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자료=우리금융경영연구소

[뉴스로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암호화폐 및 주식시장의 역대급 상승장을 이어가는 등 유동성 과잉으로 형성된 자산 거품이 커지면서 근로소득에 대한 인식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월급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고 노후를 준비한다는 계획이 점차 평범한 꿈이 아니라 이룰 수 없는 환상처럼 여겨지면서 노동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 “주식·부동산보다 월급 덜 올랐다” 근로활동 가치 인식 하락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5일 발표한 ‘2021년 자산관리 고객 분석 보고서 - 팬데믹 시대의 대중부유층’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활동의 가치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코로나19 이전보다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가구 소득 상위 10~30%(세전 7000만원~1억2000만원)를 ‘대중부유층’으로 정의하고, 지난 9월 16일부터 10월 11일까지 대중부유층에 속하는 개인 4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근로활동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응답자는 28.7%로 높아졌다는 응답자(15.5%)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특히 소득이나 부동산 자산이 감소한 경우에는 근로활동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응답 비중이 각각 59.9%, 66.7%까지 높아져, 소득이나 자산이 유지·증가한 경우와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이들이 근로활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 배경에는 자산가치의 급격한 상승이 놓여있다. 근로활동 가치가 하락했다고 인식한 이유에 대해 ‘자산가격의 상승에 비해 근로소득 증가가 적기 때문’이라고 답한 응답자 비중이 46.1%로 가장 많았으며, 물가 상승을 꼽은 응답자는 33.4%였다. 특히, 근로소득이 늘어난 응답자들은 ‘자산가격 상승’을 이유로 꼽은 경우가 56.4%로 더 많았다.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 대비 가계 및 비영리단체 순자산 및 부동산자산 배율 추이. 자료=한국은행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 대비 가계 및 비영리단체 순자산 및 부동산자산 배율 추이. 자료=한국은행

◇ 소득 넘어서는 자산 증가율, 수도권 집 사려면 돈 안쓰고 8년 모아야...

그렇다면 자산가치가 급등해 근로소득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인식은 사실일까? 통계자료를 보면 최근, 특히 팬데믹 이후 자산가치의 증가율이 근로소득의 그것을 크게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잠정)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산은 1경423조원으로 전년 대비 11.9%(110조원)증가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6.8%)에 비하면 증가율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2008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후 순자산이 늘어난 것은 집값과 주식 등의 자산 가치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지난해 금융부채 규모는 2051.8조원으로 전년 대비 9.2%나 늘어났지만, 금융자산(13.9%)과 비금융자산(10.1%)가 모두 금융부채보다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소득 증가율은 자산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 대비 순자산 및 부동산자산 배율은 지난해 기준 각각 9.6배 및 7.2배로 수치와 증가율 모두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은 가계부문이 소비·저축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득을 말한다. 현재 가계 및 비영리 단체의 순자산과 부동산 자산 규모는 소득을 전혀 쓰지 않고 약 7~10년간 모아야 하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특히 집값 문제는 근로소득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5월 발표한 ‘2020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자가가구의 연소득 대비 주택구입가격 배수(PIR)은 중위수 기준 5.5배로 지난해(5.4배)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은 8배, 광역시 6배, 도지역 3.9배로 모두 2019년보다 증가했다. 수도권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8년간 단 한 푼도 쓰지않도 돈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득별로 보면 최저임금 인상 효과로 인해 하위 가구의 PIR은 전년(8.9배)보다 줄어든 8.3배를 기록했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덜 받는 중·상위 가구의 경우 각각 5.4배, 5.7배로 모두 전년보다 높아졌다. 

 

지역별 및 소득별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 추이. 자료=국토교통부
지역별 및 소득별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 추이. 자료=국토교통부

◇ 코로나19 후 자산불평등 외 소득 불평등까지 악화

이처럼 통계자료는 “근로활동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대중의 인식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소득보다 자산 증가율이 높은 자산 버블의 시대에 좋은 직장과 높은 임금, 승진에 목매기보다는 ‘영끌’을 통해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등 자산에 투자해 빠르게 높은 수익을 올리려는 풍조가 확산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자산 불평등뿐만 아니라 소득 불평등까지 악화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불평등, 지표로 보는 10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4분기 하위 10% 대비 중위소득 배율은 5.9배로 전년 동기(5.1배)보다 상승했다. 코로나 19 이후 고용충격으로 인해 저소득 가구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자산·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고 근로활동 가치도 저하되면서, 대선 후보들도 불평등 해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본소득 보장을 통해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취약계층 집중 지원을 통해 벌어진 자산 격차를 좁히겠다는 계획이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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