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아메리카 2021 우승자 에마 브로일스가 대회 첫날 발달장애인을 위한 스페셜올림픽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미스 아메리카 공식 트위터
미스 아메리카 2021 우승자 에마 브로일스가 대회 첫날 발달장애인을 위한 스페셜올림픽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미스 아메리카 공식 트위터

[뉴스로드]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미스 아메리카에서 한국계 참가자가 우승을 차지해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미스 아메리카는 단순히 ‘한국계’가 우승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번 대회가 여성주의적 비판에 직면한 미인대회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간 국내 언론에 보도된 관련 기사에서는 우승자 에마 브로일스(알래스카)가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쓴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익숙한 미인대회의 풍경이 담겨있다. 하지만 미스 아메리카 공식 홈페이지나 소셜미디어에서는 하얀 정장을 입고 발표하는 모습의 에마 브로일스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브로일스는 이번 대회 첫날 발달장애인을 위한 스페셜올림픽을 통해 지적장애로 인한 차별 없이 공동체를 강하게 결속시키겠다는 내용의 발표를 통해 소셜 임팩트 피치(Social Impact Pitch) 상을 수상했는데, 이날 발표에 나선 그의 옷차림은 전통적인 미인대회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어울리지 않는 하얀 정장이었다. 같은 날 재능상을 수상한 또 다른 한국계 참가자 시드니 박(뉴욕)의 옷차림도 마찬가지였다. 

미스 아메리카가 이러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난 2017년 미스 아메리카 CEO와 작가 등이 참가자의 외모를 비하하며 주고받은 이메일이 폭로되면서 시작된 역대 최악의 스캔들로 인해 짧은 기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 

폭로 이후 관계자들이 사임하고 그레첸 칼슨 신임 조직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미스 아메리카는 여성을 상품화, 성적대상화한다는 누적된 불만과 비판을 극복하고자 2018년부터 수영복 심사를 폐지하기로 했다. 또한, 외모가 아닌 여성의 재능과 성취, 인생의 목표와 그에 대한 열정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승자를 뽑기로 심사기준도 변경했다. 

칼슨 위원장은 “미스 아메리카는 더 이상 미인 대회가 아니다”라며 “미스 아메리카는 학업과 사회적 영향력, 재능, 임파워먼트 등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세대의 여성 지도자를 대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여성들이 일어나 다양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용기를 발견하는 문화적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며 “미스 아메리카는 여성의 역량과 권한을 높이기 위한 운동에 함께하게 되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미스 아메리카가 단순히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여성’이 아니라 ‘다른 여성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여성‘으로 새롭게 정의되면서 대회의 풍경도 상당히 바뀌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미스 웨스트버지니아로 참가한 제일린 래치포드다. 래치포드는 자신이 발표할 차례가 돌아오자 하얀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채 무대에 올라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송했다. 자작시에는 “여성의 몸이 영혼의 등급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여성은 서로의 적이 아니며, 서로를 북돋아 더욱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등 여성으로서의 자신감과 연대를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스 아메리카 2021에 참가한 제일린 래치포드(웨스트버지니아)가 무대에 올라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송하는 모습. 사진=미스 웨스트버지니아 공식 트위터 갈무리
미스 아메리카 2021에 참가한 제일린 래치포드(웨스트버지니아)가 무대에 올라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송하는 모습. 사진=미스 웨스트버지니아 공식 트위터 갈무리

◇ 미스 아메리카의 변화, 미스코리아의 미래

사회적 변화와 함께 미인대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은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미스코리아 대회를 향해 지속적인 비판이 제기돼왔고, 새로운 심사기준과 절차를 도입해 외모가 아닌 재능과 열정을 평가해야 한다는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지난 2019년부터는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수영복 심사를 볼 수 없게 됐다. 여성단체 등을 중심으로 미인대회의 수영복 심사가 여성을 성상품화한다는 비판이 계속되면서 대회를 주관하는 한국일보 측에서도 이를 폐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 

하지만 2019년 대회에서는 사라진 수영복 심사 대신 한복 패션쇼가 등장해 논란이 됐다. 이름만 한복 패션쇼였을 뿐, 한복을 변형에 코르셋을 연상시키는 선정적인 의상으로 바꿔 참가자들이 전시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비록 전년도 참가자들의 축하행사로 심사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대회의 성격이 여전히 여성의 외모나 성적 매력을 전시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2019년에는 여성단체들이 성차별적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지자체 예산 지원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2년간 진정을 검토한 끝에 지난 5월 각하 결정을 내렸으나 “여성의 신체를 등급화하고 전시하는 미인선발대회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력을 고려해 지자체의 예산지원 등 사업운영과 관련한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아직 한국에서 여성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는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미스 아메리카의 변화는 곧 우리에게도 닥쳐올 미래이기도 하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기존의 비판을 떨쳐내고 새로운 세대의 리더에 걸맞는 여성 인재를 선출하고 많은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퍼뜨릴 수 있는 대회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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