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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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을 연 지 어느덧 4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입법·행정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기됐고,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에는 청와대 및 관계부처가 직접 나서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뉴스로드>는 지난 4년간 20만 이상의 추천을 받은 여러 청원들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검증해봤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로드] 최근 대법원이 ‘리얼돌’(여성의 신체를 본뜬 성인용 전신인형)의 수입 여부를 두고 불과 한 달 사이에 서로 다른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14일에는 수입업체가 김포공항 세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업체 측 손을 들어줬던 대법원이 이달 25일에는 인천세관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수입이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둘 다 세관에서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분류해 통관을 막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을 달라지게 만든 차이는 리얼돌이 ‘미성년자’를 형상화했는지 아닌지였다. 전자의 경우 대법원은 “리얼돌은 문란한 느낌을 주지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며 “은밀한 (사적) 영역에서의 개인적 활동(성기구 사용)에는 국가가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약 150cm, 17.4kg으로 미성년 여성을 연상시키는 외형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대법원은 “이 물품을 예정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고 폭력적이거나 일방적인 성관계도 허용된다는 왜곡된 인식과 비정상적 태도를 형성하게 할 수 있고, 아동에 대한 잠재적인 성범죄 위험을 증대시킬 우려가 있다”며 “직접 성행위의 대상으로 사용되는 실물이라는 점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비교해 그 위험성과 폐해를 낮게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리얼돌에 대해 수입 불가 판단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리얼돌 수입 판매 금지해달라” 국민청원에 26만명 참여

한 달간 두 개의 서로 다른 관련 판결이 나오면서 여론의 관심이 리얼돌에 몰리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리얼돌의 허용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19년 대법원이 리얼돌을 음란물이 아닌 성 기구로 취급해 수입을 허가하자 이에 반발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26만3792명의 동의를 모은 적이 있다. 

당시 청원인은 “리얼돌은 다른 성인기구와 다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그대로 떠와 만든 마네킹과 비슷한 성인기구”라며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했지만 아무 움직임이 없어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실제 여성들을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청원인은 이어 “한국에선 실제로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과 음란사진을 합성해 인터넷에 게시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리얼돌도 안 그러란 보장은 없다”며 “리얼돌 사용으로 성범죄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실제로 자극적인 성인 동영상을 보고 거기에 만족 못 하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수많은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정수 당시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행정부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부의 확정판결을 따르고, 그 판결 취지를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청소년의 리얼돌 구매·접근 금지 ▲ 아동형상 리얼돌 및 특정 인물 형상 리얼돌 관련 규제 근거 마련 등을 약속했다. 

◇ 영·미, 아동 형상 리얼돌 중범죄 취급

국내에서는 아직 리얼돌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규제를 정비하는 추세이며, 특히 아동 형상 리얼돌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부과되고 있다. 

실제 영국의 경우 지난 2017년 초등학교 운영위원이었던 데이비드 터너(72)가 아동을 성적대상화한 사진 3만4천장과 100cm 크기의 아동 형상 리얼돌을 보유한 것이 발각되면서 리얼돌 규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당시 영국 법원은 터너가 보유한 리얼돌을 음란물로 규정해 1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으며, 이후 영국 검찰청에서 2019년 아동 형상 리얼돌 관련 규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아동 형상 리얼돌의 수입·유통·판매는 물론 음란물임을 인식하고도 고의로 소지한 경우에 대해서도 처벌하도록 했다. “리얼돌이 아동의 형상을 했는지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성인 형상 리얼돌을 허용하고 있는 미국도 최근 들어 아동 형상 리얼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에는 아동 형상의 리얼돌 및 로봇의 수입·유통 등을 규제하는 법안(Curbing Realistc Exploitative Electronic Pedophilic Robots Act)이 연방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당시 하원은 “음란한 인형·로봇을 소지하는 것은 아동 음란물을 소비·관여하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며 “강간범이 인형·로봇을 이용해 피해자의 저항을 제압하는 방법을 연습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방법에 비해 주법은 더욱 구체적이다. 테네시주는 2019년 공포된 형법 개정안을 통해 고의적 아동 형상 리얼돌 소지죄를 11개월 이하의 징역형 또는 2500달러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또한 아동 형상 리얼돌 판매는 중범죄로서 1~6년의 징역 및 1만~5만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징수된 벌금은 전액 아동보호센터 및 성폭력피해자센터 등에 지원하도록 했다.

켄터키와 플로리다에서도 테네시와 마찬가지로 2019년 관련법이 제정됐다. 켄터키주는 처벌이 테네시보다 무거운데, 아동 형상 리얼돌 소지는 1~5년, 제작·운송·판매 등은 5~10년의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플로리다주 또한 아동 형상 리얼돌을 판매·대여·전시하는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 달러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으며, 재범에 대해서는 징역형이 15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 21대 국회, 아동·특정인 본뜬 리얼돌 규제 논의 중

국내에서도 아동 형상 리얼돌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안의 경우 아동 형상 리얼돌의 제작·판매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영리 목적 판매·대여·소지·전시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2년 이하의 징역과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제작·수입의 경우 미수범에 대해서도 처벌하도록 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월 발의한 아청법 개정안은 제작·수입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해 처벌 수위를 한층 높였다. 영리 목적의 제작·판매·대여·소지·전시·광고 등의 행위 또한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아동 형상이 아니더라도 특정 인물을 본뜬 리얼돌을 제작·유통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송 의원이 아청법 개정안과 함께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성적 만족을 위해 특정인의 형상을 한 리얼돌을 제작·수출입·배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리얼돌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막는 법안도 발의됐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4월 발의한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학교에서 직선거리 200m까지인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에서 리얼돌 업소를 운영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리얼돌 업소는 성인용품점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면 지자체 허가 없이 교육시설 주변에서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국회의원들이 국민청원에 응답하기 위해 다양한 법안을 발의하고 있지만, 아직 해당 법안들은 소관위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21대 국회의 아동 형상 리얼돌 규제를 위한 노력이 임기 만료 전 결실을 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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