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로드] 지난달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 및 군인의 성별 전환을 반드시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변희수 전 하사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개인의 안타까운 사건이 일부 편향된 사상을 가진 세력들에 의해 정치 및 사상 문제로 변질되어 군대 및 사회 전반의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다”며 “청와대,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국방부와 육본에 (변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 행정소송에 대해) 항소 포기를 압박함으로써 다수 국민의 정서와 의견이 짓밟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트랜스젠더 군인과 함께 군 복무를 하게 될 다른 군인들의 정신·신체적 고통 ▲트랜스젠더 군 복무 허용으로 인한 군 내 동성간 성범죄 악화 ▲성전환수술 비용 지원으로 인한 국방비 낭비 ▲정신장애인 트랜스젠더 군 복무 허용에 따른 안전사고 우려 ▲군 간부 선발 과정의 공정성 훼손 등을 트랜스젠더 군 복무 반대 이유로 제시했다. 

청원인은 이어 “외부 압력에 굴복하여 육군이 항소를 포기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의 뜻을 짓밟는 것”이라며 “육군이 반드시 항소할 수 있도록 청원에 참여해주셔서 군의 질서와 대한민국 청년들이 안전한 군 복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민의 뜻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청원인의 주장 중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할 경우 발생할 미래의 문제에 대한 우려는 당장 검증하기 어렵다. 따라서 뉴스로드는 청원인의 주장 중 우선 ▲트랜스젠더 군 복무 허용에 따라 국방비 부담이 커진다는 주장과 ▲트랜스젠더는 정신장애라는 주장을 외국 사례를 통해 검증해봤다. 

DSM-5 중 '성별위화감'(Gender dyphoria) 관련 내용. 자료=미국 정신의학회
DSM-5 중 '성별위화감'(Gender dysphoria) 관련 내용. 자료=미국 정신의학회

◇  트랜스젠더는 정신장애?

청원인은 “트랜스젠더는 일종의 ‘노이로제’”라며 “미국의 경우 아직 ‘젠더불쾌증’이라는 이름으로 DSM-5의 정신장애 목록에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DSM은 1952년부터 미국 정신의학회가 발간해온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으로, DSM-5는 2013년에 발간된 DSM의 5번째 개정판을 뜻한다. 

청원인은 DSM-5이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로 분류하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DSM-5부터 트랜스젠더가 정신장애 취급을 받지 않게 됐다. 이전 버전의 DSM은 트랜스젠더를 ‘성정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라고 명명했으나, ‘장애’라는 단어로 인해 발생하는 낙인효과를 우려해 DSM-5부터는 ‘성별위화감’(Gender Dysphoria)로 진단명을 변경했다. 이는 출생 시 지정된 성별이나 성 역할에 대한 불쾌감을 뜻하는 말로, DSM-5는 트랜스젠더 자체는 정신장애로 볼 수 없으며, 성별위화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의학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WHO는 지난 2018년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판 중 정신장애 항목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항목을 아예 삭제했다. 1990년 발간된 제10판에서는 WHO도 트랜스젠더를 성정체성 장애로 분류했으나, 11판에서는 ‘성별불일치’ 항목을 ‘성적 건강 관련 상태’(Conditions related to Sexual Health)로 옮겼다. 

WHO는 개정 당시 이와 관련해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며, 그렇게 정의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에게 엄청난 사회적 낙인을 유발할 수 있다”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의료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성전환자 군인의 공개적인 복무 허용에 대한 의의 평가’ 보고서 중 일부. 자료=랜드연구소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성전환자 군인의 공개적인 복무 허용에 대한 의의 평가’ 보고서 중 일부. 자료=랜드연구소

◇ 성전환 수술 비용 지원으로 국방비 낭비된다?

현재까지 국방부는 군인의 성전환 수술에 대한 비용 지원 여부에 대해 결정을 내린 바 없다. 실제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및 성전환 수술 비용 지원에 관한 연구가 진행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아직 없는데 이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은 어떨까?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영국은 복무 중인 군인이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 호르몬치료 비용을 지원하며 캐나다는 호르몬치료 비용 전체를 군 의료보험으로 처리한다. 이스라엘 또한 얼굴 성형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의료보험으로 처리한다.

인권위는 “우리나라와 같이 징병제 국가이면서 언제든 전시 상황에 돌입할 수도 있어 전투력 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스라엘의 경우에도 복무중 성전환 수술을 한 군인에 대하여 성전환 수술, 호르몬 치료, 성형수술 비용까지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복무 중인 군인의 성전환 수술 비용을 지원하면 국방비에 큰 부담이 될까? 청원인은 “미국은 2016년 오바마 정부에서 성전환자 복무를 허용해서 현역병사 성전환수술 허가가 이루어졌는데, 트럼프가 의학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서 트랜스젠더 복무 금지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7년 의료비용을 이유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전면 금지한 것은 맞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트랜스젠더 군인을 위한 의료비용 지원이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2016년 발간한 ‘성전환자 군인의 공개적인 복무 허용에 대한 의의 평가’ 보고서에서 트랜스젠더 군인 복무를 허용할 경우 군 의료비용이 240만 달러에서 840만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군 전체 의료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04%에서 0.13%로 높아지는 수준으로, 랜드연구소는 “증가된 비용조차 군 의료비용에 거의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허용이 국방비 부담과 관계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 트랜스젠더 군 복무를 허용하면 군 내 성범죄가 증가할까?

청원인의 주장대로 지난해 육군 내 동성간 성범죄(251건)가 전년 대비 82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범죄 증가의 원인을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에서 찾는 것이 올바른 접근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범죄나 비윤리적 행위를 특정 집단에 내제된 특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 혐오·차별 발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를 배제함으로서 군 내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다는 청원인의 주장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성폭력의 위험은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영역을 분리함으로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발생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고 관련 교육과 처벌을 강화함으로서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2월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신입생 논란과 관련해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실재하는 공포와 안전해지고 싶은 간절한 욕구 앞에서 배제와 추방은 가장 힘있는 해결책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우리는 혐오와 차별을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며 침범과 폭력에 대응하는 힘을 길러왔다”고 말했다. 

4일 현재 “배제와 추방”을 통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고자 하는 주장에 이미 2만8119명이 동의했다. 변희수 전 하사의 죽음이 불러온 사회적 논의가 이번 청원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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