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매입한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 부지. 사진=호주 환경단체 '락더게이트'(Lock the Gate)
한국전력공사가 매입한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 부지. 사진=호주 환경단체 '락더게이트'(Lock the Gate)

[뉴스로드] 한국전력이 10년간 추진해온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 사업’이 현지 법원의 판결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국내외 환경단체 및 투자기관의 비판에도 해외 석탄사업을 추진해온 한국전력은 이번 판결로 큰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호주 공영 ABC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호주 연방대법원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사우스웨일즈주(NSW) 바이롱계곡 석탄 광산 개발 허가와 관련해 한국전력이 낸 상고 신청을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한전은 지난 2010년 다국적 광산기업 앵글로아메리칸으로부터 호주 바이롱 석탄광산지분 100%를 4억 호주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하지만 광산 개발에 따른 환경오염을 우려한 지역주민과 환경단체가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2019년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독립계획위원회(IPC)가 사업 승인을 거부하면서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한전은 IPC의 결정에 불복해 NSW주 토지환경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서 연이어 패소하자 연방대법원에 상고를 신청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마저 한전의 상고 신청을 기각하면서 바이롱 광산 사업의 재추진은 불가능해졌다.

한전이 지난 10년간 바이롱 광산 사업에 투자한 금액은 지분 인수 및 토지 매입, 탐사 등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합쳐 약 8000억원이 넘는다. 한전은 손실 최소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는 입장이지만, 상고 기각으로 인한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한전이 국내외 환경단체 및 투자기관으로부터 해외 석탄사업 투자와 관련해 강한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철회를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로 약 760조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 중인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는 지난 2020년 2월 “세계 금융 시장은 석탄발전 부문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한전 최고 경영자와 이사진은 그들의 결정에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한전에 대한 투자 철회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 또한 2020년 6월 ‘한국전력 이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한전의 해외 석탄발전 사업 투자를 비판했다. 작성자인 멜리사 브라운(Melissa Brown) 아시아 에너지금융연구소 디렉터는 “한전은 청정에너지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와 상충하는 방향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고 있다”며 ““한전이 계획 중인, 그리고 운영 중인 해외 프로젝트 전력 믹스의 51%는 석탄”이라고 지적했다.

한전의 해외 사업 손실도 대부분 석탄발전과 관련돼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전 및 발전 자회사들이 지난 2011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약 10년간 해외 자원·발전사업에 투자한 4조7830억원 중 1조2184억원이 손상차손 처리됐는데, 이 가운데 6248억원(51.3%)은 석탄 부문에서 발생했다. 이 기간 동안 한전이 해외 법인에서 받은 배당금 1조265억원을 고려해도 1919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현지 주민의 반발과 투자기관 및 환경단체의 반대, 지속적인 손실에도 불구하고 재검토 없이 추진해온 이번 사업은 결국 수천억원 규모의 손실로 귀결됐다. 한전은 지난 2020년 신규 해외 석탄발전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며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바이롱 등 기존 사업은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재 한전은 호주 바이롱 외에도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소,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발전소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전은 사업 무산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한전이 바이롱 사업 부지를 그린수소 클러스터 구축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소영 의원이 정승일 한전 사장에게 “뉴사우스웨일스주의 그린수소 허브 전략에 발맞춰 한전이 바이롱 사업 부지에 그린수소 클러스터를 만들면 좋은 출구전략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당시 정 사장은 이 의원의 제안에 대해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기후솔루션 오동재 연구원은 “12년간 이어진 한전의 바이롱 석탄 광산 사업의 실패는 기후위기로 인해 좌초자산 리스크가 현실화된 대표적인 사례”라며 “이번 교훈에도 불구하고 공적 금융기관이 신규화석연료 사업에 자금을 투입한다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연구원은 이어 “앞으로 닥쳐올 기후위기의 파고에서 공적금융의 재무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선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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