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기후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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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드] 금융권의 지난해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기후금융’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으로의 자금 흐름을 막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에, 금융권의 동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 이 때문에 지난해 대부분의 국내 금융사는 ‘탄소중립’, ‘탈석탄’ 등을 선언하며 화석연료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연이어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해를 넘긴 현재 2021년 국내 금융권의 기후금융 실적을 되돌아보면, 단순한 ‘선언’ 이상의 성취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이 지난 4일 발표한 ‘국내 100대 금융기관 기후변화 정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중립을 외친 금융사 대부분은 실효성 있는 기후위기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국내 금융기관 70% 탈석탄 선언, 투자배제 기준 3곳 불과

이번 보고서는 은행, 자산운용사, 증권사,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정책금융기관·연기금·공제회 등 6개 부문 총 100개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탈석탄 투자 기준(6개 항목) 및 탄소중립 달성(2개 항목) 정도를 평가했다. 단순히 탈석탄·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석탄 관련 투자를 중단했는지 ▲뚜렷한 투자 배제 기준을 마련했는지 ▲탄소중립 기준에 따라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제시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겠다는 것. 또한 손해보험사의 경우 석탄발전소 관련 보험을 중단했는지도 평가했다. 

분석결과는 기대보다 실망스러웠다. 우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기관은 총 100개 금융기관 중 16개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구체적인 탄소감축 계획을 밝힌 곳은 스탠다드차타드그룹·신한금융지주·KB금융지주 산하 금융기관 11개뿐이었다. 

탈석탄으로 범위를 한정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총 100개 금융기관 중 70개가 탈석탄 선언을 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석탄 사업 및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배제 기준을 마련한 곳은 SC제일은행, 삼성화재, 미래에셋증권 3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67개 기관은 ‘신규 석탄발전에 대한 투자 중단’ 정책만을 수립했는데, 현재 신규 추진 중인 석탄발전 사업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효성 있는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고서는 “탈석탄 투자 기준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석탄발전 사업을 포함해 석탄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가치사슬(value chain) 전체를 ‘석탄 사업’으로 확장해야 한다”며 석탄 채굴뿐만 아니라 운송과 유통을 위한 철도·항만 등 인프라 관련 사업, 석탄액화 및 가스화 등 가공 설비 관련 사업까지 포괄하는 구체적인 투자배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탄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신규 석탄발전 사업’으로만 탈석탄 투자 기준을 설정할 경우, 간접적으로 석탄 사업과 연관된 기업들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매출 및 발전량 기준으로 석탄 기업을 정의하고 투자를 제한하는 기관은 앞서 언급한 SC제일은행, 삼성화재, 미래에셋증권 세 곳뿐이다. 

실제 SC제일은행은 2030년까지 석탄 매출 의존도가 5% 이상인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했으며, 미래에셋증권 또한 석탄 발전(30% 이상) 및 채굴(25% 이상) 매출 기준에 따라 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또한 미래에셋증권은 향후 석유·천연가스 사업과 관련된 거래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 기후대응에 소극적인 공적금융... 구체적인 탄소감축 계획 필요

더 큰 문제는 정책금융기관과 연기금 등 공적 금융기관이 기후위기 대응이 민간보다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포트폴리오상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거나 구체적인 탄소 감축 계획을 수립한 공적 금융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해 5월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 제한’을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탈석탄 시행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해외 석탄발전 관련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는 ‘신규 석탄발전’에 대한 것일 뿐이다. 국제 환경 협력단체 ‘기후투명성’(Climate Transparency)에 따르면, 지난 2018~2019년 한국의 화석연료 관련 공적금융 규모는 G20 국가 중 일본·중국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이 중에는 석탄뿐만 아니라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공적금융도 포함돼있다. 공적 금융기관부터 ‘신규 석탄발전 투자 제한’ 조치를 넘어서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구체적으로 화석연료 관련 비중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민간을 향해 탄소중립을 요청할 명분도 없다. 

국내와 달리 해외 금융기관은 이미 구체적인 탈석탄 기준을 수립하고 이를 실제 투자에 반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보험금융그룹 악사(AXA)의 경우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을 ‘석탄 기업’으로 규정하고 해당 기업에게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오는 2030년까지 OECD 회원국 내 석탄 투자를 전부 회수하고, 2040년까지는 OECD 외 국가로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연기금도 마찬가지다. 이미 노르웨이 국부펀드, 네덜란드 공적연금운용공사(APG) 등은 석탄발전 사업을 지속한다는 이유로 한국전력에 대한 투자를 중단한 바 있다. 특히, APG는 지난해 8월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 공동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와 윤순진 민간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의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전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탈석탄 선언 이후 반년 이상 손을 놓고 있는 국민연금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수연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K-대중문화는 세계를 선도하는데 K-금융의 기후변화 정책은 낙제점 수준”이라며 “2022년에는 한국 금융기관들도 실효성 있는 탈석탄 정책, 나아가 화석연료 전반에 대한 기후변화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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