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이주여성의 권리 보장과 인종차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5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이주여성의 권리 보장과 인종차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국내 다문화가구의 수는 전년보다 0.9% 늘어난 약 31만9천 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가구 수(2016만8천가구)의 1.6%에 해당하는 수치다. 결혼이민자·귀화자 등 ‘다문화대상자’ 또한 2017년 기준 전년 대비 3.6% 늘어난 32만8477명이었다. 과거에는 특이한 사례로 여겨졌던 다문화가구는 이처럼 날로 증가 추세를 보이며 우리 사회의 일부분이 됐다. 이제는 서로 다른 인종의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도 한국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국내 다문화가구의 경우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결혼이주여성과 한국인 남편으로 구성된 가구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민자·귀화자 중 여성의 비중은 약 82.7%였다. 중국·베트남 등에서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건너온 여성들이 사실상 국내 다문화가구의 주된 구성원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착 과정에서 한국인 남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결혼이주여성을 상대로 한 가정폭력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결혼이주여성들의 피해사례가 다시 한 번 조명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을 상대로한 가정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도움을 구하거나 이혼을 결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발표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결혼이주여성 중 도움을 요청한 경우(27.0%)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31.7%)보다 적었다. 이는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한 여가부의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나온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도움을 요청한 경우(35.6%)보다 적은 수치다.

여가부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이 경찰이나 지원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집안일이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 ‘폭력이 심하지 않아서’ 또는 ‘부부간에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반면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서’, ‘체류자격이 불안정해질까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차이는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취약한 사회적 관계망과 체류 문제로 인한 남편과의 의존관계에 있음을 말해준다.

◇ 피해여성, 체류자격 때문에 가해자에 의존

결혼이주여성들의 체류허가 및 국적취득에 한국인 배우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은 이들이 피해사실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결혼이민(F-6) 체류자격의 요건은 △국민의 배우자 △국민과 혼인관계(사실혼 포함)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 또는 모로서 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사람 △국민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국내에 체류하던 중 그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그 밖에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법무부장관이 인정하는 사람 등 세 가지다. 

이처럼 ‘국민인 배우자’와의 혼인관계가 체류자격의 근거이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갈등이나 가정폭력에도 자칫 체류자격을 상실할까 두려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결혼이민 비자연장이나 영주권 신청 모두 한국인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수적이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이채희 센터장은 지난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폭력피해 이주여성은 상담을 진행하면서 모두 '체류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질문한다”며 “남편이 아내의 가족을 초청해 친정 식구가 한국에서 함께 사는 가족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친정 식구의 체류권을 남편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결혼 후 2년간 국내 거주시 또는 3년 중 1년간 국내 거주시 귀화신청이 가능하지만 심사 기간이 약 10~18개월 가량으로 오래 걸린다. 심사 과정에서 가정폭력을 당하더라도 불이익을 당할까 참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움을 요청했다가 혼인관계가 틀어져 귀화 심사 과정에서 탈락한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국적을 취득하기 전이라도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한 경우, 즉 자신에게 이혼의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는 체류자격 연장이 가능하다. 문제는 피해여성이 재판 이혼을 통해 남편의 가정폭력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다문화가구의 이혼 중 재판이혼 비중은 42.1%로 한국인 간의 재판이혼(19.5%) 비율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처럼 스스로 피해사실을 재판을 통해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사전에 완벽하게 증거를 모아놓은 상황이 아닌 이상 이혼 후 체류자격 연장은 쉽지 않다. 

◇ 한국인 남편, 가부장적 성 역할 기대

결혼이주여성과 혼인한 한국인 남편 대부분이 늦은 나이에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신부를 찾다 보니 상대에 대해 과도하게 가부장적인 성역할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가정폭력을 야기하는 원인 중 하나다. 

