拂 공급망 '휘청' … K-방산 빅4, 유럽 공급망 공백 대체 기회 왔다

-정치·재정 위기로 흔들리는 프랑스, EU 재무장 프로젝트 전반에 균열 조짐 -SAFE·PESCO·ASAP, ‘프랑스 중심축’ 약화… 방산 빅4, 들어갈 자리가 커진다

2025-11-26     최지훈 기자
FA-50이 MIG-29 위를 비행하는 모습 [사진=KAI]

프랑스의 정치·재정 위기가 유럽 안보 지형을 뿌리째 흔들리며 방산 공급망에 빈틈이 커지고 있다. K-방산 입장에서는 공백 대체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6일 프랑스가 총리 5명 교체(2024~2025), 국채금리 4.5% 급등, 재정적자 GDP 대비 118.4% 전망, 극우정당 RN 지지율 34% 돌파라는 이례적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EU 안보정책의 축 역할을 해온 프랑스의 동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프랑스가 유럽 방산 정책의 ‘중심국’이라는 사실이다. EU의 주요 프로젝트인 △ReArm Europe(유럽 재무장) △PESCO(공동무기 개발) △ASAP(탄약 생산) △SAFE(무기 공동구매)는 대부분 프랑스-독일 공동 주도로 움직여 왔다. 이런 구조에서 프랑스가 흔들리면 유럽 방산 공급망 전체에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 방산 빅4(현대로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항공우주·LIG넥스원)가 유럽 시장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프랑스의 불안정은 유럽이 오랫동안 고수한 ‘내부 조달 중심주의’를 약화시키고 있고, EU는 지난해 한국과 안보·방위 파트너십(2024.11)을 공식 체결했다. SAFE 역시 EU 비회원국 참여가 가능하며, 무기 구성품의 최대 35%까지 비EU 제품 사용을 허용한다. 사실상 한국 기업의 유럽 방산 프로젝트 진입장벽이 사라진 셈이다.

이미 국내 방산업체들은 동유럽을 중심으로 ‘현지화 기반’을 구축 중이다. 대표적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9월 폴란드 WB그룹과 합작해 ‘천무 유도탄 현지 생산’을 확정했다. 이는 유럽 공급망 안에서 한국 기업이 ‘내부 기업’처럼 기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사례다.

유럽이 지금 필요한 것은 프랑스의 부재를 메울 ‘안정적이면서도 대량 조달이 가능한 파트너’다. 정치·경제 안정성, 대량 양산 능력, 가격 대비 성능 경쟁력, 폴란드 등 유럽 내 실적까지 모두 갖춘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방산 빅4에게는 구조적으로 매우 유리한 시기가 열리고 있다.

EU의 PESCO 프로젝트는 전차·장갑차·자주포 등 지상전력 현대화의 핵심인데, 프랑스의 재정 악화는 독일과의 공동지상전력 계획마저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유럽 육군력이 ‘자주화’ 목표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K2·K808·K9 플랫폼을 보유한 현대로템은 동유럽 각국의 즉각적인 대안으로 부상했다. 프랑스의 조달 지연은 곧 “유럽 내 전차·장갑차 조달 공백”을 뜻하며, 현대로템은 EC의 35% 비EU 부품 허용 규정과 공동 생산 요건을 충족할 경우 PESCO 주요 라인에 편입될 가능성까지 열리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SAFE 프로그램을 1500억 유로 규모의 무기 공동구매 프로젝트로 설명한다. 참여 조건은 까다롭다. EU 회원국 두 곳과 ‘공동 구매팀’을 구성해야 하는데, 튀르키예는 그리스·키프로스의 반대로 사실상 진입이 불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이미 폴란드와 깊은 방산 협력 구조를 구축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비EU 국가로 평가된다. 천무(K239)·유도탄·155mm 계열에서 ‘즉시 조달’이 가능한 국가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유럽의 제공권 장악도 상황은 비슷하다. EU는 5000명 규모 신속대응군 구성, 공동 MRO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프랑스 국방장관이 총리로 지명됐다가 26일 만에 사퇴하는 혼란을 거치며 프랑스 항공전력의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 이 공백은 곧 KAI에게 직결된다. 폴란드에서 이미 입증된 FA-50 운영 실적, NATO 회원국 특유의 ‘전력 공백 최소비용·최단기간 보완’ 조달 구조, 기체·엔진 MRO의 패키지 제공 능력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KAI는 유럽 공군력 보강의 실질적 대체 공급자로 부상했다.

EU ASAP(탄약 생산 지원)은 2023~2025 단기 프로젝트로 탄약 생산량 확대가 핵심인데, 프랑스의 예산 삭감과 국채금리 상승은 해당 사업에도 차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ASAP는 비EU 생산품 35% 허용 규정을 적용할 수 있어, LIG넥스원의 중거리 유도무기·대공·대함 체계가 유럽 조달 체계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적 통로가 열리고 있다. 여기에 NATO가 한국을 IP4 파트너로 지정하고 공동 도입 협의체를 출범시킨 점은, LIG넥스원이 EU–NATO 이중 트랙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입법조사처는 “프랑스의 혼란이 유럽 안보 체계 전반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EU는 공급망 다변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SAFE 등 핵심 사업에서 한국이 가장 유리한 외부 파트너로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유럽 방산 구조가 프랑스-독일 단일축에서 다축 구조로 재편되는 순간, 한국은 비EU 국가 중 유일하게 중심선에 설 수 있는 국가다.

프랑스의 흔들림이 만든 공백은 생각보다 크고, 그 공백이 닫히기 전까지 방산 빅4가 유럽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속도·규모로 진입하느냐가 향후 10년 한국 방산 산업의 위상을 결정한다. 지금 유럽이 찾는 것은 정치·재정·조달 측면에서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파트너’이며, 그 자리에 한국 기업이 설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