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에 따른 뉴스 신뢰도. 자료=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미디어 리터러시에 따른 언론 전반(파란색), 검색엔진(보라색), 소셜미디어(주황색)에 대한 신뢰도. 자료=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뉴스로드]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이 이미 10년이 지났을 정도로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은 오랜 문제다. 매년 발표되는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리포트’에서도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은 리포트 발간일에 맞춰 낮은 신뢰도를 반성하는 기사를 내보내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 언론의 낮은 신뢰도는 언론인의 윤리의식 부족, 대립적인 정치구도, 낮은 사회적 신뢰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언론 신뢰도를 결정하는 외부 요인이지, 언론에 대한 신뢰 여부를 결정하는 당사자인 독자의 내적 요인은 아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독자의 미디어 리터러시, 즉 언론의 기사 생산 과정을 이해하고, 컨텐츠를 비판적으로 분석·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질 나쁜 언론을 걸러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언론 신뢰도와 미디어 리터러시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높은 독자일수록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의 기사를 소비하고 그렇지 않은 기사는 걸러내기 때문에,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반면,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을수록 허위 정보를 구분할 확률이 높아져 오히려 언론 환경 전반에 대한 회의가 깊어질 수 가능성도 있다. <뉴스로드>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언론 신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자료를 통해 알아봤다.

 

뉴스 평가 기준에 대한 조사 결과. 왼쪽부터 공유한 사람, 헤드라인과 사진, 언론사, 댓글과 좋아요·공유 수 자료=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뉴스 평가 기준에 대한 조사 결과. 왼쪽부터 공유한 사람, 헤드라인과 사진, 언론사, 댓글과 좋아요·공유 수 자료=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 미디어 리터러시 높을수록 방송·신문 직접 찾는 경향 높아... 검색엔진·SNS는 불신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매년 언론 신뢰도 및 뉴스 소비 방식, 언론 자유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디지털뉴스리포트를 발간하는데, 어떤 해에는 해당 연도에만 시행되는 조사를 통해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2018년 보고서에서 연구소가 시행한 조사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언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연구소는 미디어 리터러시 대신 ‘뉴스 리터러시’(News Literacy)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연구소는 ①재정적 지원을 위해 광고에 의존하지 않는 언론은 보기 중 어느 곳인지 ②보도자료 작성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③페이스북에서 개인별 뉴스 게시는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 질문한 뒤, 정답을 맞힌 개수에 따라 응답자의 뉴스 리터러시를 ‘매우 높음’(3개)에서 ‘매우 낮음’(0개)의 4단계로 나눴다. 

연구소는 뉴스 리터러시에 따른 언론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했는데, 뉴스 리터러시가 높아질수록 신뢰도도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그 차이가 의미있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언론 전반’이 아닌 ‘소셜미디어·검색엔진’을 통해 접한 뉴스에 대한 신뢰도의 경우, 뉴스 리터러시가 높아질수록 신뢰도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뉴스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일수록 검색엔진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뉴스를 판별하는데 더 많은 신뢰도 결정 요인(credibility cues)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독자들이 SNS나 포털사이트를 통해 읽은 기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뉴스 소비 방식에 대한 조사결과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연구소는 조사 참가자들에게 지난주에 이용한 뉴스를 주로 어디서 접했는지 물었는데, 대부분 ‘방송사 및 방송사 웹사이트’라고 답했으나 뉴스 리터러시가 ‘매우 높음’으로 평가된 응답자는 ‘신문 및 신문 웹사이트’(34%)라고 답한 경우도 많았다. 뉴스 리터러시가 ‘매우 낮음’으로 평가된 응답자는 ‘신문 및 신문 웹사이트’라고 답한 비중이 20%로 네 집단 중 가장 낮았지만, 소셜미디어는 15%로 다른 응답자(10~11%)보다 높았다.

