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헌동 "수도권 135만호 공급, 국토균형발전 역행…LH 개혁 빠져”

“수도권 135만 호 공급은 지방 소멸 가속화” “공공택지 매각은 건설사 이익만 보장…국민은 소외” “LH, 원가 공개·후분양·직접시공 등 근본 개혁 필요” “무제한 매입은 공기업을 ‘쓰레기 처리장’으로 전락시킬 것” “지방·농촌 맞춤형 주거정책으로 국토균형 회복해야”

2025-09-15     김의철

“수도권에만 135만 호를 공급한다는 건 국토 균형발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겁니다. 이번 9.7대책에서 공공택지를 팔아치우는 방식도 문제고, LH 개혁은 빠졌습니다.”

김헌동 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은 12일 <뉴스로드>를 만나 정부의 ‘9·7 부동산 대책’을 “개혁이 아니라 숫자 꽤 맞추기식 발표”라고 규정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는 “공기업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체질 개선, 국토 균형발전, 공공택지 매각 금지, LH 개혁부터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주>>

김헌동 전 SH공사 사장 [사진=뉴스로드]

◇“9.7대책, 수도권 135만 호 공급 집중... 국토 균형발전 외면”

▲ 이번 9.7대책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김헌동: 지방소멸, 국토 균형발전 문제입니다. 수도권에만 135만호를 공급한다? 이미 인구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쏠려 있는데, 지방은 그냥 소멸하라는 얘기입니까? 국토를 더 불균형하게 갈라놓는 정책이에요. 적어도 수도권 135만 호를 한다면 지방에도 비슷한 수준의 공급계획을 병행 발표했어야 합니다.

오랜 기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수도권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 결과, 서울 930만명, 경기도 1,400만명, 인천 300만명으로 수도권 인구가 전 국민의 절반이 넘는 기형적인 인구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35년 경기도에 신도시를 건설하면 서울 집값이 안정된다”라는 논리를 앞세웠지만, 서울은 120만명이 감소하고, 주택은 240만호 늘었습니다, 경기도는 760만명 증가했고, 주택도 422만호 늘었습니다. 주택은 660만호 인구는 640만명 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집값은 안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폭등했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인구가 계속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부가 지방 발전을 외면하고, 삶의 질 개선을 방치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정부는 여러모로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애쓰는 모습인데, 정작 주택 정책 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오히려 지방소멸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이미 SH공사가 강원도 삼척시와 '골드시티'를 추진했고, 충남 보령시와 협약을 추진 하는 등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했는데, 추진 동력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자료=SH공사]

▲이번 대책에서 재원 조달 문제는 없을까요?

135만 가구를 공급한다면, 가구당 5억원만 잡아도 700조원 가까운 돈이 필요합니다. 결국 개인들이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니 주택담보 대출(가계부채)은 더 늘어나겠지요.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국민 빚을 떠넘기는 셈이죠. 이는 안 그래도 부담인 가계부채를 증가시키고 은행들의 기업 대출을 간접적으로 방해하는 부작용까지 우려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공약했던 기본주택은 토지임대부 주택이기 때문에, 그만큼 가계 부담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아직 구체적 정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공택지 매각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 대통령이 분명히 “공공택지는 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에는 민간 참여방식이든 LH 직접 분양이든, 개인에게 분양하는 동시에 함께 택지가 넘어가면 결국 공공택지를 매각하는 겁니다. 공공성이 사라집니다. 이번 대책은 오히려 더 비싸게 파는 구조입니다. 이런 방식은 집값 안정도 어렵고,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 건설사 이익만 보장하는 겁니다.

또한, 공공택지를 분양해서 소진해야 땅이 없다는 이유로 4기 신도시 개발 명분이 생기겠죠.

이런 점에서 이번 개편안은 이 대통령의 의중과는 다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아마 부동산 경기 연착륙을 명분으로 삼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국토 균형발전을 통해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지 나쁜 관성을 유지하면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개편안에 LH 개혁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고 평가하시나요?

LH 개혁은 다섯 가지로 요약됩니다.

우선 LH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분양 원가 전면 공개하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LH가 분양한 아파트의 분양 원가를 SH처럼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못을 바로잡을 대안을 함께 제시해야 합니다. 약속을 이행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품질확보 등을 위해 후분양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이미 SH는 줄곧 후분양제를 시행해 왔고, 안전과 품질에서 확실한 성과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품질에 만족해야 합니다.

