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한경면에 설립된 풍력발전소 전경. 사진=한국남부발전
제주시 한경면에 설립된 풍력발전소 전경. 사진=한국남부발전

[뉴스로드]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를 가로막는 출력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시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정 시기에는 발전량이 과잉 공급돼 전력망에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출력제한은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기 가동률을 조정하는 것이다. 특히 출력제어 설비가 부족한 태양광보다 풍력발전이 잦은 출력제어 지시를 받게 되는데, 이 경우 풍력발전 설비는 가동을 멈추거나 날개의 각도를 조절해 발전량을 감소시킨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운영하는 사업자의 입장에서 반복된 출력제한은 상당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제주에너지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 풍력발전 설비는 총 77회 제어돼 약 19.5GWh의 전력 생산이 감소했고 이로 인해 34억원 가량의 비용이 발생했다. 오는 2034년에는 제주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약 7450G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중 39.3%에 해당하는 2931GWh의 출력제한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의 풍력 평균정산단가를 적용하면 약 51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처럼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출력제한으로 인해 자주 가동을 멈추게 되면 비용 부담이 커져 시장이 확대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 및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지난달 30일 제주시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제주도 풍력발전 출력제한 문제 해결방안 세미나’에서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김영환 전력거래소 제주본부장은 “태양광, 풍력발전과 같은 변동성 자원을 확대하는 과정에서는 일정 부분 초과발전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한전과 전력거래소 등 전통적인 사업자보다는 분산형 전원과 같은 새로운 참여자들의 역할이 커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대형발전사 중심의 전력공급체계에서, 전력 수요가 있는 곳에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배치하는 분산형 전원으로 전환해 오히려 전통적인 전원을 예비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11월 30일 제주시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국회의원 양이원영, 기후솔루션, 한국풍력산업협회의 공동 주최로 ‘제주도 풍력발전 출력제한 문제 해결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기후솔루션
11월 30일 제주시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국회의원 양이원영, 기후솔루션, 한국풍력산업협회의 공동 주최로 ‘제주도 풍력발전 출력제한 문제 해결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기후솔루션

현재의 풍력발전 출력제한에 법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현행 제도에는 출력제한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법을 명시한 세부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태림의 하정림 변호사는 “전기사업법상 특정 발전사업자의 발전기 출력제한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지금과 같은 출력제한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임에도 상위 법률의 근거가 없어 법률유보원칙에 반한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이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불공정거래행위 등의 위반 소지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생에너지의 초과발전을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영국 환경단체 클라이어트 어스(Client Earth)의 라파엘 소퍼 변호사는 “출력제한 이슈는 크게 낙후된 인프라와 미흡한 시장제도로 구분이 가능하다”라며, “송배전을 전담하는 계통운영자가 상세한 액션 플랜을 수립하고, 조정기구를 설립하여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해 과잉 공급된 전력을 수요가 높은 지역으로 전달하기 위한 송전망 구축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EU해양재생에너지전략에서 2050년까지 해상풍력이 전체 전력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인프라 구축 및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EU는 약 8000억 유로의 자금을 투입할 예정인데 이 중 3분의 2는 전력망 및 관련 인프라 구축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송전인프라 구축에는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EU는 해상풍력발전소가 생산한 설비를 다수의 국가로 송전하는 해상하이브리드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관련 규제를 개정할 방침이다. 

출력제한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부담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 독일, 덴마크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출력제한에 따른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라 출력제한으로 인해 줄어든 발전수익의 95%를 보상해왔는데, 올해부터는 보상 규모를 100%로 늘렸다. 덴마크 또한 국영송전회사 에너지넷이 해상풍력 발전사업자에게 출력제한을 요구할 때, 불가항력에 따른 요청을 제외한 경우에 대해 손실을 보상하도록 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문병철 산업통상자원부 신산업분산에너지과장은 “제주 풍력발전 출력제한 이슈는 근본적으로 기존 전력 수요-공급 시스템의 패러다임 변화에 기인한다”라며, “우선 기술적 측면에서 유연한 수요 대응을 위해 제3연계선을 도입하고 의무가동(must-run) 발전을 축소, ESS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며, 다음으로 공급자-운영자-수요자를 연계해주는 시장 제도를 바꾸기 위해 제주를 분산에너지 특화 지역으로 만들어 전력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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