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튜브 '재명이네 소극장'
사진=유튜브 채널 '재명이네 소극장' 갈무리

[뉴스로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공약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탈모인들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초래할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 탈모는 질병일까? 

현재도 탈모는 그 원인에 따라 일부 치료비용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질병분류기호 중 L63~L66은 각각 원형탈모증, 안드로젠 탈모증, 기타 비흉터성 모발손실, 흉터 탈모증을 지칭하는데,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탈모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 치료비 일부가 지원된다. 

문제는 노화나 유전으로 인한 탈모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9조 1항에 따르면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 ▲신체의 필수 기능 개선이 목적이 아닌 경우는 비급여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탈모뿐만 아니라 여드름, 사마귀, 주근깨를 비롯해 노화에 따른 피부질환 등도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 후보의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자연적인 탈모는 질병으로 보기 어렵고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의 문제도 아닌데, 다른 시급한 질병을 제치고 먼저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고려할 이유가 없다는 것.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원장을 지낸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생명과 건강에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중심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며 “생명과 건강에 직접 관련성이 낮은 탈모 치료에 연간 수백억원 내지 천억원대의 건강보험 재정을 지출한다면, 장차 국민건강보험은 재정적으로 죽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 탈모약 건보 적용, 재정 부담은 얼마?

자연적인 탈모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할 경우 재정 부담은 어느 정도 늘어나게 될까? 탈모와 관련된 여러 통계를 고려해볼 때, 수백억원에서 1천억원대의 재정이 지출될 수 있다는 이 교수의 지적은 근거가 없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L63~L66에 해당하는 탈모증 질환의 진료인원은 지난해 기준 23만4780명으로 지난 2015년보다 12.5%가 늘었다. 하지만 잠재적 탈모증 환자나 의료기관을 찾지 않는 경우, 노화나 유전에 의해 탈모가 진행된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지난 2019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남녀 1500명에게 물은 결과 탈모 증상을 겪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2%에 달했다. 이를 국내 인구 5천만명에 대입하면 대략 1천만명이 탈모로 고민 중인 셈이다. 

실제 탈모치료제 시장은 탈모인구 ‘1천만명’이라는 수치에 걸맞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업체 유비스트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탈모치료제(처방약 기준) 시장 규모는 약 1255억원으로 전년(1076억원) 대비 16.6%나 성장했다. 본인부담금 비율을 50%로 적용하면 약 600억원 이상의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급여 대상 치료제의 범위나 본인부담률이 조정될 수도 있고, 심평원과 제약사의 협상 과정에서 치료제 가격이 낮춰질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단순 계산만으로 재정 부담을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탈모치료제 시장의 급속한 성장을 고려할 때 건강보험 재정 부담 또한 적지 않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케어’로 확대됐던 MRI 급여조차 건강보험 재정 고갈 우려로 인해 다시 축소된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탈모치료제 건보 적용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탈모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경우 여드름 등 다른 분야로 논의가 확장될 수 있어 추가적인 재정부담이 발생할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사진=이상이 제주대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탈모약 건보 적용' 공약에 대해 비판했다. 사진=이상이 제주대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 탈모는 ‘사회적 장애’?

하지만 “탈모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탈모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실제 탈모는 정책 결정 과정은 물론 미디어나 일상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다뤄진 경우가 드물다. 우리 사회에서 신체 기능의 제약이나 생명의 위협이 없는 외모의 ‘결함’은 보통 진지한 ‘논의’가 아니라 가벼운 ‘농담’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문제는 생명이나 신체 기능에 영향이 없다고 해서 탈모로 인한 불편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일부 탈모인들은 대인관계나 연애, 결혼, 취업 등 다양한 상황에서 탈모로 인한 불이익을 경험한다며 탈모를 일종의 ‘사회적 장애’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탈모를 장애로 분류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탈모로 인한 고통도 사회적으로 논의돼야 할 중요한 문제임을 인정받고 싶다는 뜻에 가깝다.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탈모증 환자들도 ‘사회적 분리’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며 가발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설령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부 탈모인들이 '탈모'를 공약의 대상으로 검토하는 정치인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 탈모 공약 논란, ‘건강’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 확장될까?

탈모 외에도 “생명에 직접 관련되는 중요 질병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어난 사례는 적지 않다. 유방암으로 인해 유방을 절제한 환자들의 유방 재건술이 대표적이다. 미용·성형 목적의 시술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재건술을 통해 환자의 심리적 위축을 해소하고 신체적 불균형을 개선한다는 점이 인정돼 2015년부터 재건 비용의 50%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다만 부분 절제를 하는 환자의 경우는 여전히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른 인공임신중절 수술, 먹는 낙태약 등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문제를 두고 여성계와 종교계, 의료계 간에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의료계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임신중절의 건강보험 급여화는 건강보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을 급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인공임신중단은 질병·부상도 아니고 출산 및 건강증진이라는 건보의 목적에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것. 

물론 탈모로 인한 불편을 원치 않는 임신이나 유방암의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과 비교할 수는 없다. 탈모보다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질병도 적지 않다. 

다만 ‘질병’이 단순히 의학적으로만 정의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그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건강한 삶’의 기준이 높아지고, 이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의 가짓수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탈모 건보 적용’ 공약을 둘러싼 포퓰리즘 논란이 탈모처럼 직접적인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불편에 대한 폄하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편 이 후보는 지난 5일 “신체의 완전성이라는 것은 중요한 가치”라며 “재정 부담이나 적용 범위에 대해 정책본부에서 검토해 이른 시일 내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탈모 공약’이 불러온 논란이 단순히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노리다 벌어진 해프닝에서 그칠지, ‘건강’의 기준에 대한 또 다른 논의로 확대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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