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KB경영연구소
금융자산 규모에 따른 암호화폐 투자 의향 및 기피 이유. 자료=KB경영연구소

[뉴스로드]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장세가 계속되면서 주식과 암호화폐 등 위험자산 투자에 발을 들이게 된 ‘주린이’, ‘코린이’들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자산과 소득에 따라 부유층일수록 주식을 선호하고 저소득층은 암호화폐로 몰리는 투자전략의 양극화가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 “코인보다 주식” 안정성 중시하는 부자들의 투자전략

KB경영연구소가 지난 14일 발간한 ‘2021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현금, 채권, 주식, 펀드, 예·적금 등)을 보유한 ‘부자’는 총 39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3만9000명 증가했다. 국내 총 인구 중 ‘부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0.76%로 전년 대비 0.07%p 늘어났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1인당 평균 66억원, 총 2618조원으로 전년(2154조원) 대비 21.6% 급증했다. 이들이 한국 전체 가계 금융자산(4280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2%에 달한다. 특히 금융자산 300억원 이상의 ‘슈퍼 부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1204조원으로 전체 가계 금융자산 28.1%에 해당한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장세로 자산 가치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자산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한국 부자들은 자산을 증식하기 위해 어떤 투자전략을 활용했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부자들은 최근 유동성 장세에 가장 주목받는 위험자산인 주식과 암호화폐 중 주식을 선호하는 경향에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고 답한 부자는 33.3%로 3명 중 1명이 암호화폐 투자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금융자산 30억원 미만 부자는 35.8%, 30억원 이상은 27.7%로 자산이 많을수록 암호화폐에 투자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부자들의 인식도 매우 부정적이었다. 전체 부자 중 “암호화폐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3.3%로 투자경험(33.3%)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상황에 따라 투자할 것”이라는 응답도 26.8%에 그쳤으며, “투자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무려 70%에 달했다. 부자들이 암호화폐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투자 손실 위험이 크다”는 것이었으며, “암호화폐 거래소를 신뢰할 수 없다”, “암호화폐에 대해 잘 모른다”, “가치 변동률이 너무 크다” 등도 암호화폐 투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로 꼽혔다.

반면 주식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실제 한국 부자들은 “지난해보다 주식 투자금액을 늘렸다”고 답한 경우가 40%로 지난해(28.3%)보다 11.7%p 증가했다. 펀드(14.3%), 예·저금(12.8%), 투자·저축성 보험(11.8%), 채권(4%) 등 다른 금융자산에 비하면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것은, 부자들이 주식시장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 장기적인 수익처를 묻는 질문에 한국 부자의 60.5%는 주식을 꼽았는데, 이는 2위 펀드(19%)의 세 배가 넘는 수치다. 특히 30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의 경우 주식을 꼽은 비율이 65.3%로 30억원 미만(58.9%)보다 높았다. 

 

암호화폐 투자로 재정적 자유를 얻어 퇴직한 경우(맨 위)와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가운데)고 답한 응답자 중 상당수는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의 중·저소득층이었다. 자료=시빅사이언스
암호화폐 투자로 재정적 자유를 얻어 퇴직한 경우(맨 위)와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가운데)고 답한 응답자 중 상당수는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의 중·저소득층이었다. 자료=시빅사이언스

◇ 미국 저소득층, 암호화폐에 올인하는 경향 뚜렷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소득이나 자산이 적은 경우는 주식과 암호화폐의 비중이 어떻게 달랐을까? 국내에서 소득·자산별 금융자산 구성이나 투자성향을 조사한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는 어렵지만, 미국의 사례를 볼 때 자산이나 소득이 적을수록 암호화폐에 ‘올인’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 시카고대학의 여론조사기관 NORC가 지난 6월 24~28일 미국 전역의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암호화폐 투자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35%는 연 소득이 6만 달러 미만이었는데, 이는 주식(27%)보다 8%p 높은 수치다. 주식보다 암호화폐 투자자 중 중·저소득층 비중이 높다는 것.

이는 다른 지표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암호화폐 41%, 주식 38%), 유색인종(암호화폐 44%, 주식 35%) 투자자의 비중도 주식보다 암호화폐에서 더 높았다. 또한 암호화폐 투자자 중 55%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득과 학력이 낮거나 상대적으로 기회의 문이 좁은 소수자의 경우 암호화폐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계층에게 암호화폐가 주식보다 더 큰 수익과 기회를 보장하는 투자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여론조사업체 시빅사이언스(Civic Science)가 지난달 20~27일 6741명에게 “지난해 암호화폐 투자로 재정적 자유를 얻어 직장을 그만 뒀는가”라고 물은 결과, 4%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7%였다.

하지만 해당 답변을 소득별로 나눠보면 상당한 차이가 발견된다. 연 소득 2만5000 달러 이하인 응답자의 경우 자신이 암호화폐 투자 후 퇴직했다는 응답이 27%였으며,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17%였다. 2만5000~5만 달러의 경우 자신이 퇴직했다는 응답은 무려 37%,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38%였다. 

시빅사이언스는 “이 자료는 암호화폐 투자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수준의 수익을 제공하는 반면, 부유층에게는 수익원이라기보다 자산 다양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적은 규모의 투자금으로 인생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저소득층과, 고액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부유층의 투자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코로나19 이후의 유동성 장세는 자산 격차뿐만 아니라 투자행위의 격차도 점차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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