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들어라, 갈잎의 노래
[문학기행] 들어라, 갈잎의 노래
  • 유성문 여행작가
  • 승인 2018.11.14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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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신성리 갈대밭
신성리. ⓒ유성문
신성리. ⓒ유성문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 전문

서천 신성리의 갈대밭에서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은 가을이 저무는 소리다. 그것도 서로가 몸 부비며 서럽고 시리게 저무는 소리다. 무릇 모든 것에는 그 끝이 있어, 끝은 처연하고 서글프다. 갈꽃이 시들 때 세월은 무참하고, 갈잎이 바람에 흩날리니 추억조차 아스라하다.

목신(牧神) 판(Pan)의 연모에 쫓기던 순결의 요정 시링크스(Cyrinx)는 갈대로 변하여 몸을 숨긴다. 욕정에 눈먼 판은 그 갈대를 꺾어 피리를 불지만, 그것은 숨어 우는 바람소리일 뿐이다. 그렇게 덧없는 사랑은 지고, 그리움만 소리로 남는다.

오비디우스가 전하는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당나귀 귀를 가진 미다스(Midas)왕의 비밀을 안 이발사는 강변에 구덩이를 파고 비밀을 묻는다. 그러나 흔들리는, 생각하지 않는 갈대는 끊임없이 그 비밀을 전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삼국사기>는 더욱 끔찍한 은유를 들려준다. 보장왕을 폐위하는 데 뜻을 같이한 사람들은 그 표지로 갈대(蘆)를 모자에 꽂는다. 그 연유야 어떠하든 나는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사랑(사 42:3)’을 믿는다.

서천 신성리의 갈대밭에서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은 가을이 남기고 간 소리다. 갈잎의 서걱임 밑에 갈게는 바스락거리고, 겨울을 나려는 물오리의 날갯짓은 조용히 퍼덕인다. 생명이 다하는 곳에서 생명은 이어지고, 순환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순환은 시작된다.

신성리. ⓒ유성문
신성리. ⓒ유성문

충남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은 전남 순천 대대포 갈대밭, 해남 고천암호 갈대밭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갈대밭이다. 비록 규모(5만여 평)에 있어 나머지 두 곳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서정적인 금강의 강변을 호젓하게 거닐며 가을사색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또한 이곳은 영화 <JSA>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한산면의 한산모시관은 실제 모시의 직조과정을 둘러보고 질 좋은 모시제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앉은뱅이 술’로 유명한 소곡주도 맛볼 수 있다.

강을 따라 내려가면 금강하구둑이 나오고, 이곳에는 철새참조대가 세워져 있어 이제 막 찾아들기 시작한 겨울철새를 조망할 수 있다. 차를 타고 둑을 넘어 직접 군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장항 도선장에서 배를 타고 추억에 젖어 강을 건너는 맛 또한 각별하다.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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