또한 직접시공제와 적정임금제를 당장 도입해야 합니다. LH 검단 아파트에서 드러난 감리 문제는 물론, 최근 중대재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안전이 개선되려면 LH공사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LH 아파트를 짓는 현장 노동자들은 LH공사의 주인들이기도 합니다. 하청에 재하청 등으로 대가를 누군가 떼어먹는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현장 노동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감리자를 포함해 현장 노동자들에게 LH가 직접 임금 지급해야 합니다.

이것도 SH에서는 2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고, 별문제 없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국토의 균형발전 등을 위해 지방 주택의 경우 지방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에는 각기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주택을 개발하여 공급해야 합니다. 모듈러·표준화 공법을 통해 3~4년 소요되는 건축 공사 기간을 1년 이내로 단축하고, 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 등은 오래동안 개발의 손이 미치지 못한 곳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제2의 새마을 운동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습니다. (골드시티, 골드타운, 골드빌리지 등)

최소 위 다섯 가지가 하나의 패키지로 작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하는 100년 기업 LH공사를 주인인 국민이 신뢰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정부 정권 초기에 해야 훨씬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이같은 정책에 동의했었기 때문에 이번 대책에 왜 대통령의 의중이 담기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웠던 ‘무제한 매입’ 정책이 이번 대책에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번 대책에 담긴 '빌라 무제한 매입'은 한마디로 시장 실패 비용을 공기업에 떠넘기는 구조입니다. 미분양 주택, 상가, 지식산업센터까지 다 사들인다면,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운영되는 LH가 ‘쓰레기 처리장’이 되는 겁니다.

공기업이 해야 할 일은 주택과 도시개발의 설계와 시공 감리와 운영 등에 대한 표준을 만들고, 이를 더 발전시켜 세계 최고의 품질과 가격 운영 임대 등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지, 민간의 실패를 뒷수습하는 게 LH공사의 역할이 아닙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에서 지난해 '8.8대책'을 통해 '무제한으로 사들이겠다'던 빌라 매입임대 주택 정책은 서민 주거 방식인 연립주택과 빌라를 시세보다 비싸게 대량으로 공기업이 사들임으로써 집값을 올리고 서민 주거를 위협하는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반지하 주택 등 국가의 책임 있는 사유로 만들어진 반지하 등을 사들여 주거의 질을 높이는 방향의 매입은 찬성하지만, 신축 약정을 통해 시세보다 비싸게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매입임대는 절대 반대합니다.

▲이번 대책에서 기존의 인허가 기준을 착공 기준으로 바꾼 것은 긍정적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지금은 인허가 기준으로 통계를 발표하니까 착공 지연이 가려집니다. 실제로는 연간 목표의 절반도 못 채우는 경우가 많아요. 착공·준공 기준을 월별로 공개해야 국민이 검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3기 신도시가 준공되고 입주하려면 앞으로도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인허가 기준보다는 낫지만, 착공 기준보다는 준공·입주도 함께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국토 균형발전을 많이 강조하시는데, 지방과 농촌은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지방 대도시에는 도시와 주거 인프라를 확충해야 합니다. 교통은 좋아졌지만, 농어촌에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습니다. 이런 방치된 농어촌에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낼 ‘골드 빌리지·골드 타운·골드 시티’ 등과 같은 지역맞춤형 사람 친화형 주거 단지를 조성해야 합니다. 70년 이상 오래된 낡은 집에 노인들만 사는 현실을 방치해 왔습니다. 이런 곳을 청년과 외국인이 찾는 명소로 바꿔야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죠. 교통과 디지털 인프라도 중요합니다.

또한, 제천 조차장 같은 부지를 활용해 대규모 모듈러주택 부재 생산공장을 짓고, 철도망을 이용해 전국으로 이송하면 빠르게 지방 주거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지방소멸이 빠른 도시일수록 더 먼저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LH공사가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매입임대에 사용되는 예산 기금 자체 조달 자금 등이 매년 10조를 넘고, 여기에 더해 주택기금 등을 활용하면 농어촌 주거환경 개선은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김헌동 "공기업은 국민이 주인...지금 LH공사 개혁해야"

김 전 사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국민이 주인”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공기업의 주인은 직원도, 관료도, 정치인도 아닙니다. 국민이 주인입니다. 국토 균형을 바로 세우고, 공공택지를 지켜내며, 지금 LH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기업이 애초 설립 목적대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길로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택지는 한 평도 팔지 말고, 공기업 분양 원가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품질과 안전은 후분양으로 증명하라”며 정부의 주택 정책에 근본적인 혁신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