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을 지나 춘천으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유년의 골목길을 따라 강원도를 복기하는 소설가의 여행 일지

강원도 마음사전
강원도 마음사전

김도연 소설가의 에세이 『강원도 마음사전』이 걷는사람 에세이 17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김도연 소설가는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동안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콩 이야기』,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아흔아홉』, 『산토끼 사냥』, 『누에의 난』, 『마지막 정육점』, 『마가리 극장』, 산문집 『눈 이야기』, 『영』, 『자연은 밥상이다』, 『강릉 바다』 등을 펴내며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명실상부한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강원도 마음사전』은 어느덧 중년이 된 작가가 어린 날을 돌아보며 새롭게 시작하는 추억의 여행이자, 점차 사라져 가는 고향의 풍경과 말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강냉이밥’, ‘갈풀’, ‘달그장’, ‘새뿔’ 같은 강원도 말부터 ‘강릉’, ‘대굴령’, ‘속초’ 같은 특정한 지명으로 단 제목들이 눈길을 끈다. 기억의 파편을 하나하나 집게로 집어 올리듯이 작가는 작은 사물에서부터 자연과 동식물까지 모두 새로운 방식으로 호명한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던 작가의 유년을 따라가다 보면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세상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김도연 소설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햇살이 좋은 마당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레 어린 시절의 풍경과 말이 따라 나온다고 말한다. 진한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정겹게 작가를 부르는 엄마와 아버지가 보이고, 형 누나들과 함께 오간 곳이 등장한다. 울타리 주변에는 앵두나무, 신배(돌배)나무, 개복숭아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개, 소, 닭, 토끼, 돼지, 염소가 한데 어울려 살고 있다.

작가는 그런 유년의 풍경을 내다보면서 곧 깨닫게 된다. 결국 본인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사라진 풍경과 새로운 말을 찾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릴 적 지냈던 대관령, 처음 유학을 갔던 춘천 등을 시작으로 하여 속초와 강릉을 넘나들며 강원도 정서가 물씬 담긴 토속적인 단어들을 되살려낸다. 소설가가 풀어낸 여러 편의 자연의 조각들은 독자에게 강원도 고유의 아름다움을, 투박한 정겨움을 선사한다.

작가는 옆 사람에게 말하듯이 나긋나긋하게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공부를 위해 “괜히 허세를 부려 먼 춘천까지 길을 떠나게 된” 고등학교 시절, “찰옥수수를 잘 말렸다가 맷돌에 타개서 지은” 강냉이밥을 교실에서 후후 불어 먹던 기억하며, 이제는 지나가 버린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들을 작가의 어릴 적 사진, 일러스트와 함께 곁들였다. 

작가는 겨울의 대관령은 온통 눈 천지였다고 회상한다. 그곳은 “눈이 풍족하면 남자아이들은 집에서 직접 만든 나무스키를 비알밭에서” 타는 곳이었고, “여자아이들은 비료포대에 짚을 넣어 푹신푹신하게 만들어 집 근처에 썰매놀이”를 하던 곳이었다. ‘대굴령’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추운 줄도 모르고 해가 질 때까지 소리를 지르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눈앞에 선연하게 떠오른다. 이외에도 투정을 부리면서 아버지의 지겟가지에 올라타서 ‘새뿔’(지게 윗세장 위의 가장 좁은 사이)을 잡고 있던 날들이나,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말뚝에 묶인 밧줄과 씨름하며” 소에게 끌려다니던 일들은 해학적이면서도 깊은 아련함을 불러온다. 이제는 더 이상 교실 한가운데에 자리하던 둥근 무쇠난로도, 까마득한 밤을 밝히던 등잔과 호야(남포등)도 없지만 작가의 곁을 온전하게 지켜 주던 존재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의 아름다운 풍광을 이룬다. 생생하고 맑은 바람과 인정과 온기가 흘러넘치는 공간이 독자들을 인도한다.

 

작가의 말

대관령 고향집에 가면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이 있다. 물론 예전처럼 사람이 살지 않고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정지(부엌)는 아예 허물어 버려 된(뒷마당)이 된 지 오래다. 가끔 고향집에 가면 오후의 햇살이 좋은 그 뒷마당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하는데 당연하게 사라진 풍경도 함께 따라 나온다. 사라진 말도.

나는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형, 누나들을 따라 안방과 윗방, 정지, 마구(외양간), 고간(곳간), 정낭(화장실), 샘물을 오가며 말을 배웠다. 울타리 주변의 앵두나무, 신배(돌배)나무, 개복숭아나무, 꽤(자두)나무 아래에서 놀았다. 개, 소, 닭, 토끼, 돼지, 염소와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강냉이밭, 감자밭, 콩밭, 당귀밭, 당근밭으로 농기구를 들고 가며 툴툴거렸다. 그러면서 어느덧, 나무보다는 훨씬 느리지만 키가 커 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집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었다. 새로운 말을 찾아서.

이 산문집은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란 한 소설가가 사라지고 잊혀 가는 그 말들과 풍경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인데, 나에게 집 안과 집 밖의 말을 처음 알려 준, 아직도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 부모님께 새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두 분이 안 계셨더라면 나는 지금도 벙어리로 살고 있을 것이다.

 

소설가 김도연

대관령(평창)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뒤 춘천으로 유학을 떠났다.  강원대 불문학과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졸업 후 주물 공장, 아파트 공사장에서 막일을 했다. 강원일보(1991년)와 경인일보(1996년)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고 2000년 여름,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란 소설로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었다.

그동안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등,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누에의 난』, 『마가리 극장』 등, 산문집 『눈 이야기』, 『영』, 『강릉바다』 등을 펴냈고 허균문학작가상, 무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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