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관피아 실태조사... 여전히 뿌리 깊은 재취업 카르텔
- 관피아 재취업 승인율 94.2%, 사실상 ‘무조건 통과’ - 부처별 전관예우, 여전히 반복되는 패턴...기재부 100%
올해 경제 관련 8개 부처를 대상으로 실시한 관피아(관료+마피아) 실태조사 결과에서 정부 퇴직 관료들의 민간 재취업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수준임이 드러났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6일 "지난 2022년과 2023년에 이어 세 번째로 조사"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실련에 따르면 올해 조사 대상이 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세청,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8개 부처의 취업심사 승인율은 평균 94.2%에 달했다.
전체 519건 가운데 489건이 취업 가능 결정을 받았으며, 기획재정부는 100%로 가장 높았다. 이어 국세청과 산업부(97.8%), 국토부(96.2%), 금융위와 중기부(90%), 금감원(89.9%), 공정위(83.9%) 순이었다.
경실련은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에 규정된 ‘전문성’, ‘공익성’ 등 추상적 사유가 재취업 승인 근거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며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실제 승인 사례 중 46.9%가 ‘전문성이 증명되는 경우’라는 이유를 들었다.
부처별 특징을 살펴보면, 기획재정부는 조사 대상 25건 전부가 재취업 승인을 받았다. 특히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국제금융센터 등 기재부 유관기관으로의 이동이 눈에 띄며, 한국자금중개 대표이사직 또한 기재부 출신 인사가 맡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92건 중 90건이 승인되었는데, 협회나 조합으로의 진출이 가장 많았다. 특히 수소 관련 민관 협의체인 수소융합얼라이언스에서 한국수소연합으로 이어지는 조직의 변천 과정 속에서도 초대 단장부터 현 사무총장까지 모두 산자부 출신이 맡아온 사실이 드러나, 특정 부처 인사들이 자리를 대물림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확인됐다.
국토교통부 출신의 재취업 사례는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국가철도공단, 한국부동산원 등 국토부와 밀접한 단체들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나 한국골재협회 등 국토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기관에서도 국토부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어 ‘관할 부처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 전관예우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는 양상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경우에도 유관 협회나 단체로의 재취업이 주를 이뤘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대표적인 사례로, 특히 상근부회장직이 중기부 출신 인사들로 이어지고 있어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관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은 민간기업이나 법무·회계법인으로 주로 재취업했으며, 기업의 ‘방패막이’ 성격이 의심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에코프로의 상장 직전 신설된 컴플라이언스 부서에 공정위 출신 인사가 기용된 사례, 쿠팡의 주요 임원으로 이동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출신들은 금융연구원, 보험연구원 등 금융 유관 연구기관이나 은행 감사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특히 금감원 출신의 경우 보험사·은행·증권사 등 금융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유지하는 양상이 드러났다.
국세청은 139건 중 136건이 승인되었으며, 제약업계 사외이사로의 재취업이 눈에 띄었다. 세무조사와 리베이트에 민감한 업종 특성을 감안하면 전관예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경실련의 분석이다.
경실련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신생기관 재취업 금지 ▲취업심사 대상기관 규모 재정비 ▲취업승인 예외사유 구체화 ▲심사대상 기간 확대(5년→10년) ▲취업제한 기간 강화(3년→5년) ▲사적 접촉 규제 강화 ▲심사 회의록 공개 ▲공무원연금·재취업 보수 이중수급 방지 등을 근절 방안으로 제시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관피아가 관경유착, 취업시장 불공정, 기업 방패막이로 이어지며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법·제도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