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우리에게도 모든 국가적 기념행사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를 정도로 국민들이 남북통일을 염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오래 된 일도 아니다. 그러나 관련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남북의 부족한 협상력, 북측의 납득하기 어려운 호전성 등으로 인해 통일은 우리에게 멀어진, 불가능해 보이까지 하는 ‘소망’으로 멀리 있게 되었다. 

우리도 통일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내가 구체적으로 눈을 뜨게 된 것은 지난겨울 독일 출장길에서였다. 독일의 난민정책을 살펴보기 위한 출장에서 뜻밖에도 한국의 통일은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독일에서 나는, 통일은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라는 것, 누구도 통일을 예측할 수 없지만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옳은 길로 가게 된다는 것, 그리고 분단된 양측 중에서 한쪽만이라도 의지가 확고하다면 외세가 어떻든 그를 극복하고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세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국도 그 같은 확신 위에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내 일종의 신념이 되었다. 

통일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은 일종의 감동이었고, 그 현실성과 구체성 때문에 우리도 얼마든지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감성으로서가 아니라 실체적 목표로 바라볼 수 있었다. 

독일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정책과 방법 중에서 우리가 참으로 진지하게 배워야 할 것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협약’이라는 생각이다. 이 협약은 1976년 서독의 보수와 진보를 망라하는 교육자, 정치가, 연구자, 시민운동가 등이 독일의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 모여 정립한 국민적 교육지침이다. 좌우 진영 관계자들은 이념과 정권에 치우치지 않는 교육을 목표로 하는 교육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오랜 토론 끝에 3가지 원칙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 협약의 골자는 ①강제성의 금지(강압적인 교화 교육 또는 주입식 교육을 금지한다), ②논쟁성의 유지(논쟁적 상황을 모두 소개해 교육받는 사람이 다양한 논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③정치적 행위 능력의 강화(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파악해 스스로 선택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협약은 본래 학교 정치교육의 지침으로 만들어졌으나, 모든 공교육 영역으로 확대돼 오늘날 독일국민 정치교육의 헌법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가 이 협약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논쟁을 하되 반드시 상반되는 관점을 다 소개한다는 논쟁성 유지의 원칙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의 여론은 애당초 반대의 주장은 제거하고 자신이 속해있는 진영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외눈박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언론조차도 하나의 사실에서 자신들이 주장에 맞출 수 있는 부분만을 추려서 몰아가는 황당한 보도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똑같은 ‘통일’이라는 개념을 놓고도 어느 정권에서 추진하느냐에 따라 ‘무조건 지지’와 ‘무조건 반대’의 양극단을 오가는 비 논리성을 드러내고 있다.

교육받는 모든 국민들에게 해당 현안의 논쟁적인 측면을 모두 알려주는 교육은 민주시민들이 다양성을 이해하고 체화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사안이다. 각 현안이 갖고 있는 다양한 속성과 그 논쟁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런 이해가 불가능하도록 한쪽으로 몰고 가는 방식은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든다. 폐쇄적인 사회에서 사는 인간들이 개방적으로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안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한 사람은 쉽사리 일방성이나 선동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모든 사안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책 몇십권 읽으면 전문가로 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원을 졸업하는 데에도 그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시대에 한 가지 관점만을 갖고(알고) 논쟁을 펼치는 국가는 앞서가는 국가에 비해 사안의 이해력,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실행력 등 모든 면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지금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관련 정치단체들이 오로지 하나의 관점만을 놓고 갈등을 확대하고 있다. 정치단체의 하부 구조로 들어가면 논쟁은 더욱 치졸하고 일방적으로 펼쳐진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소화하지 않는 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다. 하나의 측면만을 생각하고, 하나의 관점만을 고집하는 것이 미덕인가, 아니면 부덕인가. 막말이 마구 통하는 사회가 건강한 것인가, 아니면 병든 것인가. 우리는 더 숙고하고 더 관용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이 이 분야다. 이 국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청와대와 집권 여당에서 더 많이 참고, 애쓰고, 가슴을 넓혀야 한다.

(언론인 / 국민일보 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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