 3월 발의한 개헌안에도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및 국민발안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24일 열린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이 전원 불참하면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개헌안 통과는 불발됐다.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소환제 관련 법안이 5건이나 발의됐지만, 모두 처리되지 못하고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들은 대부분 헌법 46조에 따른 국회의원 의무를 위반하거나 법을 위반한 경우를 소환 대상으로 하고, 지역구 유권자의 10~30%가 찬성할 경우 소환투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의 경우 다른 지역구 의원에 대한 소환투표도 가능하도록 했다. 

21대 국회에서도 국민소환제 관련 법안이 6건이나 발의됐지만, 아직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복기왕 국회의장 비서실장(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청원에 대해 답변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2019년 6월 12일, 복기왕 국회의장 비서실장(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국민소환제, 국민 지지 높지만 오남용 우려 여전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뜨겁다.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대부분 국민소환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다. 복기왕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인용한 3개의 여론조사(2017년 두잇서베이 76.1%, 2018년 미디어오늘 77%, 2019년 리얼미터 77.5%)에서는 모두 응답자의 4명 중 3명이 국민소환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각 여론조사기관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처럼 국민의 지지가 높은 법안이 왜 국회에서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에 빠져있을까? 물론 국민소환제 도입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지지하는 의견만큼이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반대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 측에서는 국민소환제가 정쟁의 수단으로 남용돼 정당한 의정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복기왕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 또한 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국민소환제의 오남용 위험성을 지적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정적을 공격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국회의원이 소신 있는 입법 활동보다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소지가 있다고도 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미 주민소환제가 실시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경험으로 볼 때 그 위험성은 기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우’일 뿐이라는 청와대 답변과는 달리 해외에서도 국민소환제를 도입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20대 국회의 관련 법안 검토보고서를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국민소환제도는 비교적 일반적이지 않으며, 특히나 국가 단위에서 국민소환제도를 정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 중 국민소환제를 도입한 국가는 2015년 의원소환법을 제정한 영국이 유일하며, 그 외에는 베네수엘라 등 대부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국가였다. 미국, 스위스 등 일부 선진국의 경우 주 단위의 주민소환제가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영국의 하원의원 소환제조차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민소환제와는 결이 다르다. 영국의 소환제는 의원이 2개월 이하의 구금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를 소환요건으로 하는데, 이는 일정 금액 이상의 벌금형이나 유기징역의 경우 의원직이 상실되도록 한 국내법에 이미 포함된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 논의 중인 국민소환제는 “일 안 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된 것인 만큼, 의원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볼 수 있다. 실제 국회에 발의된 법안 대부분 위법행위뿐만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원의 의무 위반을 소환요건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의원의 범죄나 불성실뿐만 아니라 정책결정도 소환 사유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책결정이 국회의원 소환요건이 되면 오남용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선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17년 발표한 ‘헌법개정시 국민소환제 도입의 쟁점’ 보고서에서 “현대의 대의제는 국회의원이 부분이익이 아니라 전체 국가이익을 위하여 활동하게 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서 자유위임원칙을 기본으로 한다”며 “국민소환이 이러한 자유위임원칙과 충돌하지 않도록 하려면 정책결정과 관련된 것은 소환의 사유에 포함할 수 없고, 위헌 또는 위법행위를 한 경우로 그 소환사유를 제한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조사관은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영국 하원의원 소환제도는 그 사유를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는 의원의 정책적 결정이 소환사유가 되지 않도록 하여 대의기관의 자유위임원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및 지방의회에서 주민소환제가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복기왕 당시 정무비서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온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청년정책센터장은 2019년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지방정치와 중앙정치의 갈등 강도는 질적으로 다르다”며 “서로 다른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 국회의원을 소환하려는 경쟁이 일어난다면, 그 결과 누가 승리하든 대규모 시민 집단 간 적대감이 높아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정부·여당이 국민소환제 도입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책소환을 허용하기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너무 크고, 위법행위만 소환하는 것은 이미 국내법에 관련 조항이 있어 의미가 없기 때문. 오랫동안 이어진 국민소환제에 대한 논의가 21대 국회에서 어떤 결론을 맞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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