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특정 노조 반감 앞세운 '근로 3권' 무시는 위헌 소지 있다

- 현대건설 임원 “노조 고용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이행하는 협력사 나타나” 발언 논란 확산 - 노조 자체와 노조의 불법행위는 구분해야...'노조 불인정'은 용납 안돼

2023-05-22     김의철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 부당행위 근절대책’ 논의에서 원희룡 장관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원희룡 SNS 갈무리]

국내 2위 건설사인 현대건설(대표 윤영준) 임원이 국회 토론회에서 “노동조합(노조)을 고용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이행하는 협력사들이 나타났다”는 발언이 논란을 낳고 있다.

이는 헌법 제33조 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

노조의 불법행위를 구분하지 않고 노조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은 불법을 넘어 위헌적인 수준을 우려케 한다. 

한 직장인이 애사심의 발로에서 한 말로 합리화하기에는 선을 넘었다. 한 기업이 정치판에 잘못 엮여 낭패를 겪은 사례는 무수하다. 대기업의 임원은 언행에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대건설은 지난해와 올해 시공능력 순위에서 1위 삼성물산에 이어 연속 2위를 차지하는 거대 건설기업이며, 사실상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끈 현대그룹의 모태기업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여파가 상당할 수도 있어 보인다. 

이번 발언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 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 조치 관련 민·당·정 협의회에서 건설현장 내 불법행위 규정 범위를 확대하고,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날 정부와 여당은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건설현장 정상화 5대 법안(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계관리법, 채용절차법, 사법경찰직무법, 노동조합법)’을 신속하게 개정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2월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는 ‘건설현장 불법 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노조가 건설현장에서 채용 강요 및 협박 등으로 노조전임비(노동조합법에 따라 노조 전임자가 받는 임금)와 월례비(건설사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지급하는 비공식적인 금품)를 받을시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해 수사의뢰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 인해 정부와 노조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인 성격이 짙고, 불법과 합법의 기준이 명확해 정부와 노조가 각자 할 일을 하는 상황이다. 

반면, 현대건설 임원의 발언은 불법을 넘어 위헌에 대한 논란까지 확산할 수 있는 위험을 자초했다. 

민주노총 경인건설지부 관계자는 “발언 자체가 예전처럼 노동자를 쥐어짜서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말”이라며 “노조가 일을 안 한다는 프레임 때문에 저희도 노동시간에는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측에선 노조 조합원이 단체협약상 보호돼 있고 문제가 생기면 조직적으로 나서기 때문에 쉽게 이용하지 못해 노동자를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민주노총과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가 발표한 ‘2022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고, 앞서 지난 2007년, 2012년, 2015년에도 선정됐었다. 

또한,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안전교육 미실시로 3억3395여만원의 과태료를 물기도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부당한 금품을 요구하는 것도 나쁘지만, 이들에게 수십년 동안 금품 등을 제공하는 관행을 만들어 온 공범은 다름아닌 건설사들"이라며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속행료를 제공하는 등 불법적인 일을 일삼아 대기업이 된 것은 아닌지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건설현장에서 근로자에 대해 정당한 임금을 보장하고, 적정한 강도의 근로를 요구하는 건전한 건설업계의 관행이 자리잡았다고 얘기하는 건설업계 관계자를 기자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다단계 하청구조와 불법하도급 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직접시공, 책임시공, 투명한 경영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는 건설업계의 반성이 절실한 때다. 

이번 일이 어떻게 매듭지어질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의 역할을 기업이 대신하려고 하면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