울산 남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손미향 담당자가 2018년 발표한 ‘결혼이주여성과 이혼한 한국남성의 결혼 해체 경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 남편들은 오랜 독신생활, 또는 한국인 여성과의 이혼 경험 등으로 인해 국제결혼을 통해 순종적이고 가사에 능숙한 젊은 여성을 아내로 얻고 싶어 하는 공통된 욕구를 보였다. 낯선 환경에 홀로 적응해야 하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이러한 가부장적 성역할에 대한 기대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해당 논문에서는 결혼이주여성과 이혼 경험이 있는 50~60세의 남성 5명을 심층면접했는데, 이들은 결혼생활에 대해 “고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순종적으로 생긴 모습이어서 데려왔다”, “한국여자보다 시중을 잘 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더 심한 것 같다” 등의 불만을 토로했다. 이주여성들은 유일한 버팀목인 남편으로부터 이같이 가부장적인 기대와 압력을 받으며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주여성들의 한국어 실력이 향상되고 출신 국가 커뮤니티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게 되면 남편들의 불만이 쏟아진다. 남편들은 “같은 나라사람끼리 이혼 절차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아내가 밖으로 쉽게 빠져나간다”며 못마땅히 여긴다.

본국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경제적 기여나 한국에서의 취업활동에 대한 결혼이주여성들의 기대와 한국인 남편의 기대가 충돌하면서 부부갈등이 심화되고, 결국 가정폭력의 불씨가 된다.

◇ 협소한 사회적 관계망, 도움 구할 곳 없어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부족한 한국어 능력과 낯선 환경으로 인하 본국에서보다 사회적 관계망의 크기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정보와 도움을 주고받을 가족과 친구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 앞에 피해자가 능숙하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고려대학교 강수경 박사는 2018년 발표한 ‘결혼이주여성정착의 성공사례 연구’에서 “정확한 정보 없이 한국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막연히 생각하던 코리안 드림이 무너지고 고국의 문화와 판이한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결혼이주여성들은 의지할 대상이 한국 가족뿐이라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특히 결혼부터 출산까지의 기간이 짧은 다문화가구의 특성 상,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사회 적응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는 상당히 부족하다.

해당 논문에서 인터뷰에 응한 한 이주여성들은 입국 후 1년~5년 간 집에서만 지내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호소한다. 한 여성은 “입국하고 7개월을 감옥처럼 집에서만 지냈다.  남편이 어느 날 ‘여성의 전화’ 센터에 저를 데리고 가서 한국어수업에 넣어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했다”고 결혼 초기를 회고했다. 다른 여성 또한 “아이들이 연년생인데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거의 4~5년을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둘째가 어린이집 가기 시작하면서 밖에 나가서 사람도 조금씩 만나기 시작한 거다”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남편과 그 가족들 외에 기댈 곳이 없는 상황에서 이주여성이 도움을 요청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구할 방법은 모국인 커뮤니티 정도다. 하지만 모국인 관계망이 확장된다고 한국사회에 대한 적응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2013년 발표한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적 관계 양상을 통해 본 사회통합의 과제’에서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서 가장 의존하는 사회자원이 모국인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한국사회 적응이나 유능감을 발전시키는데 유용한 자원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해당 연구 결과 한국인과의 관계망이 확장된 이주여성은 적응능력이나 사회생활 참여도, 생활만족도 등이 모두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 결혼이주여성 돕기, '지원'이 아닌 '투자'

결혼이주여성은 이제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웃’이 됐다. 하지만 25만 이주여성이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한국인 남편에게 과도하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제도적 문제가 가장 큰 벽이다. 최근 대법원에서 남편과 시어머니의 부당 대우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결혼이주여성이 체류기간을 연장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고무적이다. 대법원은 이혼의 귀책사유가 이주여성에게 있다는 점을 출입국당국이 직접 입증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 뿐만 아니라 이주여성의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여성을 대하는 가족구성원들의 일방적인 기대가 결국 가정 유지에 장애물이 된다는 점에서, 혼인 전 정부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 지원으로 이러한 괴리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한국인과의 관계망 형성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도 이주여성이 남편과 가족 속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돕기 위한 중요한 요소다.

무엇보다 결혼이주여성은 단순히 도와야만 하는 약자가 아니다. 충분한 적응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다면 본국과 한국을 이어줄 수 있는 가치있는 외교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민 원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이 갖는 언어적 능력, 다문화정책 수요에 대한 감각, 특수한 상황에서 얻는 경험 등을 정책 개발의 양분으로서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지원을 복지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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