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국제경제 및 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로드] “나라별로 코로나 백신 접종의 격차가 매우 큽니다. 자국의 미접종자에 대한 접종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백신 접종률을 함께 높이지 않고는 방역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완전한 일상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빠르게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국제경제 및 보건’ 세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적인 백신 보급 불균형을 언급하며, 저소득국가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이 국가 단위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위드 코로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팬데믹 이후 붕괴된 전 지구적 공급망의 재건을 통해 글로벌 경제가 회복되는 것이다. 전 세계가 연결된 지금 특정 지역, 특정 국가를 배제한 백신 보급만으로는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할 수 없다는 것.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 나타난 위기의식은 통계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이하 OWID)에 따르면, 3일 기준 전 세계에서 백신을 1회라도 접종한 사람의 비중은 49.9%다. 백신을 일찍 확보했던 주요 선진국이 최소 60% 이상의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국가 소득별 백신 접종률. 자료=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국가 소득별 백신 접종률. 자료=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더 큰 문제는 백신 접종률이 국가별 소득수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다는 점이다. OWID에 따르면 3일 기준 고소득 국가의 1차 접종률은 72%, 접종 완료율은 65%였던 반면, 저소득 국가는 1차 접종률 3.9%, 접종 완료율 2.06%에 그쳤다. 중저소득 국가조차 1차 접종률이 39%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소득 국가에서의 백신 보급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백신을 미리 선점한 일부 고소득 국가에서는 과도한 물량을 비축해뒀다가 관리 부실 등으로 백신을 폐기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영국매체 가디언은 호주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3만1883회분이 유통기한을 넘겨 폐기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호주는 남는 백신을 남태평양의 이웃 국가에 기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지금 당장 백신이 가장 필요한 지역은 저소득 국가가 밀집한 아프리카다. OWID에서 대륙별 백신 접종률(1회 이상)을 살펴보면, 남미가 67%로 가장 높고 오세아니아는 57%로 아시아와 동률인 반면, 아프리카는 9%(완료율 6%)에 불과하다. 

 

대륙별 백신 접종률. 자료=
대륙별 백신 접종률. 자료=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저소득 국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백신 보급 속도가 더뎌지면서 백신 사재기에 나선 고소득 국가뿐만 아니라 백신 개발사에 대한 비난도 가중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초로 mRNA 백신을 승인받은 모더나의 경우, 최근 청소년 대상 접종 승인이 지연됐음에도 불구하고 3분기 49.7억 달러(약 5.9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시장 기대보다 다소 낮지만 올해 최대 180억 달러(약 21.3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일각에서는 모더나가 mRNA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 자금을 지원받았음에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의료전문매체 스탯뉴스(Statnews)는 4일 “모더나가 세계에 빚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모더나는 미국 납세자의 공적 자금을 받았음에도 ‘팬데믹을 가능한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기업이 보유한 자원을 사용할 것’이라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모더나는 태국, 보츠와나, 콜롬비아 등 중위소득 국가에 백신을 1회분당 28~30달러에 판매했는데, 이는 미국 공급가(15~16.5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아프리카에는 아예 공급이 불발됐다. 모더나는 지난 5월 아프리카에 1회분당 10달러에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올해 생산량은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에 배정돼 결국 계약이 불발됐다. 

이 때문에 모더나는 아프리카에 직접 백신 생산시설을 짓겠다며 5억 달러(약 59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조차도 비판을 받고 있다. 스탯뉴스는 “모더나는 4년 내 아프리카에 회사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백신 생산시설을 짓겠다는 공허한 약속을 제시했다”며 “5백만명 이상을 죽이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팬데믹을 종식시키는데 4년은 너무 길다”고 지적했다. 

한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29일 G20 보건·재무장관 회의에서 “연말까지 전 세계 인구의 40% 백신 접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5.5억회분의 백신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는 열흘 간의 생산량”이라며 “이 분량의 절반 이상이 당신들 국가에서 사용되지 않고 방치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이미 40% 목표에 도달한 국가들은 코백스와 백신 공급 일정을 맞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통화기금(IMF)는 백신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오는 2026년까지 5년간 세계총생산에 약 5.3조 달러(약 6281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지구적 위기인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이미 백신 물량을 확보한 고소득 국가와 백신 개발사가 전향적인 지원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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