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동 曰] “주택정책의 실패는 설계의 실패… 시장 아니라 제도를 고쳐야”
- 김헌동 전 SH공사 사장, 40년간의 토지·주택정책 해부...“집값은 시장 아닌 제도가 만든다.”
“집값은 시장이 아니라 제도가 만든다.”
김헌동 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은 <뉴스로드>에 한국의 부동산 구조를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택정책이 출발선으로 되돌아가고,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졌다”며 “이제는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김헌동 曰]은 20년 넘게 이어온 그의 ‘부동산 개혁 운동’의 궤적을 따라가며, 강남 개발의 역사에서부터 매입임대, 회전문 인사, 청년주거까지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의 구조적 병목을 해부한다...<<편집자 주>>
▲ “강남은 수용권 없이 개발… 1980년대 ‘수용권 법제화’가 불로소득의 문을 열었다”
김 전 사장은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1980년 전두환 정권의 ‘택지개발촉진법’ 제정에서 비롯된 구조적 왜곡으로 본다.
“박정희 정권 때는 국가가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없었어요. 권력으로 압박은 해도, 법적 수용권은 없었죠. 그래서 강남은 1969년부터 30년 넘게 조금씩 구획정리를 해가며 개발됐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부가 88올림픽을 명분 삼아 토지수용권을 법제화하면서, 공공이 강제로 땅을 빼앗고 다시 국민에게 팔아 ‘공공이 주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구조’가 된 겁니다.”
그는 “국가가 ‘국민의 땅’을 수용해 되팔며 폭리를 취하는 구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공공이 수용한 토지에 대해서는 토지임대부건물분양(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이 불로소득의 고리를 끊을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 “분양가상한제·후분양·원가공개, 세 가지가 안정의 3대축이었다”
그는 자신이 주도한 경실련의 ‘분양가 거품빼기 운동’이 당시 정부 정책과 충돌했음을 회상했다.
“2004년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원가공개 운동을 함께 하기로 했죠. 그런데 참여연대는 세금 중심, 경실련은 원가공개·후분양 중심으로 달랐어요. 당시 여론조사에서 분양원가공개 지지율 87%, 후분양 86%, 상한제 80% 이상이 나왔습니다. 국민은 이미 정책의 방향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주택정책은 세금이나 금리보다 공급방식의 투명성이 핵심”이라며,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파는 ‘선분양 구조’가 시장 불안을 만든다”고 말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개혁 시도는 있었지만, ‘단계적 후분양’으로 희석됐다”
그는 1998~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보고용 정책 초안을 만들며 예비타당성(예타) 제도와 기술경쟁형 입찰제도를 도입한 배경을 밝혔다.
“대통령 지시로 ‘기술경쟁 입찰’과 ‘예타 제도’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관료들이 ‘단계별 시행’을 내세워 후분양을 20% → 40%로 제한하며 흐지부지됐죠. 정책은 있었지만, 관료의 ‘지연 전략’에 막혔던 겁니다.”
그는 “노무현정부 이후 후분양은 표준이 되지 못했고, 다시 건설업자 중심의 선분양 구조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했다.
▲ “매입임대의 함정… 거래량 통계가 부풀려지고, 가격이 동반 상승한다”
최근 국토부와 LH, SH가 시행 중인 매입임대(매입약정)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 수위가 높았다.
“공기업이 매달 수천 채를 사들이면 민간은 거래를 멈춰도 ‘거래량 급증’ 통계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매입가가 곧 거래가로 반영돼 가격도 상승하죠. 즉, 정부는 예산을 집행하고 언론은 ‘거래 회복’ 기사를 쓰고, 부동산은 다시 꿈틀댑니다. 이런 식으로 매입임대 카르텔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는 “공공이 매입을 멈추면 거래량이 줄면 실제 시장가격이 나타난다”며, “이걸 멈추는 순간이 진짜 부동산 정상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15일 정부가 발표한 정책은 부동산 규제를 강화입니다. 아마 지금도 많지 않은 실거래가 아예 얼어붙을 겁니다. 하지만, 매입임대를 지속하면 거래량도 적당히 유지되고, 집값도 올릴 수 있어요. 집값을 공공이 올리는 셈이죠. 실제로 저도 SH공사에 있을 때는 여러 곳에서 매입임대 요구와 압력을 받았습니다."
