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위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게시판을 연 지 어느덧 4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입법·행정적 차원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기됐고,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에는 청와대 및 관계부처가 직접 나서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뉴스로드>는 지난 4년간 20만 이상의 추천을 받은 여러 청원들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검증해봤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로드] 지난 2019년 9월 충남 아산에서 초등학교 2학년 아동이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가해차량은 시속 23.6km로 어린이 보호구역 제한속도를 지켜 운행하고 있었지만, 횡단보도에서 일시 정차를 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다가 길을 건너던 아동을 확인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해당 사고가 논란이 되면서 국회에서도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딴 ‘민식이법’이 다수 발의됐다. 도로교통법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개정안으로 구성된 민식이법은 어린이 보호구역에 신호등 및 과속방지 장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아동을 상해·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피해 아동의 부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어린이들의 생명안전법안 통과를 촉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민식이법 제정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청원인은 “먼저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그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을 발의하고 입법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부모님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청원을) 진행하게 됐다”며 민식이법뿐만 아니라 해인이법, 한음이법, 제2하준이법, 태호·유찬이법 등 아동 보호를 위한 다른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 41만 넘은 '민식이법' 청원, '과잉처벌' 논란에 '개정 청원' 역풍도...

‘민식이법’ 청원은 무려 41만5691명의 참여를 끌어내며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을 넘겼다.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청원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그 슬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실 부모님들의 심정을 잘 알기에 저 역시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과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정부는 아직 처리되지 못한 ‘어린이 생명안전 5대 법안’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실제 해당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피해아동의 부모에 대한 지지 여론이 컸기 때문에, 민식이법은 이례적으로 청원이 마감되기 하루 전인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듬해인 2020년 3월 25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문제는 민식이법이 제정되고 나서부터다.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운전자에 대해 3년 이상의 징역(최대 무기징역), 상해는 징역 1~15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민식이법을 반대하는 측은 어린이 보호를 위해 처벌이 지나치게 강화됐다며, 여론에 밀려 졸속 처리한 법안이 자칫 다수의 운전자를 악마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법안 시행 이틀 전인 지난 2020년 3월 23일에는 민식이법을 개정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개정안은 ‘형벌 비례성 원칙’에 어긋나며, 어린이 보호구역 내의 어린이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피할 수 없었음에도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하루라도 이 법의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개정을 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이 청원 또한 35만4857명이 동의해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반면 민식이법을 지지하는 측은 반대 측의 우려가 과장됐다며 제한속도 및 안전운전 의무를 준수할 경우 가중처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

실제 민식이법 개정 청원에 대한 답변에 나선 김계조 당시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현행법에 어린이안전의무 위반을 규정하고 있고, 기존 판례에서도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거나 사고 발생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인 경우에는 과실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현행법과 기존 판례를 감안하면 무조건 형사처벌이라는 주장은 다소 과한 우려일 수 있다”고 답했다. 민식이법을 개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셈이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민식이법 시행 2년, 어린이 보호 효과는?

민식이법 시행 후 2년이 지난 지금 법의 효과와 부작용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법이 시행된 2020년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는 483건으로 전년(567건) 대비 14.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사망자는 6명에서 3명, 부상자는 589명에서 507명으로 줄어들었다. 전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 또한 2019년 1만1054건에서 2020년 8400건으로 24%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어린이 교통사고의 감소 추세가 민식이법의 효과라기에는 의문이 남는다. 저출산으로 인해 12세 이하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통학도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민식이법이 아동 교통사고 감소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강화된 처벌이 적용된 경우도 많지 않다. 이정우 경찰청 경찰인재개발원 교수요원이 지난해 발표한 '특가법 어린이보호구역치사상에 관한 판결분석과 교통조사 실무대응' 논문에 따르면, 민식이법 시행 후 1년간 해당 법률이 적용된 하급심 판결 25건 중 실형은 단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24건 중 14건은 집행유예, 10건은 벌금형이었으며, 벌금은 평균 571만원이 선고됐다.

운전자의 고의가 아니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무죄 처분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 대전지법은 지난해 6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7세 아동을 치어 다치게 한 6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도로에 진입한 아이가 블랙박스 영상에 출현하는 시점부터 충돌 시점까지 약 0.5~0.6초밖에 되지 않아, 운전자가 가능한 최단 시간에 제동했더라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식이법을 둘러싼 찬반논쟁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8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민식이법은 운전자가 막을 수 없는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도 운전자에게 떠넘기는 법”이라는 데 응답자의 69%가 동의했다. 2020년 조사에 비하면 7%p 줄어든 수치지만 여전히 10명 중 7명은 민식이법에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법조계의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2월 발간한 ‘2020년 입법평가보고서’에서 “민식이법의 법정형은 ‘형벌의 비례성 원칙’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과한 측면이 있다 고생각된다”며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운전 중 과실로 어린이를 사망하게 했을 경우 형법상 고의의 강력범죄 수준으로 가중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변협은 이어 “상황에 따라서는 민식이법 보다 형법이 적용되는 편이 오히려 처벌 상 유리할 수도 있어 운전자가 고의로 상해를 가했다고 주장하는 모순적 상황도 가정해볼 수 있다”며 “법정형의 하한을 지금보다 조금 더 낮춤으로써 위헌적 소지를 줄이고,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는 불법 주・정차된 차량에게도 현재보다 더 강한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민식이법과 마찬가지로 국민청원을 통해 제정된 윤창호법의 경우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에서 7대2로 일부 위헌 판결을 내렸다. 민식이법과 마찬가지로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에서다. 어린이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지만 2년이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민식이법 논쟁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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