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세훈표 '백년주택', 겨우 3년 만에 후퇴?

- 서울시, SH공사 '백년주택' 사전예약 제동...김헌동 사장 퇴임과 동시 정책 '후진'

2024-11-21     김의철
오세훈 시장(왼쪽)과 김헌동 전 SH공사 사장이 2022년 7월 싱가포르 공공임대주택 '피나클 엣 덕스톤'에서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논의하는 모습 [사진=서울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함께 야심차게 추진하며 많은 관심을 모았던 '백년주택(토지임대부 건물분양주택)'이 불과 3년 만에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토지임대부 건물분양주택은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지어서 분양하는 주택으로 택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싱가포르의 경우, 약 70%의 주택이 이같은 방식으로 공급돼 주거안정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흔히 '반값아파트'로 불린다.

오세훈 "평당 1000만원 반값아파트 강남권에 수천 세대 공급해야" 文정부 비판

오 시장은 매우 진지한 '반값아파트' 전도사였다. 지난 2020년 7월7일 당시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이 주도했던 ‘미래혁신포럼’ 강연에서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하며, "정부의 LH, 서울시의 SH 등 두 공기업의 주도로 평당 1000만원의 반값 아파트를 강남권에 수천 세대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당시 “한때 반값 아파트를 공급했는데, 지금 얼마에 거래되는지 확인해보라”며 “이명박 정부 때 성공했던 정책인데,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가 하지 않는다. 해법만 용케 피해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이어 서울 주변의 ‘3기 신도시’가 사전청약제로 추진된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잘못된 길로가고 있다”며 “분양가 상한제, 분양 원가 공개, 후분양제 등 3종 세트가 같이 가고 토지임대부 분양제도를 병행해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2021년 11월15일 김헌동 전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을 SH공사 사장에 임명했다. 

김헌동 전 사장은 지난 14일까지 3년 동안 이같은 오 시장의 부동산 철학을 앞장서서 실천했다. 취임 한달만에 분양원가 공개를 시작해 지난 20여년 동안 SH공사의 분양원가를 모두 공개했고, 후분양제와 토지임대부 분양제도 정착은 물론, 오 시장이 강조했던 '고품격·장수명 아파트'를 '백년주택'으로 풀어냈다. 

지난해 5월 오세훈 시장이 고덕강일3단지 토지임대부 아파트 착공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SH]

SH공사는 김 사장 재임기간이었던 지난 3년간 1700여 가구의 백년주택 사전예약을 진행했고, 평균 40대1에 달하는 인기를 입증했다.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고품질 아파트면서도 실제 분양가는 전용면적 59㎡평 기준 3억원대에 공급 예정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도권에 반값아파트 150만채를 공급하겠다는 대선공약에도 불구하고 700여 가구 공급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오 시장과 김 사장의 성과는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서울의 집값은 상당히 안정세를 이어왔고, 오 시장에 대한 지지도도 탄탄하게 구축되면서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탄탄했던 '백년주택'에 비상등이 켜졌다. 

김헌동 "서울시 관료들과 국토부, 백년주택 공급 방해"

김헌동 전 사장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서울시 관료들과 국토부가 ‘백년주택’ 공급을 방해한다"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의 퇴임으로 '오세훈표 백년주택'이 동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진행했던 최근 인터뷰에서 "300여 가구의 '백년주택'을 추가 공급해 2000 가구를 채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SH공사는 백년주택 사전예약 계획이 없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그 이유가 서울시가 '사전예약을 하지 말라'는 취지의 공문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SH공사 관계자는 <뉴스로드>와의 통화에서 "올해 안에는 '사전예약' 계획이 없다"면서 "서울시가 백년주택의 사전예약을 진행하지 말아달라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여하튼 그간 오 시장의 행보를 감안하면 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는 앞서 지난 2021년 7월 제도를 도입한지 34개월 만인 올해 5월 14일 "공공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LH의 사전청약은 용어만 비슷할 뿐 SH의 사전예약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LH의 사전청약은 택지조성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별한 구속력 없이 진행됐기 때문에 사전청약을 했더라도 착공여부는 불확실한 반면, SH는 택지 조성을 마친 뒤 사전예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공사가 취소되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김 전 사장이  진행하려고 했던 고덕강일지구와 마곡지구의 300여 가구의 사전예약은 이미 지난해 착공한 뒤 착실하게 시공이 진행되고 있고, 준공예정일까지 정해진 상태다. 

사전예약이 왜 필요한지 묻자 김 전 사장은 "사전예약에 당첨된 시민들은 약 2년 동안 내집 마련을 위한 자금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고, 그 기간 동안 집 걱정을 덜 수 있다. SH는 90% 준공 시점에서 후분양을 하기 때문에 미리 수요를 파악할 수 있고 미리 예약 받은 손님이 있는 장점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한끼 식사도 예약을 하는 시대에 평생 살 수도 있는 집을 짓는 데 예약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면, '백년주택' 사전예약을 못하게 하는 조치는 사실상 '백년주택'을 포기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해석된다. 

백년주택은 그 동안 오 시장이 말했던 많은 주장이 담겨 있다. 토지임대부 건물분양방식의, 후분양, 고품격, 장수명 주택이다. 여기에 직접시공제, 적정임금제 등 SH공사가 지난 3년간의 혁신을 통해 이룬 성과들이 모두 담겼다. 

오 시장 친필 [사진=SH]

오 시장은 작년 5월 고덕강일지구 백년주택 착공식에 참석해 '건물분양주택 시민의 기대가 현실이 됩니다!'라는 친필을 남기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 반값아파트를 더욱 확대한 '반값전세(미리내주택)' 정책까지 들고 나왔다. 

오 시장의 의중과 다른 공문이라면, 이는 오 시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향후 서울시와 SH공사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