뉴스 리터러시에 따라 소비하는 매체의 수도 달랐다. 연구소에 따르면 뉴스 리터러시가 ‘매우 높은’ 응답자는 평균적으로 4.22개의 매체를 이용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매우 낮은’ 응답자(2.39개)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소셜미디어에서 접한 뉴스를 평가할 때 어떤 기준이 중요한지에 대한 답변도 뉴스 리터러시에 따라 달랐다. 뉴스 리터러시가 ‘매우 높은’ 응답자는 어떤 언론사가 생산한 뉴스인지(73%)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매우 낮은’ 응답자는 헤드라인이나 사진(48%)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댓글과 좋아요, 공유 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도 뉴스 리터러시가 ‘매우 낮은’ 응답자는 25%였던 반면, ‘매우 높은’ 응답자는 13%에 불과했다. 뉴스 리터러시가 '매우 낮은' 응답자가 언론사가 어느 곳인지를 중요하게 본다는 응답은 43%로 네 집단 중 가장 낮았다.

 

디지털 뉴스의 주 이용 경로. 위는 검색엔진 및 뉴스 수집 서비스, 아래는 뉴스 웹사이트 및 앱. 자료=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한국언론진흥재단.
디지털 뉴스의 주 이용 경로. 위는 검색엔진 및 뉴스 수집 서비스, 아래는 뉴스 웹사이트 및 앱. 자료=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한국언론진흥재단.

◇ 포털 중심의 한국 언론 환경  

연구소의 조사결과는 뉴스 리터러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선호 매체가 아니라,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뉴스 리터러시가 높을수록 ▲소셜미디어·검색엔진보다는 방송·신문에서 주로 뉴스를 소비하고 ▲포털을 통해 수집된 뉴스를 이용하기보다 직접 뉴스를 생산한 매체가 어떤 곳인지 확인하며 ▲상대적으로 더 많은 매체의 뉴스를 통해 사건을 다양한 시각에서 이해한다는 조사결과는 한국 언론의 낮은 신뢰도에 대해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언론 환경의 가장 큰 특징은 대형 포털사이트의 지배력이다. ‘디지털뉴스리포트 2021’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이용자들이 검색 엔진 및 뉴스 수집 사이트를 통해 주로 온라인 뉴스를 이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72%로 지난해에 이어 1위였다. 이는46개국 평균 33%의 두 배가 넘는 수치로, 뉴스 신뢰도가 가장 높은 국가인 핀란드는 15%에 불과했다. 

반면 뉴스 웹사이트 및 앱에 직접 접속해 온라인 뉴스를 이용한다는 응답자는 겨우 5%에 불과했는데, 이는 46개국 중 최하위에 해당한다. 핀란드(67%), 노르웨이(63%), 덴마크(49%), 스웨덴(48%) 등 언론 신뢰도가 높은 국가에서 뉴스 웹사이트 및 앱을 선호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경향이다. 

뉴스 리터러시가 높을수록 검색엔진과 소셜미디어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는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결과를 고려할 때, 대부분의 뉴스가 대형 포털을 통해 소비되는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 뉴스 신뢰도가 낮게 나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독자들이 해당 뉴스를 생산한 언론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독자는 네이버와 다음, 구글에서 기사를 읽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언론사의 브랜드는 숨겨지고 포털의 상단에 기사가 노출되는 것만이 목표가 된 상황에서 뉴스 리터러시가 높은 독자들을 만족시킬 좋은 품질의 저널리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팩트체크 매체 뉴스톱의 김준일 대표는 지난 3월 한국기자협회보에 “언론이 포털에 기사를 제공하는 것은 중소기업이 대형마트에 노브랜드 제품을 납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브랜드가 없는데 무슨 품질 관리가 필요하겠는가. 멀쩡한 기사를 여러개로 쪼개서 제목으로 낚시질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고 한국의 언론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밝혔다. 매년 반복되는 “한국 언론, 신뢰도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다시 보지 않으려면 언론의 자정 노력과 함께 뉴스가 전달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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