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의 운주사

이 골짜기 안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룻밤 사이에 세우면 수도가 이곳으로 옮겨온다는 것이었다. 도읍지가 바뀌는 세상, 그들이 나라의 중심이 되는 세상이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다는 곳이었다. 노비들은 새벽에 깨어 일어나 보성만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았다. -황석영 <장길산> 중에서

소설 <장길산>의 마지막 무대 운주사(雲住寺 혹은 運舟寺)는 상징과 상상과 상실로 가득한 곳이다. 천불천탑이 갖는 상징성은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것은 항상 상실의 아픔으로 끝을 맺는다. 절망스럽게도 운주사는 현세가 아닌 미륵의 세계일뿐이다. 미륵 세상에 대한 희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현실 세계에서의 패배감은 더욱 짙어진다.

공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자궁은 깊숙하건만 미륵은 부질없이 널려있고, 산야 또한 가뭇하기만 하다. ⓒ유성문
공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자궁은 깊숙하건만 미륵은 부질없이 널려있고, 산야 또한 가뭇하기만 하다. ⓒ유성문

단서는 길의 시작에서 드러난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를 가려면 광주에서 너릿재를 넘어야 한다. 한때 도적의 출몰처였던 이 고개는, 5월 광주항쟁 때는 확산과 봉쇄의 첨예한 전선이기도 했다. 그때 고갯마루를 넘나들던 무수한 공포들 때문에 지금도 새로 뚫린 터널을 통해 이 고개를 넘으려면 자꾸만 ‘쏴아, 쏴아’ 하는 거친 바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도암면을 거쳐 용강리로 내려서면 운주사로 가는 길로 꺾어지기 전에 잠시 중장터에 들러야 한다. 이제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곳은 조선조 때 매달 보름날이면 승려들이 모여 장을 벌이고 물물을 교환하던 곳이다. 중장이 보름날 열린 것은 밤을 낮 삼아 산길을 타고 모였다가 흩어져야 했던 스님들을 감안해서다. 천민 취급을 받던 조선시대의 스님들에게 장 나들이는 꽤나 위험한 길이었다. 그들의 괴나리봇짐에 들어 있던 물건들은 곧잘 왈짜패나 부정한 관리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위험을 피해 그들만의 루트를 타고 다녀야 했고, 그 길은 후에 동학혁명 때 농민군들과, 또 그 이후에 빨치산들이 애용하는 길이 되기도 했다.

소위 ‘식구’들은 바위응달에 몰려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풍파에 표정은 사라지고, 앉은 자리는 그저 돌무더기일 뿐이다. ⓒ유성문
소위 ‘식구’들은 바위응달에 몰려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풍파에 표정은 사라지고, 앉은 자리는 그저 돌무더기일 뿐이다. ⓒ유성문

운주사 근처에 중장터가 있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운주사를 순수한 절터로 보기는 어렵다. 비록 예전부터 절집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운주사가 있는 천불동의 주축은 아무래도 석불과 석탑이 널려 있는 골짜기다. 그때 중장터에 들렀던 스님들은 필히 이 골짜기까지 흘러들었을 법한데, 그들이 그곳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생각으로 그 스산한 사바의 언덕을 헤맸을 것인가.

어쨌거나 좀 더 밀고 올라가면 마침내 만산 골짜기에 천불동이 펼쳐진다. 비좁은 골짜기를 타고 뜻 모를 부호들이 가득한 석탑들과, 앉거나 서거나 기대거나 한결같이 어떤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 석불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작가 황석영은 무더기로 모여 있는 그 부처들을 보고는 “저것은 식구임에 틀림없다. 살아서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이 죽어 부처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미륵 세상에의 꿈조차 잃어버린 부처들이다.

와불은 일어서는가. 일어설 수 있는가. 한줄기 바람이 스쳐갔지만 부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유성문
와불은 일어서는가. 일어설 수 있는가. 한줄기 바람이 스쳐갔지만 부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유성문

오른쪽 산등성이로 올라서면 천불천탑을 조성할 때 그를 지휘하던 곳이라는 공사바위가 나타나고, 왼쪽 산기슭엔 그 유명한 와불(臥佛)이 누워 있다. 공사바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본 운주사 골짜기는 영락없이 자궁이다. 그러나 그 자궁은 이미 생산력을 상실한 채 시름에 겨워 누워 있는 듯하다. 와불만 해도 그렇다.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뀐다는 전설조차 변혁에 대한 열망이 낳은 헛된 과장은 아닐는지.

깊은 협곡에 들어앉은 절에 배 ‘주(舟)’자로 이름을 삼은 것은 중생이 물이고 세계가 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쩐지 음습한 골짜구니를 타고 가끔 소슬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지만, 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정처 없는 구름만 머물지 못하여 바람을 따라 간혹 흘러갈 뿐. 미륵의 용화세계는 역시 너무 멀기만 한 것인가.

티끌처럼 수많은 생령들의 뜻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으랴.

그래도 소설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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