▲ “공공택지를 감정가로 판 건 위법 소지… 민간참여는 재벌 특혜화”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공공택지 분양방식이 원가에서 시세(감정가)로 바뀌며 제도의 근간이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공공택지는 법에 따라 조성원가 공급이 원칙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관료들이 ‘감정가(시세)’로 바꾸더군요. 그 배경엔 대형 건설사와 국토부 관료의 이해결합이 있었죠. 공공택지를 ‘민간참여’라는 이름으로 재벌 건설사에 넘겨주는 건 공공자산의 사유화입니다.”
그는 “강제로 빼앗은 땅은 국민의 것이니 원가로 분양해야 한다”며, “이를 위반한 사업장은 법적 다툼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관료-건설업계의 회전문, 정책 포획의 근원”
그는 한국 건설·주택정책이 변하지 않는 이유를 '관료-업계의 회전문 인사 구조'로 규정했다. “대한건설협회, 주택건설협회, 한국부동산원, 주산연(주택산업연구원)은 물론, 거의 모든 협회와 단체의 상근 부회장이 국토부 전직 간부입니다. 이들이 협회 정책을 짜고, 국토부와 연락하며,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정책의 생산자·감독자·수혜자가 동일한 네트워크 안에 있는 셈이에요.”
그는 “경쟁 없는 시장에서 관료와 업계가 결탁하면, 품질·안전보다 ‘관계’가 수익모델이 된다”고 비판했다. 국내 건설시장에는 외국기업이 참여할 수 없다.
▲ “정권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가 집값을 만든다”
각 정부의 성향에 대한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내놨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공통점이 있어요. ‘시장 안정’을 말하면서도 선분양, (문재인정부의)매입임대, 시세공급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도가 시장을 자극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정권 교체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는 “집값은 시장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가 만든다”며, “원가공개·후분양·토지임대 세 가지 원칙만 일관되게 지키면 10년 안에 구조가 바뀐다”고 단언했다.
▲ “공공의 임대·건설 역량 회복이 필요하다”
김 전 사장은 LH 등 개발공기업의 역할이 ‘정책 수행자’에서 ‘하청 발주자’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공기업이 직접 짓고 운영하던 시절엔 기술이 축적됐지만, 지금은 설계·감리·시공 모두 외주예요.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건 좋지만, ‘공공의 공학적 역량’이 사라진 건 심각합니다. LH나 SH가 직접 짓는 공공임대, 후분양형 주택을 꾸준히 공급해야 합니다.” 이어 “공공이 시장에 개입할 때 가장 큰 무기는 직접 건설능력과 투명한 원가공개”라고 덧붙였다.
▲ “청년·무주택자 70%의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김 전 사장은 청년층의 부채 구조를 “한국 사회 불평등의 축소판”이라고 규정했다.
“평균적으로 국민 자산의 70%가 부동산에 있지만, 서민층은 100~200%가 부동산이에요. 전세보증금이 자기 자산의 두 배, 세 배인 청년은 ‘300% 부채’에 짓눌려 살고 있습니다. 보증금이 날아가면 다시 일어설 방법이 없어요.”
그는 “원가주택·장기공공임대가 청년세대의 유일한 안전망”이라며 “이건 복지가 아니라 ‘경제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 원칙을 다시 세우는 5대 개혁과제”
그는 이재명 정부가 공공의 원칙을 세우기 위한 5개의 개혁과제를 주문했다.
"△매입약정·무제한 매입 전면 중단 → 통계 왜곡 해소, 예산낭비 방지, △공공택지 주거용지 매각 금지 → 토지임대·건물분양(반값아파트) 전환, △ 분양원가 공개·후분양 의무화→ 정보 비대칭 해소, 품질 경쟁 유도, △ 공공직접건설 역량 복원→ 민간위탁 의존 탈피, 기술 축적, △관료·건설업계 회전문 차단→ 이해충돌 공개, 기술경쟁형 입찰제 강화가 돼야 합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음 세대는 평생 내집 마련 못해”
김 전 사장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가 부동산 개혁을 못하면 다음 세대는 평생 내집 마련을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최대 위협은 초저출산입니다. 이건 청년세대들 대부분이 평생 집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연애, 결혼, 출산이 만만치 않아요. 이건 그들이 아니라, 기성 세대들의 책임입니다."
“집값이 오르는 건 시장 탓이 아닙니다. 정책이 만든 상승분에 원인이 있습니다. 공공이 토지정책의 원칙을 회복하고, 원가·정보·품질의 투명성을 제도화하면 집값은 ‘정책이 만든 만큼’ 되돌아갑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예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 세대는 평생 내집 마련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